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편지가 도착했다. 페미니즘 출판사 봄알람의 이민경 작가가 ‘코로나 시대의 사랑’이라는 단기 메일링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하여 구독을 신청한 지 몇 주 후였다. 누구든 작가에게 글을 보내면 작가는 일주일에 한 편 정도를 골라 공개 답장을 쓰고 구독자들의 이메일로 전송했다. “여자들은 그렇게 자꾸만 서로에게 응답해…. 시은이 너뿐만 아니라 원래 여자들이 그렇게 편지를 쓴다는 것을 아니?”라고 말했던 첫 번째 편지가 출발한 지 2주째. 뒤이어 네 통의 편지가 수신함에 도착했다.
비슷한 시기, ‘자매애’ 고취 방송 〈시스터후드〉 등을 진행해온 콘텐츠 팀 헤이메이트 또한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뉴스레터를 론칭했다. 4월15일부터 5월6일까지 헤이메이트 윤이나·황효진 작가가 번갈아 서로에게 편지를 쓰고 그것을 이메일로 전달한다. 두 사람의 첫 번째 메일은 지난 4·15 총선을 앞둔 자정에 발송되었다. 윤이나 작가가 황효진 작가에게 전하는 ‘여전히 한국에서, 내 옆의 여자들에게’라는 제목의 편지였다. 작가는 한때 한국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거의 전부라고 믿었던 자신이 이제는 이곳에서 도망치기를 몰래 꿈꾸지 않게 되었다고 말하며 “친애하는 효진씨”에게 “놀랍게도, 덕분입니다”라고 전한다.
개별 수신인이 존재하는 ‘진짜 편지’를 나눈다는 것
두 창작 집단의 메일이 최근 몇 년 사이 유행처럼 번진 기타 메일링 서비스와 다른 부분은 개별 수신인이 존재하는 진짜 ‘편지’라는 점이다. “시은이 안녕?”과 “친애하는 효진씨”. 가상이나 집단의 청자가 아니라 저마다의 이름으로, 얼굴로, 이야기로 실재하는 여자들을 부르는 편지. 그 편지들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여자가 되어, 그 여자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되어 잠시 세상에 존재했다. 다른 이름에 겹쳐진 나의 시은과 효진을 떠올린다. 수정, 송희, 혜원, 지윤, 희영, 수지, 한희, 현정. 그리고 서현….
여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사랑하는 여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여자를 사랑하는 또 다른 여자들과 함께 읽는 경험은 그래서 이토록 중요하다. ‘여자가 여자를 공격한다’는 진부하고 오래된 구도에 우리는 속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여자들은 사실 자신과 서로를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각자의 안팎에서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 시대는 동시에 ‘n번방 사건’ 시대를 경유한다. 현재의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이야기를 긴밀하게 길어 올리던 봄알람과 헤이메이트가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메일을 택한 데에는 분명 코로나19 시대라는 고립의 배경이 존재했겠지만, 그 내용을 실재하는 여자들과 나누는 직접적 사랑의 언어로 구성한 것은 코로나19와 n번방 사건 시대 안에서 이중으로 고립되고 있는 여성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강남역 사건에서부터 n번방 사건을 관통하는 현재까지, 이토록 공고한 가부장의 세계를 인지한 여성들에게 여성혐오와 강간문화를 향한 분노가 필연적인 것만큼, 나와 같은 경험을 하고, 나와 같은 언어로 말하고, 내 곁에서 나와 함께 나아가는 현실의 여성들에 대한 사랑 또한 필연적이다.
n번방 사건 앞에서 여성들은 이렇게 말한다. 지치지 않기. 지겹다고 생각하지 않기. 냉소하지 않기. 잊지 말고 끝까지 지켜보기. 그것이 가능하려면 분노와 슬픔만을 원동력으로 삼을 수 없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여성들과 계속해서 연결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니 계속 여자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놀랍게도, 덕분에 살아 있다’고 말할 것이다. 여자들의 고통만큼이나 여자들 간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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