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 말들
윤성근 지음, 유유출판사 펴냄

“서점은 지금 바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의 보물창고다.”

그냥 책방도 망해가는 시기에 헌책방을, 그것도 14년째 운영해온 저자의 열한 번째 책이다. 서점이라는 기묘한 공간을 놓고 동서양 작가들이 남긴 문장 100편을 골라 주석을 달았다. 〈시사IN〉이 요즘 동네책방과 함께하는 ‘책 읽는 독앤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느끼는 바이지만,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만나(오토 A. 뵈머)’는 곳이면서 ‘주민들의 거실이나 서재 같은(우치다 요코)’ 곳. 저자 말마따나 ‘그곳만은 언제나 나를 위한 장소일 거라는 믿음’을 주는 곳이기도 하다.
작고 가볍지만 한 문장도 허투루 쓰이지 않은 서점 예찬 에세이. 책방 손님으로 등장하는 G, N, K가 누구인지 추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스페이스 오페라
캐서린 M. 발렌티 지음, 이정아 옮김, 황금가지 펴냄

“당신들이 지금은 더 나아졌다는 것을 보여줘요.”

짜릿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폭발하는 포복절도 코믹 사이언스 픽션. 치열한 전쟁으로 상처를 얻은 은하계의 행성들은 우주를 한데 묶고자 주기적으로 음악 경연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한다. 다만 전쟁 재발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승리한 종족은 꼴찌 종족을 몰살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된다. 이 화려한 ‘우주 그랑프리 가요제’를 앞두고, 볼품없는 지성체들이 살아가는 ‘지구’가 마침내 은하계의 눈에 띄고 마는데…. 지구의 몰락한 가수 데시벨 존스가 인류를 구하기 위해 나서고, 각양각색의 외계 종족들이 음악 경연대회를 둘러싸고 벌이는 온갖 음모와 술수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무루 지음, 어크로스 펴냄

“타인의 마음에 닿는 일이야말로 어쩌면 세상 가장 먼 곳까지 가보는 일이다.”

장래희망은 나이 먹는다고 해소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되고 싶은 게 자꾸만 많아진다. 물론 어린 시절과는 결이 다르다. 그때 장래희망은 곧 직업이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책 제목인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야말로 내 장래희망 중 하나다. 낯선 어른이 되고 싶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더라고, 말이 아니라 생으로 증명하는. 책에 대한 책만큼 재밌는 ‘장르’가 또 있을까. 타인의 내밀한 서재를 구경하는 기분이랄까. 저자의 감상에 내 생각을 겹쳐보기도 하고, 모르는 책 이야기가 나오면 샘도 낸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몰랐던 그림책 여럿을 새로 알았다. 책장을 넘길수록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가 무거워진다. 저자의 은근하고 다정한 ‘영업’에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노랑의 미로
이문영 지음, 오월의봄 펴냄

“가난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엔가 모여 있다.”

퇴거 통보 딱지는 노란색이었다. 쪽방촌 잿빛 건물들과는 상반되는 색깔이다. 저자는 “이 세계가 쫓겨난 존재들을 대하는 태도”라고 언급한다. 〈한겨레〉 이문영 기자는 5년간 강제퇴거 당한 주민 45명의 이주 경로를 추적했다. 이들 중 66%가 직선거리 100m 안에서 이사했다. 100m 밖으로 이사한 사람들 중에는 무연고 납골묘에 안치되거나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람들이 있었다. 가난의 경로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점점 더 고립되어간다. “가난의 뿌리는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머무는 곳으로 이끈 길들과 그 길을 찌르는 뾰족한 돌멩이들 틈에 박혀 있다.” 강제퇴거 그 후를 쫓은 탐사보도를 통해 한국 사회 가난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
정아은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핵심은 돈에 있다.”

아이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사람들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여성 어른들이 말했다. “너 정도면 매일 남편에게 고맙습니다 하고 살아야 돼.” 전업주부가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정확히 인식하게 된 사건이었다. 그때부터 구직 사이트에 접속하는 병이 생겼다. 작가의 문제의식은 한 가지다. 엄마들은 왜 온종일 가사를 하고도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듣는가? 답을 찾기 위해선 돈 얘기를 해야 했다. ‘집에서 논다’는 말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정이 시작됐다. 가사노동을 폄하하고, 한쪽 성에게 미루며, 보상받지 못하는 하찮은 일로 만들어온 내력의 배경엔 자본주의가 있었다. 돈의 권세가 높아지면서 돈을 못 받는 가사 노동자들의 지위도 점점 내려갔다.

 

 

 

 

 

 

 

 

 

어느 날 갑자기 무기력이 찾아왔다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지음, 추미란 옮김, 동녘라이프 펴냄

“당신을 보호하는 것이 바로 당신 정신이 하는 일이다.”

우울증과 ‘번아웃’은 닮았다. 두 증상 모두 공허하고, 아무 의욕이 없으며 고독감을 동반한다. 그러나 출발점은 다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계산된 비관주의가 영향을 미치는 반면 번아웃에 걸린 사람은 완벽주의 성향 때문일 수 있다. 독일의 정신요법 의사인 저자는 환자를 직접 치료하며 알게 된 뇌과학에 관한 통찰과 치료법들을 공유한다. 우울증과 번아웃은 원인이 다르니 해결 방법도 다르다. 인간관계, 생활습관부터 섭취하는 음식까지 정신건강과 어떻게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는지 보여준다. 우울증과 번아웃이, 몸이 보내는 일종의 ‘비상경보기’라고 이 책은 말한다. 삶에 깃든 무기력증을 쉽게 놓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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