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5월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4·15총선 개표조작 진상규명과 국민주권 회복 대회’ 모습.

미래통합당 민경욱 의원은 5월8일 페이스북에 “세상이 뒤집어질 조작 선거 증거를 폭로하겠다”라고 썼다. 민 의원이 ‘폭로’를 감행한 사흘 뒤에도 세상이 뒤집히지는 않았다. 다만 그를 비롯한 몇몇 인사들이 밀어붙이고 있는 ‘21대 총선 조작론’이 보수 진영 내부를 첨예하게 가르고 있을 뿐이다.

5월11일 국회에서 열린 ‘4·15총선 개표조작 진상규명과 국민주권 회복 대회’는 종교 부흥회 같은 분위기였다. 주로 노년층인 청중들 중 일부는 연사가 말할 때마다 “맞습니다!”를 외쳤다. 민 의원이 단상에 서자 격렬한 환호와 박수, 휘파람이 나왔다. 민경욱 의원은 40여 분간 ‘조작 증거’를 이야기했다.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서울·경기·인천 사전투표 득표 비율이 약 63:36으로 같다’ ‘출구조사 발표 때 민주당 관계자들이 웃지 않았다’ ‘사전투표용지에 QR 코드가 있다’ 따위다. 현장 호응은 그가 투표용지를 꺼내 흔들었을 때 제일 좋았다. 민 의원은 그 투표용지가 사전투표함에서 발견된 본투표의 비례투표용지라고 주장했다. 술렁대던 사람 중 몇 명이 “총선 무효!”라고 외쳤다.

민 의원과 다른 연사들은 개표 조작을 단정했다. 공병호 전 미래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은 “(개표 부정 주장이) 조작론인지 음모론인지는 물 건너간 문제다. 조작이다. (…)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는 콩고나 리비아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합류하거나 대응하지 않는 미래통합당에 대해서는 “그렇게 비겁하게 인생 살아서는 안 된다. 나한테 전화 한 통 안 왔다”라고 비판했다. 유튜브 바실리아TV 운영자인 조슈아씨는 10여 분간 사전투표 조작론을 펼친 뒤 “이 내용은 내가 작성한 게 아니다. 일부는 기도를 통해 계시받았고, 대부분은 정의감이 살아 있는 국민들의 제보를 통해 작성했다”라고 주장했다. 장내에 웃음은 터지지 않았다.

민경욱 의원과 연사들이 이날 꼽은 증거는 대부분 논파됐다. 강력한 반증은 전례다. 투표용지에 QR 코드가 쓰인 것도, 몇 지역의 정당별 득표비율이 비슷하게 나온 것도 처음이 아니다. 미래통합당 계열 정당이 이긴 선거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민 의원이 들어 보인 투표용지에 대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 설명은 ‘도난’이다. 5월12일 중앙선관위는 ‘경기 구리시 선관위가 보관하던 잔여 투표용지를 성명불상자가 탈취했다고 추정’한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대검찰청에 이 건의 수사를 의뢰했다. 민경욱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나를 경찰이나 검찰이 조사한다면 부정선거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다는 말이 되겠다. (…) 자유민주주의 수호 제단에 내 피를 뿌리겠다”라고 썼다.

미래통합당 반응도 선거 조작론에 호의적이지 않다. 당 차원의 대응이 나오지 않는다. 사전투표 조작 의혹 대응 특위를 구성하려 한다는 〈한경닷컴〉 보도(4월29일)가 나왔지만, 미래통합당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권성동, 장제원, 하태경 의원 등 여러 미래통합당 의원이 조작론에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이준석 최고위원은 5월12일 페이스북에 “선거 시스템을 제물 삼아서 장난칠 거면 걸어라, 정치생명을. 아니면 유튜브 채널을”이라고 썼다.

눈길을 끄는 것은 보수 유튜브의 반응이다. 극우 논객으로 이름난 이들이 선거 조작론을 앞장서 비판한다.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는 5월13일 유튜브 영상에서 “의혹에도 수준이 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의혹, 광주사태(광주민주화운동) 때 북한군 600명이 들어왔다는 의혹 같은 건 의혹이 아니라 거짓말이다. 사전투표 조작설도 이런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조갑제닷컴에 올린 ‘광주사태 북한군 투입설과 사전투표 조작설의 공통점’에서 그는, 이번 논란이 “좌파에 조롱거리를 제공, 우파의 외연 확대를 어렵게 만든다. (…) 거짓말하는 우파는 참말 하는 좌파보다 나쁘다”라고 썼다. 사이트에서 이 글은 ‘유머’ 탭에 분류되어 있다.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주필은 5월13일 “기본적으로 이 사안은 의혹(의 대상)이 아니다. ‘왜 득표 비율이 63:36이냐’, 이런 의혹들이 예전에도 나왔고, 지금도 똑같다는 걸 좀 기억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진TV의 김진씨는 5월5일 “재검표 결과 선거 조작설이 사실로 드러나면 김진TV 문을 닫겠다. 허위로 드러나면 공병호TV 문 닫아라”고 말했다. 그는 “선거 조작설이 사회에 해악을 주는 레드라인(red line)에 이르렀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영상에 달린 댓글 반응은 대체로 차갑다. ‘조작론을 인정하지 않으면 구닥다리’라는 식의 비판이 눈에 띈다. “정규재, 조갑제 선생님들 제발 디지털적 사고를 가졌으면 합니다” “꼰대가 달리 꼰대인가? 생각이 갇혀 있으면 꼰대이지…” 채널 구독을 취소한다는 댓글도 적지 않다.

선거 조작설을 비판하는 조갑제닷컴 조갑제 대표, 정규재 펜앤드마이크 주필, 김진TV 김진씨(왼쪽부터).

‘모금’ 둘러싸고 대립각 세우는 보수 유튜버

반면 보수 유튜브 업계의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는 ‘신의한수’와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는 선거 조작론을 주도하고 있다. 두 채널은 지난 3주 동안 관련 영상을 각각 50개 이상 올렸다. 5월11일 민경욱 의원의 행사를 현장 중계하기도 했다. 가세연 중계방송에는 일부 시청자들의 생방송 채팅이 남아 있다. 민경욱 의원이 열거한 ‘증거’가 “가세연이 먼저 지적한 것”이라며 ‘저작권’을 주장하는 글도 많다. 신의한수는 영상에 색다른 광고를 덧붙여 편집했다. 5월11일 행사 하이라이트를 3개로 나눠 올렸는데, 각 영상 말미에는 방송 진행자가 직접 하는 녹용 광고를 덧댔다. “관련자들에게 부정선거의 책임을 묻는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라는 공병호 전 위원장의 얼굴이 페이드아웃 된 뒤, 신혜식 신의한수 대표가 등장해 “러시아산 아바이스크 녹용을 18만원에 한정 판매한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가로세로연구소 YouTube 갈무리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의 방송 모습.

두 채널은 선거 조작론을 함께 주도하는 혈맹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상호간에 미묘한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가세연의 ‘모금’ 문제 때문이다. 가세연은 4월20일 영상에서 ‘투표진실찾기펀드’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민경욱 의원이 재검표를 신청하기 위해 필요한 6000만원을 모금한다는 것이다. 방송을 진행한 강용석 변호사는 자신의 개인 계좌번호로 모금을 진행했고, 4월22일 모금이 마감됐다. 이에 대해 4월23일 신의한수는 ‘민경욱 6000만원 필요 없다! 진실규명 간다!’라는 영상에서 가세연을 비판했다(가세연이나 강용석씨를 언급하지 않고 ‘모 유튜버’라고 했다). 정치자금법상 국회의원에게 기부할 수 있는 연간 후원금 액수가 2000만원까지이기 때문에 민 의원은 6000만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가세연은 2차 모금을 시작했다. 5월12일 강용석 변호사는 가세연 방송에서 “100군데 소송을 준비 중”이라며 “인지대로만 4억5000만원을 사용했다”라고 밝혔다.

보수 유튜버인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4월27일 방송에서 “민경욱이 돈 먹고 재검표 안 하면 내가 사기죄로 싹 다 고발할 거다. 강용석까지”라고 말했다. 4월22일 영상에서 변 대표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대한 음모론’을 펼쳤다. “사탄파(사기탄핵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한 세력을 뜻한다) 진영에서 보수 개돼지들을 음모론 가두리에 가둬 말려 죽이려는 정치공작이다.” 그는 이번 의혹이 “태블릿 PC 조작설이나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 병역 의혹과는 다르다”라고 주장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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