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키가 231㎝였던 찰스 번의 유골이 영국 런던 ‘헌터리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인류 역사를 들추며 수도 없이 등장하는 사람들의 파노라마를 감상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사람이 태어났을까 싶은 특이한 부류의 출몰에 당혹감을 느낄 때가 있어. 오늘 소개할 존 헌터(1728~1793)라는 영국 의학자도 그중 하나야.

존 헌터는 거의 스무 살까지 읽기와 쓰기를 제대로 못할 정도로 ‘모자란’ 사람이었다고 해. 형 윌리엄은 고향 스코틀랜드를 떠나 런던에서 의학 공부에 매진하고 있는데 동생 존은 그 모양이니 부모도 어지간히 애가 탔을 거야. 모자라기만 하면 다행이지. 어려서부터 그는 무지무지한 괴짜였다. “사람은 왜 알을 낳지 않아요?”라고 끈질기게 묻고 다니는가 하면 자신의 치아를 닭 볏에 ‘심어서’ 뭐가 나는지를 기다리고 벌레나 작은 동물을 잔뜩 잡아다가 요모조모 관찰하는 기묘한 아이였거든. 부모는 형한테 이 골칫거리를 맡기기로 해. “가서 조수라도 하거라.” 이 결정은 존 헌터는 물론이고 후세의 인류에게 빛을 던지는 ‘신의 한 수’가 된단다.

소문난 산과(産科) 의사에 해부학자이기도 했던 형 윌리엄의 조수가 된 존 헌터는 그야말로 물을 만난 물고기 같았어. 어려서부터 곤충과 동물의 몸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동물을 해부하고 표본 만드는 일이 너무나도 신났던 거야. 실험실에서 죽은 동물들은 말할 것도 없고 템스강에 잘못 올라왔다 죽은 돌고래까지 그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다. 그는 그 과정을 꼼꼼히 기록했어. 고래를 해부할 때 “심장이 뛸 때마다 10~15갤런의 피가 한꺼번에 솟구쳤다(〈소형 고래 해부기〉)”라고 기록하고 있으니 그 형상을 한번 상상해보렴.

구할 수 있는 동물은 죄다 해부를 해본 그에게 다음 호기심은 인체로 향할 수밖에 없었겠지. 그는 군의관이 돼 전쟁터로 갔고 총상을 비롯한 각종 부상을 치료하면서 인체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고 지식의 폭을 넓혀나갔다. 그 와중에 존 헌터는 실로 엉뚱하지만 기발한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하곤 했어.

“인체를 한대 지역에서 꽁꽁 얼리면 수명을 언제까지든 늘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물고기를 보면 몸이 다시 녹을 때까지 신체의 모든 작용과 배설 현상이 멈춘다 (···) 인간의 의식과 기능을 일시 중단시키는 이 방법을 택하면 수명을 천 년까지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이건 바로 우리가 SF 영화에서 보는 ‘냉동인간’의 원리 아니겠니. 그는 자신의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 잉어를 꽁꽁 얼렸다가 녹여보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이런 존 헌터에게 절실한 것은 해부하고 연구할 인체였지. 당시 영국에서는 사형대 아래에 의사와 의학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해. 사형수 시신을 해부용으로 쓰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었거든. 사형수도 많았지만 인체를 원하는 사람들은 더 많았기에 언제나 시신은 부족했지. 탐구욕이 지나친 의사들은 심지어 갓 장례를 치른 무덤을 파헤쳐 시신을 훔쳐오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어. 존 헌터의 시대로부터도 한참 뒤인 1828년 자신의 여관 투숙객들을 살해해 시신을 의사들에게 팔아넘긴, 엽기적인 연쇄살인범 존 버크가 등장했으니 그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겠지?

ⓒWikipedia존 헌터는 스무 살까지 제대로 읽기와 쓰기를 못했지만, 이후 뛰어난 과학자이자 외과의사로 이름을 알렸다.

존 헌터 역시 인체에 목마른 의사 중 하나였어. 존 헌터는 말단비대증 환자로 키가 231㎝였던 아일랜드인 찰스 번에게 주목했다. 병적으로 큰 키 덕에 런던의 구경거리로 살아가던 찰스 번은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자신의 시신이 해부용으로 쓰일 것을 두려워했어. 그래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관을 납으로 만들어 밀봉한 후 바다에 던져달라고 유언했지. 장례식 이후 바다에 던져진 건 돌로 가득한 납관이었다.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존 헌터는 찰스 번의 시신을 빼돌려서 연구용으로 썼던 거야. 찰스 번의 유골은 지금도 런던의 헌터리언 박물관(Hunterian Museum)에 보관돼 있어. 존 헌터는 사형수의 시신에 전기를 흘려 부활시켜보려는 실험도 했어. 작가 메리 셸리가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의 캐릭터에는 존 헌터의 모습도 녹아 있는 셈이야.

이렇게 말하니 존 헌터가 냉혈한 같지만 지금과는 시대와 개념이 다르니 너무 나쁘게 보지 말기 바란다. 존 헌터는 그런 지독한 연구를 바탕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이기도 하니까. 동물의 장기를 동종에게 이식한 ‘장기이식’의 선구자이기도 하고, 신체적 문제로 임신이 불가능한 남성의 정자를 아내에게 주입해 세계 최초로 ‘인공수정’에 성공한 의사이기도 했지. 1785년 존 헌터는 동맥류(혈관의 일부가 늘어나 풍선처럼 보이는 증상)로 허벅지가 부어올라 3년 동안 걷지 못하는 마부를 만난다. 당시 상식으로는 다리를 절단해야 했지만 헌터는 부종의 위쪽 부위인 사타구니를 절개해보기로 했어. 숱한 시신을 해부하면서 얻은 해부학적 지식의 소산이었지. “예상대로 손상된 동맥이 나타났고 부종 주위로 테이프를 감아 조여서 동맥의 두께를 줄였다. 6주 만에 마부는 걸어서 병원을 나갈 수 있었다(수전 앨드리지, 〈질병과 죽음에 맞선 50인의 의학 멘토〉).”

천연두 연구하던 제너에게 내린 지침

그에게는 자기만큼이나 열정적인 제자가 많았어. 예컨대 미국에서 대서양을 건너와 헌터의 제자가 됐던 필립 피직은 미국 외과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며 여러 수술 도구와 방법을 개발한 사람이야. 고향 필라델피아에 황열병이 대유행할 때 의료진 대부분이 몸을 피하는 상황에서도 병원을 지킨 의사였지. 그리고 존 헌터의 제자 가운데에는 인류의 공적(共敵)인 천연두를 물리칠 종두법을 도입한 에드워드 제너(1749~1823)도 있었어. 제너는 고향 마을에서 의사로 살다가 우유 짜는 이들이 소위 천연두라 할 우두(牛痘)를 경험한 뒤에는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천연두를 치료할 종두법을 구상했어. 우두에 걸려본 사람이라고 해서 무작정 천연두를 접종하는 건 매우 망설여지는 일이었지. 천연두에 걸리면 그야말로 낭패 아니겠니.

이때 존 헌터는 제자에게 아주 명료한 지침을 주지. “왜 머리만 굴리고 있나? 실험을 해!” 마침내 제너는 우두에 걸려본 노인을 섭외했고 그에게 천연두를 접종해본다. 다행히 노인은 무사했어. 수천 년간 수억 명의 인류를 쓰러뜨린 전염병 천연두의 멱살을 제대로 거머쥔 순간이었지.

헌터는 다른 사람과 동물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인체 실험도 불사했어. 그는 성병인 매독과 임질이 같은 병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각각 병에 걸린 환자의 고름을 모아 자신의 몸에 주입했단다. 두 가지 질병을 분간하기 위해 스스로 매독과 임질에 감염된 거야. 질병의 진행 과정을 보기 위해 치료를 하지 않으며 버텼지만 당연하게도 실험은 실패했어. 애초에 두 병은 다른 병이었으니까. 이 실험은 그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남겼고 어느 날 존 헌터는 회의 도중 대동맥이 파열돼 쓰러지고 말았어. 매독은 드물지만 심장에 가장 가까운 대동맥 부위에 동맥류를 형성하기도 하거든. 아직 연금술이 과학 행세를 하던 18세기, 인류의 고통을 줄이고 질병의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인생을 던지고 자신의 몸까지 ‘갈아 넣었던’ 괴짜 의사의 최후였다.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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