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조정진씨(사진)는 한 주상복합 건물의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조정진씨는 1957년생이다. 1978년 공기업에 공채로 입사했다. 38년을 근무한 뒤 2016년 60세 나이로 정년퇴직했다.

은퇴를 준비하지 않은 건 아니다. 월 20만원씩 개인연금을 20년 넘게 부었다. 막상 수령하려니 월 10만원 남짓밖에 받을 수 없었다. 종신 수령하려면 금액이 반으로 줄었다. 국민연금은 62세부터 지급될 예정이었다. 60세부터 받으면 수령액이 많이 줄어든다고 했다. 퇴직금은 중간정산으로 미리 받아 집 마련에 썼다. 임금피크제 적용이 개시되는 퇴직 4년 전에 나머지 퇴직금을 받았다. 저축한 돈은 딸 혼사에 대부분 들어갔다.

가장 큰 변수는 아들이었다. 인문계열 대학 3학년이던 아들은 취업 대신 3년 과정의 전문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어 했다. “제가 은퇴 계획을 세울 때만 해도 서른 넘어 취업하고 결혼하는 세상이 아니었습니다. 공부 웬만큼 하면 어디 공채로 들어갔지, 지금처럼 대학생들이 졸업을 미뤄야 할 만큼 취직이 어렵진 않았어요. 시대가 너무 빨리 변했어요. 주변에 보면 은퇴할 때 자녀가 모두 취업한 행운을 누리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문과대학 나오면 정규직 취업이 10%밖에 안 된다고 하데요. 90%는 비정규직이라는 얘긴데, 어느 부모가 애들이 비정규직으로 살길 바라겠습니까. 당장 월 200만원씩 받아서 먹고는 살겠지만, 젊은이들이 비정규직이라는 것은 꿈이 없잖아요. 그걸 아니까, 부모로서 정규직 될 때까지 부양해야죠.”

그는 친지의 도움으로 한 중소 광고회사에 취업했다. 여자 직원들은 “아버님, 아버님”, 남자 직원들은 “어르신, 어르신” 했다. 회식을 가면 ‘동료’들이 꿇어앉아 두 손으로 술을 따랐다. “고위 임원이면 몰라도, 동등한 위치에서 일하는데 ‘어르신’ 이러면 같이 하지 말자는 얘기죠. 나이 먹은 사람은 공채하는 데가 거의 없고 다 소개로 가는데, 그 자체부터 젊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더라고요. 좋은 일자리를 얻어도 1, 2년 근무하면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니 밀려나고요.” 조씨는 38년을 사무직으로 일했다. 선박 관리 같은 까다로운 업무도 해봤다. 뭐든지 잘할 자신이 있었다. 주택관리사 등 자격증도 있다. 하지만 조씨의 ‘사무직 숙련’은 아무 쓸모가 없었다. “경력이란 게 녹슨 훈장이에요. 경력이 문제가 아니라 나이가 문제더라고요. 이럴 바엔 단순노무직으로 깨끗하게 일하는 게 마음 편하겠다 싶었어요.”

버스회사 배차계장으로 취직했다. 사람들은 조씨를 “임계장, 임계장”이라고 불렀다. 성씨를 잘못 안 줄 알았다. 알고 보니 ‘임시 계약직 노인장’이라는 뜻이었다. 사람이 하도 바뀌니 일괄해서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기분이 나빴다. 임시 계약직이라는 대목보다도 ‘노인장’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내가 무슨 벌써 노인이냐 하는 생각에 받아들이기가 힘들더라고요. 노인이란 말이 아주 듣기가 싫었어요.” ‘임계장’ 생활을 시작한 조씨는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너무한 게 아니라 불법”인 상황에 자주 맞닥뜨렸다. 회사 다닐 때 노무관리도 해본 조씨는 노동청에 신고했다. ‘그런 불법은 너무 만연해서 신고감도 아니다’ 같은 반응이 돌아왔다. 억울한 마음을 하소연할 데가 없어 “수첩에 응석”을 부렸다. 셔츠 주머니에 손바닥만 한 수첩을 넣고 다니며 ‘나이란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는 것이다’와 같은 문구를 틈틈이 적었다. 우연히 읽어본 동료들이 출판을 권했다. 2년8개월간 쓴 수첩 10권을 바탕으로 책 〈임계장 이야기〉(후마니타스)를 펴냈다.

ⓒ시사IN 신선영조정진씨는 2년8개월간 수첩에 쓴 노인 시급 노동자 이야기를 바탕으로 〈임계장 이야기〉를 펴냈다.

고르기도, 다루기도, 자르기도 쉬운 ‘임계장’

조씨가 다닌 공기업은 ‘신의 직장’이라 불렸다.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낸다’는 얘기로 들려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퇴직하고 보니 공기업은 진짜 신의 직장이었다. “‘철밥통’이라고 하잖아요. ‘자른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요. 들어오면 거의 다 정년까지 가요. 신분보장 하나는 완벽하니까.” 시급노동의 세계는 달랐다. “‘고다자’란 얘길 처음 들었어요. 용역회사 직원들이 우리를 부르는 말인데, ‘고르기 쉽고, 다루기 쉽고, 자르기 쉽다’는 뜻이에요. ‘고다자’도 아니고 ‘고다짜’ 그래요. ‘저것들은 고다짜니까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인력이다…’ 노인들이 듣기에 굉장히 좀 서러운 이름이죠.” 그가 한창 일할 때만 해도 비정규직이 없었다. 청소원도 경비원도 그가 일하던 공기업의 정규직이었다. 퇴직하기 10년 전부터 아웃소싱이 급속도로 이뤄지더니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아졌다. 조씨도 은퇴 뒤엔 비정규직을 피하지 못했다.

4년 동안 네 번 잘렸다. 버스회사 배차계장으로 일하면서 소화물을 옮기던 중 다쳤다. 사흘간의 무급 질병휴가를 신청했다가 해고되었다. 빌딩 주차관리원으로 일할 땐 빌딩에 입주한 보험회사 간부 사모님을 몰라본 죄로 잘렸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던 시기엔 자치회장의 심기를 거슬러 재계약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버스터미널 보안요원으로 일하는 중에 쓰러졌다. 척추 감염이라는 중병에 걸렸다. 대학병원에 입원한 다음 날 전화로 해고되었다. ‘자발적 퇴사’로 처리되어 실업급여는 물론이고 해고예고수당(30일 전에 미리 해고 통지를 안 한 경우 지급해야 하는 한 달 치 통상임금)도 받지 못했다. 대기업 계열의 용역회사인데도 그랬다.

정규직 노동과 시급 노동의 가장 큰 차이를 묻자 조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프면 그만둬야 한다는 건 정규직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 그런데 비정규직 노인 노동은 하루만 아파도 일터를 잃어요. 대체인력이 없거든요. 원래는 용역회사가 예비 인력을 1~2명 뒀어야죠. 사람은 누구나 아플 수 있고 다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노인 노동자는 지원자가 많아서 용역회사들이 이력서를 쌓아두고 있어요. 지금 한 명 잘라도 당장 내일 다른 사람이 옵니다. 차질이 없죠.” 산재를 다퉈볼 수는 없느냐는 질문에 조씨는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말한다. “놀란 게, 일하다 다치거나 아프다고 하면 ‘그게 노환이지 뭐’ 그래요. 아프면 정규직처럼 직업과의 관련성도 따져봐야죠. 진짜 이 사람이 노환인지 아닌지를. 아픈 것과 업무 간의 연관성을 환자가 입증하라고, 부당해고면 소송하라고 하는데 대법원 가면 3~4년 걸리고, 이겨봐야 남은 계약기간 임금이 얼마나 되겠어요. 소송해봐야 득이 안 된다는 걸 고용주들이 아는 거죠.”

그래서 “60세가 넘은 사람은 법이 있어도 적용이 안 된다”라고 조씨는 단언한다. 특히 고용노동부가 경비원을 ‘감시·단속적 노동자’로 승인하는 관행이 잘못되었다고 조씨는 본다. 감시·단속적 노동자란 ‘감시 업무가 주 업무로서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적거나, 근무가 간헐적으로 이뤄져 대기시간이 많은 업무 종사자’를 말한다. 감시·단속적 노동자로 승인받으면 근로기준법상 노동시간, 휴게, 휴일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문제는 시대가 변했다는 것이다. “제가 아파트 경비원 할 때 두 동을 담당했는데, 이쪽 동에 경비실이 3개, 저쪽 동에 4개 있었어요. 예전에는 경비실마다 한 명씩 7명이 근무했어요. 그런데 최저임금이 오르고 나서는 7개 경비실을 저 혼자 담당했어요. 7명이 할 일을 1명이 하면 그게 간헐적으로 쉬엄쉬엄 되겠습니까?” 그는 처음 아파트 경비 업무를 시작할 때 받은 일과표를 보여주었다. 30분 단위로 할 일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최저임금이 올라도 그만큼 휴게시간을 늘려버리니 아파트는 더 주는 게 없고, 노무자들은 더 받는 게 없죠. 휴게시간에 쉬는 사람은 없어요. 밥을 5분 만에 먹어요. 택배 물량은 늘고, 경비원 실명제라고 해서 모든 엘리베이터에 제 전화번호가 붙어 있어요. 계속 전화가 와요. 경비원이 경비실 문 잠그고 ‘나 휴게시간이야’ 할 순 있는데 그럼 그다음 날 그만둬야죠.”

조씨는 7개월 투병 끝에 지난해 4월부터 한 주상복합 건물에서 경비원 겸 청소원으로 일한다. 지금도 감시·단속적 노동자다. 아침 7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하는 조씨의 하루 휴게시간은 8시간이다. 물론 그 시간에 실제로 쉬지는 않는다. 그만큼 임금이 빠질 뿐이다. “그래도 여기는 퇴근이라도 할 수 있어서 나아요. 아파트 경비원은 24시간 격일제가 많은데, 교대근무 중에서도 가장 가혹한 형태거든요. 감시·단속적 노동자니까 그게 가능한 거예요. 고용노동부도 경비원이 감시·단속적 노동자가 아니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전 국민의 60%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한국 오피니언 리더들이 모두 아파트에 사니까 아파트에 불리한 해석을 못하는 거예요. 소상공인은 좀 어려울 수 있는데, 아파트 같은 데는 관리비 2000원, 3000원 올리면 해결될 수 있거든요. 당장 노동부가 감시·단속적 노동자가 아니라고 해석하면 24시간 격일 근무를 못 시켜요. 주 52시간이 넘어버리니까.”

노인 노동자, 정신·신체적으로 학대받아

조씨가 느끼기에, 노인 노동자들은 정신적·신체적으로 학대받고 있다. 조씨는 겨울에 밖에서 일하니 추워서 회사에 방한복 지급을 요청했다가 “노인도 추위를 타십니까?”라는 말을 들었다. 택시 하차장 배기가스가 심해 마스크 이야길 꺼냈더니 “염병… 다 늙은 경비가 얼마나 오래 살고 싶어서”라는 말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우리가 하는 이런 일은 아무리 일자리가 없어도 젊은이들이 안 해요. 냄새 때문에, 더러워서 못해요. 노인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로봇이나 인공지능도 못해요. 그렇다면 일하려는 노인이 많다고 하더라도 고용주는 존중해줘야죠. 노인이 한다고 해서 노동의 가치가 떨어지고, 혹사가 당연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노동이든 생계를 위한 것이고, 가족을 부양하니까. 사람들은 다 늙잖아요. 이대로 놔두면 내가 죽고 다른 사람이 오더라도 계속 같은 일을 당하게 돼요.”

조씨가 속한 베이비부머 세대(1955~ 1963년생)의 은퇴는 2021년부터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노인(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로 2025년 즈음 진입한다. 국민연금 수급 연령과 정년퇴직 연령을 맞추는 문제 등 어려운 과제가 놓여 있다. 이미 생계를 위해 일하는 노인 노동의 문제도 그중 하나다. “정년 연장은 청년 일자리 문제와 직결되니 갈등이 수반돼요. 사회 구성원의 합의도 필요하고 정교한 계획이 있어야 할 거예요. 그런데 제가 책에 쓴 문제는 사람들의 작은 인식 변화만 있으면 내일이라도 해결될 문제예요. 제가 경험한 바, 노인들은 요구사항이 많지가 않아요. 부당해도 웬만하면 참고 견뎌요. 아플 때 바로 자르는 것 정도만 고쳤으면 하는 거예요. 제 책을 아파트 주민들하고 고용노동부 직원들이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사회에서도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결국 국민들이 하는 일이고, 내 친구의 아버지, 나아가서는 내 일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조씨는 정갈한 필체로 쓴 자기소개서를 보여주며 “이렇게 취직하기가 어려운데 자를 때는…”이라고 말했다. 각종 경험을 들며 자신의 차별성을 증명하는 것이 여느 취업준비생 자기소개서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최근 출산한 딸이 아직 책을 읽지 않았다며 “딸이 많이 속상해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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