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코로나19 방역 선진국’ 한국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황금연휴 기간이었던 5월7일 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시작된 집단감염 때문이다. 일부 언론이 불필요한 정보인 확진자의 성적지향을 물고 늘어지며 문제를 키웠다. 5월12일 성소수자 단체들은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를 꾸려 대응에 나섰다. 성소수자들이 안전하게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방역 당국과 소통하는 것은 물론, 혐오와 차별 등 인권침해 사례를 감시하고 당사자들을 돕기 위해서다. 성소수자 단체들이 이처럼 ‘방역 파트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 자체가 전무했던 1990년대부터 힘겹게 활동하며 바닥을 다져온 덕분이기도 했다.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는 ‘한국 성소수자 인권운동사’의 산증인 중 한 사람이다. 지난 20년간 퀴어문화축제를 이끌어온 핵심 스태프로 성소수자를 위한 최초의 비영리재단인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와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운영위원도 맡고 있다. 코로나19는 단순한 신종 감염병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덮어두고 외면해왔던 문제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들춰낸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낙인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가 방역의 성패를 좌우하게 됐다. 5월12일 한 활동가를 만났다.

5월7일 이후 방역 당국은 물론 성소수자 단체도 긴급하게 움직였다.

많은 분들이 걱정해주시면서 ‘그래도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다’고 얘기해주시더라.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클럽 간 걸 뭐라고 하지 성소수자여서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런 분위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성소수자 당사자의 자기검열 상태는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존재로 취급되고 ‘동성애자 인권은 존중하지만 동성애는 반대한다’ 같은 이야기들이 논리적인 양 돌아다니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까. 게이 클럽에서 춤추는 영상이라며 SNS에 올라왔더라. 성소수자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사생활을 보내고 있는지를 두고 가십거리 삼아 한마디씩 보탠다. 수치심과 죄책감이 뒤섞인다. 내가 클럽을 가지 않았다고 해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미안하다. 한 사람의 잘못이 집단 전체의 잘못이 된다. 소수자들이라면 늘 겪는 일이다.

보건 당국이 ‘차별과 혐오는 방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내놓고 있는 반면, 인천시에서는 인천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에 명단을 요구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단체가 동성애자 명단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그 발상이 좀 어이없고 귀엽긴 하다(웃음). 그 발상 자체에 성소수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난다. 특정 조직에 가입하고,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모이는 집단으로 알고 있는 거니까. 동료 시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가능한 발상이다. 반면 보건 당국의 움직임이나 메시지는 기대 이상이다. 한 가지 더 기대하는 건 코로나19 덕분에 전염병의 특징을 사람들이 확실히 알게 되었다. 전염병은 검사가 중요하다. 이런 깨달음에서 HIV/AIDS 감염에 대한 낙인과 편견도 충분히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심지어 HIV/AIDS는 코로나19와 달리 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이다.

ⓒ연합뉴스5월12일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열린 코로나19 성소수자 긴급 대책본부 출범 기자회견.

일부 언론 보도가 방역에 오히려 방해가 되었다는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이번 국면에 가장 아쉬운 것도 언론이다. 〈국민일보〉가 가장 많이 지적을 받고는 있지만 사실 뉴스 나오는 거 보면 다른 언론도 대동소이하다. 그래도 〈국민일보〉 노동조합이 관련 보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변화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신천지나 게이 클럽이나 다를 게 뭐냐는 지적을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성적지향은 방역에 필요한 정보가 아니다. 신천지 예배 방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교회 예배 방식과 달랐기 때문에 집단감염 우려가 있었고, 방역에 필요한 정보가 된다. 하지만 클럽 문화는 게이 클럽이든 일반 클럽이든 같다. 집단감염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클럽이라는 환경에 초점을 맞춰야지 성적지향에 초점을 맞춘 보도가 방역에 어떤 도움이 되나.

‘찜질방(게이 사우나)’에 대한 선정적인 보도도 이어지고 있는데.

성소수자들이 주로 가는 찜질방이고, 위법한 공간도 아니다. 이성애자에게는 전혀 없는 문화여서 낯설 수 있다. ‘헉! 얘네만 다니는 찜질방이라는 게 있대!’ ‘헉! 얘네가 다니는 클럽이 이렇게 많대!’ 방역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신기해하고 호들갑을 떠니까 선정적으로 보도될 수밖에 없다. 이성애자들도 섹스를 하러 가는 곳이 수만 개지 않나. 더구나 불법적이고 폭력적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가 성 엄숙주의가 강하다 보니 자유로운 섹스 자체를 문란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정작 ‘문란’한 건 성구매라는 점은 외면한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외면해온 문제들을 코로나19가 다 끄집어내고 있다.

성소수자가 이미 한국 사회 공동체의 일원이었다는 게 이번 일로 너무 잘 드러났다. 직업군도 간호사, 군인, 대학생, 회사원 다 있지 않나. 그동안 ‘우리는(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다’라고 주장해왔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이제는 사람들이 좀 알아줄까?

이전 확진자 중에도 성소수자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누적 확진자가 1만명이 넘는다. 지금 성소수자를 부각시킨다면 이 사람들이 다 이성애자라는 의미가 된다. 이번에 동성애자 확진자가 처음 나온 거라면 동성애자를 전염시킨 건 누구냐? 이성애자가 된다. 이번 일이 있기 이전에도 성소수자들은 확진자가 돼서 동선이 밝혀지면 정체성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했다. ‘아우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극도로 조심해왔다. 이들을 안심시키고, 검사받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독려하는 데 성소수자 단체들이 정말 큰 역할을 했다.

이번 논란이 차별금지법 논의의 새로운 장을 열어줄까?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법이 실제로 얼마나 담보할 수 있을지는 만들어지는 과정과 내용을 봐야겠지만 성소수자 문제뿐만 아니라 감염병과 관련해 수면 위로 올라온 각종 문제들을 대하는 감수성에서는 분명 차이가 있었을 것 같다. 차별금지법을 만들자고 설득할 때 ‘이 법은 처벌하자는 게 아니라 차별을 줄이자는 원칙을 만들어내는 법이다’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만든다고 혐오나 차별을 ‘근절’할 수는 없다. 사회적 합의이고 선언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법에 기반해 관련 교육이 이뤄진 상태였으면 무엇이 차별이고 혐오 표현인지에 대한 인식은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거다.

흔히 ‘차별은 흉기’이고, 그 증거로 성소수자의 높은 자살률이 제시되며, 입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곤 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들어지던 무렵과 차별금지법을 만들려고 활동하는 동안 계속 들은 이야기가 있다. ‘차별을 막아주세요’라고 요청하면 국가기관 답변은 매번 똑같았다. ‘차별 사례를 가져오라.’ 1998년이었는데, 그때는 페이스북도 없고 인터넷도 지금 같지 않았다. 법 만들려면 사례를 가져오라니까 당시 활동가들이 동그란 스티커를 만들어서 전화번호랑 이메일 적고 성소수자들이 많이 가는 여러 공공장소에 붙이고 다녔다. 전화가 오긴 왔다. 청소 노동자들이 스티커 떼라고(웃음). ‘뭐야, 정말 아무도 차별 안 받아?’ 그러다 깨달았다. 차별 사례를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내가 성소수자인 걸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그때는 더, 활동가들도 가까운 사람들 외에는 자신의 성적지향을 밝히지 못하던 때였다. ‘내가 성소수자인 걸 커밍아웃해야 해, 그 이유로 차별을 받아, 너무 슬프고 힘들어, 그럼에도 죽지 않고 살아 있어, 그래서 스티커를 봐.’ 이 과정을 다 지나가야 신고를 할 수 있는 거다. 이런 조건을 무시한 채 사례를 가져오라는 건 그 자체가 억압이고 차별이었다. 그럼에도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불행을 자꾸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건, 그래야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그렇다. 사람의 심금을 울려야 하는 거다. 피해자의 모습으로 재현될 때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이 과정에서 활동가들이 받는 상처도 크다.

그런 점에서 20년 넘게 이어져온 퀴어문화축제가 의미 있다. 코로나19로 퀴어문화축제도 미뤄졌는데?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우리는 이미 사회 구성원이다. 누구의 인정도 필요하지 않다. 퀴어문화축제는 이런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제21회 퀴어문화축제는 8~9월로 예정하고 있는데, 그때라고 해서 코로나19가 종식될 수 있을지…. 올해 21회 퀴어문화축제 슬로건이 ‘축제 하라, 변화를 향해!’다. 그런데 축제를 못할 수도 있다. 크게 잡은 원칙 두 가지는 ‘포기하지 않고 올해 안에 연다, 하지만 안전하게 한다’이다. 상황을 계속 보고 있다.  

퀴어문화축제는 기업 후원도 받고 있다.

기업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기업이 퀴어문화축제에 후원한다는 사실 자체로 성소수자 중에는 ‘아, 내 존재가 인정받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퀴어문화축제가 구글이나 러쉬 등 기업 후원도 받으니까 재정적으로 괜찮은 것 아니냐는 분들도 있고, 상업화됐다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 기업 후원 비율은 전체 재정의 10%도 안 된다. 어느 나라 퀴어문화축제를 가봐도 한국처럼 인권사회단체가 부스를 많이 차지하는 곳은 없다. 퀴어문화축제 초기부터 원칙으로 지키고 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따로 집계하고 있지 않지만, 미국 인권단체 휴먼라이츠가 내놓은 보고서(‘LGBTQ 코로나19 위기 진단’)에 따르면 코로나19로 경제적 타격을 크게 받는 직종에 종사하는 성소수자 비율이 매우 높았다.

내가 속해 있는 ‘비온뒤무지개재단’에서 4월21일 ‘코로나19로 인해 갑자기 살림이 어려워진 LGBTQ+(성소수자)를 위한 일거리 창출 프로젝트’를 했다. 없는 예산을 쥐어짜서 400만원을 만들었는데, 40명에게 10만원씩 선착순으로 지원했다. 우리가 일자리는 못 만들어주지만 그림이든, 영상이든, 수필이든 본인이 스스로 ‘일거리’를 만들어서 일한 결과물을 내면 됐다. 신청받은 지 반나절도 안 됐는데 90여 명이 몰렸다. 다 드리지 못해서 마음이 아팠다. 다만, 사람들에게 성소수자의 생계나 경제적 어려움을 신경 쓰는 단체가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기를 기대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혐오나 차별이 온라인에만 머물지 않고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또 선거 기간이나 청문회가 열릴 때면 동성애에 대해 ‘찬반’을 따지곤 한다.

점점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거의 대부분이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 식으로 삶의 패턴이 뻔했던 때는 성소수자에 대해 받아들일 여지가 별로 없었다. 개인이나 가족에 대한 인식과 변화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나 비하를 계속하기란 쉽지 않다. ‘n번방 사건’만 봐도 이성애자가 참, 문제인데(웃음). 앞으로는 섹슈얼리티에 대한 관점 자체를 바꿀 수밖에 없다. 섹스를 누구랑 했는지, 몇 번 했는지, 몇 살에 했는지, 결혼을 한 사이에서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폭력적이지 않을 것, 착취하지 않을 것, 그래서 안전해야 한다고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성적지향은 비난거리가 될 수 없다.

※ 코로나19로 인한 직장 및 사회에서의 차별과
아우팅 문제에 대해 상담이 필요하다면 아래 기관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02)745-7942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02)715-9984

·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 알 010-2164-1201

·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02)924-1227

· 코로나19 성소수자 대책본부 queer.action.   

  against.covid19@gmail.com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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