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두’ 이야기
  • 고제규 편집국장
  • 호수 662
  • 승인 2020.05.1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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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이명익

아파트 계단 입구에서 여학생이 쓰러졌다. 갑자기 튀어나온 길고양이에 놀라 정신을 잃었다. 경비원은 119 구급차를 불렀다. 여학생 부모가 나중에 경비실을 찾아 멱살을 잡았다. 길고양이 단속을 안 했다는 이유였다. 고양이 탓인데도 관리소장은 경비원에게 부모와 합의하라고 했다. 부모는 치료비 등 명목으로 50만원을 요구했다. 아파트 자치회 중재로 경비원은 여학생이 귀가하는 두 시간 동안 계단에서 경계근무를 섰다.

〈임계장 이야기〉(조정진, 2020)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갑질의 두목이라는 뜻으로 경비원들이 붙여준 ‘김갑두’나, ‘저승사자’라 불린 주민이 나온다. 이들은 나이 든 경비 노동자들을 무릎 꿇리고 생색을 내며 썩은 사과를 건넨다. 투자 목적이든 주거 목적이든 전 국민의 61.4%가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에는 ‘임시 계약직 노인장(임계장)’ 경비원이 있다. 내 아버지일 수도 있고 어쩌면 내 미래일 수도 있다. 저승사자나 김갑두, 그리고 저 여고생 부모는 어쩌면 현재의 나 자신일 수 있다.

〈임계장 이야기〉에는 저자가 첫 근무 후 집에 돌아와서 본 뉴스가 소개된다. 아파트 주민의 폭언에 시달린 경비원(74)의 투신자살. 2016년 8월 사건이다. 2020년 5월 또 한 명의 경비 노동자 최희석씨(59)가 죽음을 택했다.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말한다. 공존과 상생이 강조된다. 상생은 멀리 있지 않다. 내 주변에 있다. 첫걸음은 관심이다. 관심은 연대다. 관심에만 머물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작은 실천이라도 하면 세상은 바뀐다. 나경희 기자가 취재한, 이천 물류창고 화재로 남편을 잃은 유족은 이렇게 말한다. “아마 지금 다른 분들도 방관하겠지만 저는 그게 서운하지는 않아요. 저도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 당시에 그랬던 사람 중 한 명이니까. 내가 더 목소리를 내주고 다 같이 공감해줬다면 그때 법이 바뀌었을까요. 그럼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까…. 적어도 희생자는 많이 줄었을 거예요.” 나경희 기자는 뭉뚱그려 고인으로만 호명된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삶을 취재했다.

조정진씨는 최씨의 죽음을 접하고 새벽 2시26분 전혜원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세상은 예전처럼 찰나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면 다시 언젠가 억울한 죽음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죽음에 대해 무심하지 말아주십시오.”

우리 모두는 살기 위해 노동한다. 죽기 위해 노동하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뉴노멀은 노동자들을 살리는 연대에서 출발해야 한다. 작은 실천을 했다. 임지영 기자가 소개한, 지령 300호를 맞은 월간지 ‘일하는 사람들의 글모음’ 〈작은책〉을 구독 신청했다.

※ 이번 호로 고제규 편집국장이 임기를 마칩니다.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신임 이종태 편집국장이 편지를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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