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5월12일 서울 성동구 보건소에서 시민들이 거리두기를 한 채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두 번 없는 현상’은 오래된 지혜이다. 기원전부터 사람들은 한번 앓고 난 감염병은 다시 걸리지 않고, 걸려도 가볍게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악명 높은 페스트가 중세 유럽을 덮쳤을 때도 환자를 돌보거나 시신을 수습하던 성직자 중 일부는 페스트를 가볍게 앓은 후 두 번 다시 그 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신의 은총을 받은 복된 이들’이라고 불렸다. 현대인들은 이를 ‘전염병의 고통을 피한다’는 뜻을 가진 면역(免疫)이라고 부른다.

대재앙에 가까운 팬데믹 속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출구가 있다면 그건 면역이다. 백신을 개발해 접종하든, 실제로 감염병에 걸렸다가 완치되든 인구의 일정 비율 이상이 면역력을 갖춰야 코로나19 유행을 궁극적으로 잠재울 수 있다. 확진자 격리 및 사회적 거리두기를 근간으로 하는 방역 정책은 바이러스를 퇴치한다기보다, 시민들이 바이러스와 만나지 않도록 하는 전략이다. 신종 바이러스에 대항할 면역력이 없는 상태에서 조금만 긴장이 누그러져도 코로나19는 다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간다.

면역을 적극적으로 방역에 활용하는 곳도 있다. 스웨덴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처럼 봉쇄를 통해 감염을 틀어막는 대신, 비교적 자유롭게 일상생활을 하며 인구 전체의 면역 수준을 높이는 논쟁적인 방식을 택했다. 일부 국가에서는 일종의 코로나19 신분증이라 할 수 있는 ‘면역 여권’을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항체검사를 해서 과거 코로나19에 감염됐다가 나은 것이 확인되면 면역 여권을 발급하고 경제활동과 여행의 제한을 풀어주자는 것이다. 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되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일상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코로나19와 면역에 대해 우리에게는 아직 믿을 만한 지식이 별로 없다. 면역은 원래도 연구할 부분이 많이 남아 있는 분야지만 신종 감염병인 코로나19 면역은 더더욱 미지의 영역이다. 파편적인 정보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확정적이지 않다. 코로나19 면역의 미스터리를 하나씩 점검해나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길을 얼추 가늠해볼 수 있다.

■ 우리 몸은 침입자를 기억한다

확진자와 접촉했다고 모두 코로나19에 걸리지는 않는다.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와 체내 세포를 감염시키기까지는 꽤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호흡기 바이러스인 코로나19는 코나 입을 통해 인체에 침투하는데 코털, 콧물 혹은 가래는 바이러스의 진입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 역할을 한다. 동시에 우리 몸은 침입자를 인지하고 방어 시스템을 가동한다. 바이러스와 직접 대적하는 면역세포들이 본격적으로 링 위에 오르는 순간이다.

먼저 반응하는 건 선천성 면역계(innate immune system)이다. 호중구, 대식세포, 자연살해세포 등으로 구성된 선천성 면역세포들이 출동해 침입자가 어떤 유형이든 관계없이 공격을 퍼붓는다. 이를테면 면역전쟁의 1차 방어선이다. 전투가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면 후천성 면역계(adaptive immune system)가 발동한다. 선천성 면역세포와 달리 후천성 면역세포인 T세포와 B세포는 침입자의 종류에 따라 특화된 대응을 한다. 침입자를 그 종류에 맞춰 정확히 공략하는 최정예 요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감염병에 두 번 걸리지 않는 현상은 후천성 면역계가 발휘하는 능력이다. 바이러스와 한바탕 전투를 벌이면서 B세포는 총알에 비유할 수 있는 항체(antibody)를 대량으로 생산해낸다. 항체 가운데서도 특히 침입자를 무력화(중화)할 수 있는 항체를 ‘중화항체(neutralizing antibody)’라고 한다. 해당 바이러스에 맞춤형 무기로 만들어진 중화항체는 바이러스에 달라붙어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입하는 걸 막는다. 전투가 끝나고 바이러스가 사라진 뒤에도 항체와 그 일부인 중화항체는 체내에 남는다. 다음 번 침입, 즉 재감염을 막을 수 있는 면역이 생기는 것이다. B세포와 T세포 중 일부는 면역기억세포로 전환해 같은 바이러스가 다시 들어왔을 때 처음보다 신속하게 전투태세를 갖추게 된다.

■ 제각기 다르게 흐르는 면역의 시간

그런데 이렇게 얻은 면역은 만능 갑옷이 아니다. 감염병에 따라 면역이 지속되는 기간이 제각기 다르다.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예방접종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홍역 주사는 평생에 한 번 맞으면 되지만 파상풍은 10년에 한 번씩 맞아야 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인 독감은 겨울이 돌아올 때마다 예방 접종을 한다. 백신은 후천성 면역계를 훈련시키기 위해 바이러스와 유사하게 만든 일종의 대역이다. 백신을 맞았을 때 면역이 유지되는 기간이 다르다면 그 감염병에 걸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영구적인 면역을 얻을 수도 있고 1년을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

2007년 미국 오리건 대학 연구팀은 26년간 실험자들을 관찰해 면역이 유지되는 기간을 추적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이 추적한 8종의 감염병 가운데 면역력이 가장 오래가는 건 홍역이었다. 홍역에 감염되거나 백신을 맞아 생긴 항체의 반감기(반으로 줄여드는 시간)는 무려 200년이 넘는 것으로 측정되었다. 파상풍의 경우는 이 기간이 11년으로 훨씬 짧았다. 이 연구에 인플루엔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인플루엔자 항체는 감염된 뒤 4~7주 후 최고치에 도달했다가 점점 감소해 1년 뒤에는 대부분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사IN 조남진5월13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클럽에 집합금지명령서가 붙어 있다.

■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 코로나19와 면역

코로나19는 어떨까. 전문가들의 답변은 대개 이런 식으로 모호하다. “다른 감염병에 비춰보았을 때 코로나19 완치자에게도 면역이 생길 것 같지만 전부 생기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생긴 면역이 얼마나 오래갈지도 정확히 모른다.” 코로나19 첫 감염자가 나온 건 겨우 6개월 전이다. 코로나19 면역에 관한 지식이 쌓이려면 아직은 더 많은 연구가 축적돼야 한다.

면역력을 확인하는 대표적인 방법은 완치자로부터 중화항체의 양을 보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항체 가운데 그 바이러스에 특화돼 보호능력을 가진 항체를 특별히 중화항체라고 한다. 그런데 일반 항체검사에 비해 중화항체를 검출하는 실험은 훨씬 까다롭다. 숙달된 연구원이 생물안전 3등급(BSL3) 실험실에서 살아 있는 바이러스를 직접 다루어야 한다. 이혁민 신촌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오래 걸리고 손도 많이 가기 때문에 중화항체 검사를 대규모로 하기는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화항체 형성을 확인하는 연구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4월22일 코로나19 회복기 환자 25명을 대상으로 한 분석시험에서 환자 모두에게 중화항체가 생긴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12명은 PCR 검사(코로나19 확진검사)에서 여전히 양성이 나왔지만 질본은 중화항체가 방어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 의학 전문가는 “중화항체가 생겨도 바이러스를 없애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함께 검출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생긴 면역이 1년이 갈지 2년이 갈지는 지금 단계에서 알기 어렵다. 과학자들도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의 경우를 참고해 짐작할 따름이다. 코로나19 외에도 인간에게 감염되는 코로나바이러스는 6종이 더 있다. 2002년 사스와 2015년 메르스가 발생하기 이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가 가벼운 계절성 감기를 일으키는 병원체 정도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앞선 연구가 그리 활발하지는 않았다. 1990년 계절성 코로나바이러스의 면역반응을 보는 연구가 발표됐는데, 이 연구에 따르면 몇몇 사람들은 1년 내에 다시 감염에 취약한 상태가 되었다. 사스와 메르스에 대한 연구 결과는 그나마 낙관적이다. 메르스의 경우는 감염 후 1년, 사스는 2년가량 중화항체가 검출되는 것으로 보고된다.

■ 면역과 방역, 그 위태로운 균형

지금까지 나온 코로나19와 면역의 관계를 감안하면, 스웨덴처럼 ‘집단면역’을 팬데믹 대응 전략으로 삼는 조치는 조금 무모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면역 여권’이 여러 국가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자 세계보건기구(WHO)는 4월24일 우려가 담긴 성명을 냈다. “코로나19에서 회복돼 항체를 가진 사람들에게 면역이 생긴다는 증거는 현재 없다.”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웨덴은 면역에 기댄 방역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인구당 사망률은 다른 나라에 견주어 높은 수준이지만 가을에 이른바 세컨드 웨이브(두 번째 유행)가 닥치면 코로나19 면역력을 보유한 스웨덴이 더 안전할 거라는 구상이다. 스웨덴의 원로 역학자인 요한 기에섹케는 최근 의학저널 〈랜싯〉에 ‘보이지 않는 팬데믹(The invisible pandemic)’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1년이 지나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와 무관하게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는 비슷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웨덴 보건 당국은 5월 말이면 스톡홀롬 인구 가운데 40%가 코로나19 면역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추정한다.

흔히 코로나19 집단면역이 생기는 수준을 인구의 60%라고 한다. 이는 감염병 역학 이론에 따른 계산이다. 역학에서는 이 수준을 ‘집단면역 문턱(Herd Immunity Threshold)’이라 부른다. 이 문턱에 도달해야 그때부터 감염 확산이 꺾이게 된다. 집단면역 문턱은 감염병의 전파력을 보여주는 기본감염재생산수(R0:감염자 1인이 감염시킬 수 있는 사람 수)와 비례한다(〈그림 1〉 참조). R0가 커질수록 집단면역 문턱도 높아진다. 인구의 60%라는 수준은 코로나19의 R0를 2.5(감염자 1인이 2.5명을 감염시킨다는 의미)로 두었을 때 나오는 수치이다. 그런데 코로나19의 기초감염재생산수는 어디까지나 추정치이다. 코로나19가 걷잡을 수 없이 퍼지던 4월 미국 데이터에서 관측된 R0 값은 5를 상회했다. 이 경우 집단면역 문턱은 80%까지 올라간다.

ⓒEPA스웨덴 스톡홀름 시민들이 4월20일 야외식당을 이용하고 있다.

감염병 대응 전략을 세우는 방역 당국 처지에서 면역은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덜컥 믿고 갈 수도 없는 상대이다. 탁상우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연구교수는 “굉장한 절제의 묘(妙)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이 택하고 있는 ‘생활 속 거리두기’도 실은 면역에 한 발쯤 걸친 방역 전략이라고도 볼 수 있다. “봉쇄는 아예 전파를 차단하는 건데 우리나라가 하는 방식은 적게나마 감염이 일어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천천히 물이 새어나가게 하면서 결국은 물을 다 빼는 방식이다.” 의료체계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감염자 수를 관리하며 집단면역을 키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다. 이태원 클럽발 확산에서 보듯 이는 몹시 위태로운 길이다. ‘슈퍼’ 상황이 생긴다면 언제든지 이 속도 조절이 실패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확산 저지와 집단면역 사이에 균형점을 찾는 아슬아슬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 최적점을 찾아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5월10일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코로나19 항체 조사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먼저 전국에서 7000여 명(국민건강영양조사), 대구·경북 지역에서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한다. 항체는 바이러스가 남기는 지문과 같아서 항체가 나온다는 건 코로나19를 앓고 지나갔다는 뜻이 된다. 걸려도 증상이 없는 환자가 상당수 발생하는 코로나19의 독특한 특성을 고려하면 실제 감염 규모는 현재 나온 확진자보다 더 크리라 추정된다. 질병관리본부는 항체검사에서 양성이 나온 사람들(감염자들)을 대상으로 중화항체를 검출하는 실험을 추가로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WHO에서도 국제적인 항체검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항체검사 데이터를 공유해 코로나19 감염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면 코로나19의 역학적 특성을 더 깊이 이해하고 각국 정부가 좀 더 정교하고 효율적인 방역 대책을 짜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 이는 대규모 치료제 임상시험에 이어 WHO가 코로나19를 퇴치하기 위해 두 번째로 추진하는 국제적인 프로젝트다. 두 프로젝트에는 각각 연대(Solidarity)와 연대 2(Solidarity II)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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