ⓒ이지영 그림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작품을 모두 모은 〈사랑스러운 푸른 잿빛 밤〉(문학과지성사, 2020)이 나왔다. 그의 유일한 장막희곡 〈문밖에서〉는 1974년 채희문이 처음 번역하여 문예출판사에서 초간되었다. 그 이듬해, 이름난 독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주연이 보르헤르트의 시와 자유단편(Erzählung:길이와 형식이 자유로운 독일 특유의 단편소설 양식. 카프카의 ‘손바닥 소설’을 연상하면 된다)을 모은 〈이별 없는 세대〉(민음사, 1975)를 출간했고, 이 역본은 2000년 문학과지성사로 발행처를 옮겨 지금까지 독자를 만나고 있다. 강 출판사가 두 권으로 분권된 보르헤르트 전집을 1996년에 출간했으나 오래전에 절판되었다. 〈사랑스러운 푸른 잿빛 밤〉은 2007년 독일에서 새로 편찬된 보르헤르트 전집을 사용하여 전집으로서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많은 독자들이 자유단편을 통해 보르헤르트를 알게 되지만, 나는 어쩌다 〈문밖에서〉를 먼저 읽었다. 충격. 보르헤르트에게 감전되어 채희문이 옮긴 〈쉬쉬푸쉬〉(정음사, 1978)를 허겁지겁 찾아 읽었다. 삼중당 문고를 애지중지했던 나는 ‘정음문고 162’번으로 나온 〈쉬쉬푸쉬〉를 읽고서 두 문고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정음문고에는 보르헤르트의 작품이 있고, 삼중당 문고에는 없다.

〈문밖에서〉는 고작 스물여섯 해를 살았던 무명의 작가가 쓴 희곡이다. 이 작품에는 열아홉 살 때 나치에 징집되어 3년 동안 동부전선에서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군사재판을 두 번이나 받고 감옥살이를 했던 작가의 체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주인공 베크만은 보르헤르트와 똑같이 동부전선에서 귀환한 퇴역 병사이지만 작가 개인의 분신이라고만 할 수 없다. 베크만 중사는 전쟁터에서 폐허가 된 고국으로 귀환한 그 시대의 독일 청년 세대를 대표한다. 막이 오르기 전의 지문을 보자. “그 남자는 오래 떠나 있었다. 아주 오래. 아마도 너무 오래. 그리고 떠날 때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온다. 겉모습은 들판에 서서 새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저 허수아비 형상들과 아주 비슷하다. 내면도 마찬가지다. 그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을 밖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렸다. 입장료로 자기 무릎뼈를 지불해야 했다. 수많은 밤을 밖에서 추위 속에 기다린 끝에 그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다.”

무릎 부상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온 베크만은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살고 있는 것을 보고 엘베강으로 자살을 하러 간다. 거기서 자살을 만류하는 여자를 만나 그녀와 새 삶을 시작하기로 했는데,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실종되었다던 그녀의 남편이 목발을 짚고 나타난다. 알고 보니 그는 베크만의 인솔로 정찰작전을 펼치다가 죽거나 실종한 부하 열한 명 가운데 한 명이다. 한쪽 다리를 잃은 부하가 비난조로 그의 이름을 부르자 베크만은 “난 더 이상 그 이름을 원하지 않아! 난 더 베크만이고 싶지 않다고!”라며 자신을 부정한다. 부하는 연극이 끝날 때까지 ‘텍-톡-텍- 톡’ 목발 소리를 내며 그를 쫓아다닌다.

죄의식으로 불면증을 얻게 된 베크만은 책임자를 찾고자 자신의 옛 상관인 연대장을 찾아간다. 전쟁터에서 털목도리를 두르고 귀한 음식만 먹던 연대장은 패전 후 궁핍한 상황에서도 가족과 안락한 생활을 즐기고 있다. 베크만을 알아보지도 못하는 연대장은 옛 부하의 나약함을 꾸짖으면서 남자답고 독일인답게 고난을 이겨내라고 다그친다.

이후 베크만은 자신의 죄의식을 엄살과 익살로 치부하며 코미디 배우를 해보라는 연대장의 권고에 따라 카바레 극단의 단장을 찾아간다. 하지만 베크만이 자신의 경험을 극화한 일인극을 맛보기로 지켜본 단장은 “진실 가지고는 성공할 수 없어. 진실은 당신을 비호감으로 만들 뿐이야. 이건 당신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야”라며 퇴짜를 놓는다. 갈 데가 없어진 베크만은 마지막으로 부모의 집을 찾아가지만, 그곳엔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 나치 시절 유대인 박해에 적극적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패전 후 조사를 받고 공직에서 쫓겨났고, 어머니와 함께 가스를 틀어놓고 자살했다. 극단 단장이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경고했던 진실이 바로 이것이다.

충격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베크만 중사의 위치는 애매했다. 그는 연대장의 명령을 받는 부하이면서, 자기보다 더 낮은 부하에게 명령을 내린다. 베크만의 이중적인 위치는 나치 시대의 평범한 독일 국민을 상징한다. 베크만의 아버지가 유대인 박해자로 설정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그러니까 나치 시대의 평범한 독일인은 나치의 희생자인 동시에 나치에 협력한 가해자였다. 패전 직후 독일 국민은 나치를 악마화하는 것으로 자기 책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는데, 보르헤르트는 이 지점을 타격했다. 그 때문에 작가는 ‘문밖에서’라는 제목에 “공연하려는 극장도, 보려는 관객도 없는 작품”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아무도 이런 진실을 반기지 않으리라고 걱정했던 것이다. 그의 우려와 달리 이 연극은 대중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으며 독일 전후문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보르헤르트는 스물네 살이던 1946년 이 작품을 쓰고, 2년 뒤인 1948년 건강 쇠약으로 죽었다. 이 작품에는 선정적인 화제를 가볍게 다루는 카바레 연극의 흔적도 있지만,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 독일에서 유행했던 표현주의 연극의 영향이 더 결정적이다. 전쟁을 막지 못한 신은 울보에다가 쇠약한 노인으로 등장하고, ‘죽음’은 너무 많이 포식을 하여 쉬지 않고 트림을 하는 장의사로 등장한다. 게다가 베크만을 비롯한 많은 주인공들은 유령임이 분명하다.

충격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베크만을 쫓아다니는 부하의 목발 소리와 죄의식의 모티프는 ‘틱 탁탁 텍 톡’이라는 시로, 자유단편인 〈이별 없는 세대〉는 ‘약속 없는 세대’라는 시로, 또 “옆방에서 유리컵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라는 서두로 시작하는 자유단편 〈체리〉는 “냉장고 문 여닫는 소리가 들렸다”로 시작하는 ‘냉장고’라는 시를 낳았다. 내가 스무 살이라면 〈사랑스러운 푸른 잿빛 밤〉을 읽겠다. 막이 내려온다.

“한 사람이 있어. 그리고 그 사람이 독일로 돌아와, 그리고 추위에 떨어. 문은 닫히고 그는 바깥에 서 있어. 살해당한 자인 나, 그들이 살해한 사람인 내가 살인자라고? 우리가 살인자가 되지 않도록 누가 우리를 보호해주지? 우리는 날마다 살해당하고 또 날마다 살인을 저질러! 그런데도 너는 나더러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거야! 우리는 배반당했어. 그 노인은 대체 어디 있는 거지? 자신을 신이라고 부르는 그 노인은? 당신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거야?”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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