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우리, 함께
희정 지음, 갈마바람 펴냄

“싸우는 사람들은 하늘에 오르고, 땅에 온몸을 붙이고, 수십 일을 굶고 나서야 세상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는다.”

공장을 점거하고, 굴뚝에 오르고, 오체투지를 하는 이들이 있다. 408일간 굴뚝 농성을 했던 파인텍 노동자들, 510일 동안 망루 농성을 했던 택시 노동자, 7개월간 노숙 농성을 이어갔던 톨게이트 노동자들…. 이 책은 투쟁하는 사람들, 그 곁에서 밥을 짓고, 노래를 부르며 연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싸우는 사람들에게는 ‘왜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싸우느냐’라는 질문이 향하지만, 이는 이 투쟁이 얼마나 정당한지 스스로 증명하라는 압박이기도 하다. 저자는 섣불리 ‘처절하거나’ ‘특이한’ 이야기들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고공농성 ○○일째’라는 말 뒤에 있는 사투를 가까이서 보여준다. 저자가 보기에 이들은 답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이대로 괜찮은지’ 묻는 사람이다.

 

 

 

 

 

 

 

 

 

 

망설임의 윤리학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서커스 펴냄

“나는 ‘정의의 사람’을 싫어한다.”

주제의식과 밀도 면에서 ‘21세기형 새로운 사상가’의 탄생을 알린 기념비적 저서로, 현재까지 일본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저자의 대표작이다. 책은 ‘페미니즘/젠더론’ ‘전쟁론/전후 책임론’ ‘타자/이야기론’이라는 세 가지의 큰 테마로 구성되었다. 주로 비판의 표적이 된 것은 페미니스트와 포스트모더니스트다. 저자는 그들을 겨냥한 이유에 대해서 “그들이 최대의 적이라서가 아니라 나와 가장 가까운 이웃이기 때문이다. 나는 페미니즘에 깊은 공감을 느끼고 포스트모더니스트의 어법에서 공통점을 느낀다. 그들이 나의 이의신청을 들어줄 대화적 지성이 겸비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하지만 뭔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일부러 발신한 것”이라고 밝혔다.

 

 

 

 

 

 

 

 

 

 

 

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다산책방 펴냄

“딸의 책상 서랍 안쪽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떼었다. 오래되어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 2월, 취재차 시골에서 많은 할머니들과 보냈다. 할머니들의 묵은 짐과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오랜 짐의 대부분은 이미 품을 떠난 자식들의 것이었다. 어느 집 책상에는 ‘청춘 스타’ 김민종의 얼굴이 새겨진 별 모양 스티커가 색이 바랜 채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 소설집 속 어떤 장면들을 매우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고, 책을 펼치기 전 제목을 읽었을 때 이미 예상했던 대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울음을 삼켜야 했다. 독자들 역시 황예인 평론가의 발문 제목처럼 ‘아직은 아니지만, 동시에 이미 할머니가 되어’ 여섯 편의 소설을 통과할 것이다. 운이 좋다면(그렇게 오래 살 수 있다면) 할머니는 여성인 나의 미래다. 동시에 소설은 지금 할머니인 사람들을 재발견하며 여성의 영토를 넓힌다.

 

 

 

 

 

 

 

 

 

 

염증에 걸린 마음
에드워드 불모어 지음, 정지인 옮김, 심심 펴냄

“감히 말하건대 근본적으로 더 나은 방식을 제시한다.”

우울증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우울증에 관해 아는 것은 ‘깜짝 놀랄 정도로 적다’. 신경학자이자 케임브리지 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인 저자는 어떻게 뇌에서 정신질환 증상이 생겨나는지 연구해왔다. 정신과 의사뿐만 아니라 과학자가 되어야 했다. 그는 우울증의 원인을 세로토닌 불균형뿐만 아니라 염증에서 찾는다. 신체의 염증이 우울증 같은 정신적 증상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면역계와 신경계의 상호작용을 연구해 얻은 결론이다. 정신질환을 대하는 종전의 태도와는 조금 다르다. 순전히 마음의 문제 아니면 뇌의 문제라고 보는 양극화된 관점에서 벗어나 몸 역시 우울증의 근원 중 하나라고 보는 시각이다. 우울증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 질환을 이해하는 폭을 넓힌다.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김성우·엄기호 지음, 따비 펴냄

“결국 다른 매체의 사용은 다른 신체를 서서히 구축해가는 거예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튜브가 책을 집어삼킬지 어떨지는 모른다. 다만 유튜브와 책이 우리 짐작처럼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처음에 유튜브를 볼 때 요거만 봐야지 하고 보기 시작하지만 ‘보다 보면’ 저것도 재밌겠네 하면서 계속 보는 행위는, 우리가 읽기에서 상상했고, 또 읽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하는 방식이다. 다만 읽기 문화에서 동영상 문화로 ‘변동’하고 있을 뿐이다.
응용언어학자 김성우와 문화연구자 엄기호 두 저자가 ‘리터러시’(문해력)라는 주제를 붙들고 대담을 이어간다. 읽기는 여전히 유효한지, 다매체 시대에 리터러시 교육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 각자 쌓아올린 고민과 질문을 풀어놓는다. 유튜브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아직까지는.

 

 

 

 

 

 

 

 

 

 

 

예언이 끝났을 때
레온 페스팅거·헨리 W 리켄· 스탠리 샥터 지음, 김승진 옮김, 이후 펴냄

“확신에 찬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책의 서문은 1955년 12월에 쓰였다. 저자들은 ‘인지부조화 이론’을 연구하던 학자들이었다. 자신의 확신과 충돌하는 사건이 일어날 경우 사람들은 어떻게든 태도나 행동을 수정해 현실과의 괴리감을 극복하려 한다는 가정을 증명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독특한 믿음을 가진 종교집단에 직접 들어가 관찰하고, 연구하고, 기록했다.
‘날마다 현장에서 온갖 난관에 정면으로 맞닥뜨려가며 참여관찰 업무를 수행해준’ 많은 조교들의 노고가 뒤따랐다. 자신이 철석같이 믿었던 것과 달리 세상이 망하지도 않았고, 외계인이 자신을 구해주러 오지도 않았을 때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힌트는 책의 첫 문장에 나와 있다. ‘확신에 찬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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