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제활동이 마비되고 실업자가 2200만명까지 치솟자 경제활동 재개를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4월23일 〈폭스뉴스〉에 출연해 “늦어도 여름 후반기까지는 경제활동 대부분이 재개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낙관론을 피력했다. 구체적인 실행 지침과 시기를 놓고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에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주에서는 지사와 시장 간 의견 충돌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16일 ‘3단계 재개 지침’을 발표했다. 제목은 ‘미국 다시 열기’다. 핵심은 3단계에 걸쳐 영화관이나 식당 등 다중 이용시설을 시작으로 마지막에 일반 직장까지 열도록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시점과 시행 방법 결정은 50개 각 주의 지사에게 맡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침을 발표하면서 “이르면 29개 주가 곧 경제활동을 재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특히 몇 개 주에서는 당장이라도 가능할 것이다”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 지침을 시행하려면 연방정부가 제시한 3가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경제활동 재개에 앞서 2주일 동안 코로나19 감염병의 확진세가 감소해야 한다. 둘째, 병원이 환자를 치료할 병상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최일선 의료 종사자들을 위한 진단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런 요건이 이루어지면, 1단계로 영화관·식당·스포츠센터·예배당·체육관 등이 문을 열 수 있다. 2단계에는 ‘필수적이지 않은 여행’이 가능하며, 주점과 학교, 청소년단체 활동도 재개된다. 마지막 3단계에서는 직장이 문을 열고 병원·양로원 방문도 허용된다. 물론 1~3단계 모두에는 전제조건이 달려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침 어디에도 ‘광범위한 검사’ ‘확진자의 이동경로 추적’ 같은 조항은 찾아볼 수 없다.
미국 남부의 일부 주는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을 유지한 채 경제활동 재개를 위한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4월20일부터 일상용품 가게, 백화점 등 소매업체의 영업을 허용했다. 조지아주에서는 4월24일부터 실내 체육관이나 이발소·볼링장·미용실·식당·영화관 등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테네시주는 연방 차원의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지침이 만료되는 4월30일 이후부터 곧바로 경제활동 대부분을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오하이오, 버몬트, 플로리다, 몬태나주는 4월 하순부터 1단계 지침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민주당 소속 주지사들이 이끄는 미시간·미네소타·버지니아 등은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이런 지역의 보수 단체는 경제활동 재개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지지하는 트윗을 올려 논란을 빚기도 했다.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도 경제활동 재시작에 앞서 광범위한 코로나19 검사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서부 최대의 캘리포니아 주정부 역시 경제활동을 재개하기 전에 광범위한 검사,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들에 대한 이동경로 파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메릴랜드, 버지니아주 등 워싱턴 인근 수도권 지역의 경우 확진자가 4월 하순 현재 3만명을 돌파하는 등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 주에서는 주지사와 시장 간 의견 충돌로 주민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 경제활동을 재개한 조지아주의 경우 애틀랜타시의 케이샤 보텀스 시장은 ABC 방송에서 “시민들에게 자택에 머물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계속 유지하라고 권하겠다”라고 말했다. 오거스타시의 하디 데이비스 시장도 “체육관이나 이발소 등은 사람들 접촉이 많은 곳인데 어떡하란 말이냐?”라며 주지사의 성급한 결정을 성토했다.
현재 경제활동 재개에 들어간 주들은 물론이고 이를 준비 중인 주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충분한 검사’ 가능 여부다. 경제활동 재개에 직접적 이해관계가 걸린 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 주요 대기업들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비영리단체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조슈아 볼턴 회장은 CNBC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 〈파워런치〉에서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기업 총수들은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검사야말로 경제활동을 신속하고도 안전하게 재개할 수 있는 절대 요건이라고 믿는다.”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회장도 최근 주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팬데믹 상황에서 경제활동을 본격적으로 다시 하려면 세계적 차원의 대량 검사가 시급하다”라고 말했다.
“경제활동하려면 광범위한 검사 필수”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검사 현황은 어떨까? 트럼프 대통령은 “검사능력이 충분하다”라고 주장한다. 앞으로 수주일 내에 여러 지역에 진단키트 550만 개를 보내는 한편 국방물자생산법 발동으로 검사에 필요한 의료용 면봉의 월 생산량을 2000만 개 이상 늘린다는 방침이다. 여러 민주당 의원과 일선 보건 당국자들은 검사용 의료장비가 부족하다며 대통령의 방침에 비판적이다. 앵거스 킹 민주당 상원의원은 백악관의 코로나19 대응을 진두지휘 중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연방정부가 전국적 차원의 검사 및 진단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것은 직무유기다”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하루 평균 14만6000명이 코로나19 검사를 받는다. 360만 건 검사가 진행됐다. 만약 전국적으로 5월 중순부터 경제활동을 재개하려면, 그때까지 하루 50만~70만 건의 검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하버드 대학 연구진의 분석이다. 하버드 대학 부설 세계보건연구소의 아시시 즈하 소장은 “경제활동 재개를 위해선 양성 반응자를 가급적 많이 찾아내 격리시켜야 한다. 5월 중순까진 지금의 감염 확산세가 주춤해지겠지만 경제활동을 다시 시작하려면 광범위한 검사가 필수다”라고 〈뉴욕타임스〉에서 밝혔다. 미국 내에서는 지금까지 검사를 받은 사람 가운데 20%가 양성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를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치인 10%까지 줄이려면 지금보다 광범위한 검사가 필요하다. 검사받은 이들 가운데 양성 판정 비율을 보면, 독일이 7%이며 코로나19 대응 모범국으로 꼽히는 한국은 3% 선이다.
뉴욕에 본부를 둔 록펠러 재단은 최근 연구보고서에서 경제활동 재개에 필요한 전제조건을 달았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오는 6월 하순까지 매주 300만 건의 검사를 실시해야 한다. 이 기간에 확진 여부를 가려내고 확진자와 접촉자들, 나아가 고위험군을 파악하는 데 성공할 경우에만 전국 차원에서 경제활동을 포함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부분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미국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워싱턴포스트〉가 4월21일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5월 초에 경제활동이 재개되길 바라는 이들은 응답자의 10%에 불과했다. 5월 말이라고 꼽은 이들은 응답자의 21%였다. 6월 이후 경제활동이 재개되기를 바라는 이들도 65%에 달했다. 여론은 성급한 재개에 부정적이라는 의미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하루라도 빨리 경제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민심의 불안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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