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은 그림

아,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선배들과 신입생 동기들 앞에서 한 명씩 자기소개를 하는 중이었다. 나를 뭐라고 소개해야 하나. 대체로 출신 지역, 출신 고교를 밝힌 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는 경우가 많았다. 엄청난 매력을 뿜어내며 자기소개를 한 뒤 호감 어린 시선을 받는 신입생도 있었다. 하필 내 바로 앞 차례의 동기가 그런 쪽이었다. 청산유수로 자신의 특기와 관심사에 대해 말하다가 좌중을 둘러보며 세련된 미소를 짓던 그는 재수생이라고 했다. 그의 화려한 언변에 주눅 든 나도 뒤이어 일어나긴 했는데 뭐라고 자기소개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조금 뒤 이제 끝났다는 후련함과 안도감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던 것만 생각난다. 편안한 마음으로 남은 자기소개를 듣던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동기 여학생 한 명이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저는… 저는 사람들이 저보고 바보라고 하는데요,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그곳은 초등학교가 아니라 대학. 꽤 어려운 시험을 통과하고 들어온 대학의 신입생 환영회 자리였다. 그곳에서 들을 것으로 예상하기 힘든 내용과 태도에 깜짝 놀란 이가 나만은 아니었을 터이다. 열댓 명의 그렇고 그런 인사가 지겨워질 무렵 그의 자기소개는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다. 그는 거의 식은땀을 흘리면서 말하고 있었다.

아마 앞으로도 잊히지 않을 자기소개. 자기가 생각한 자신을 그렇게까지 포장 없이 세상에 내뱉다니. 다들 어떻게든 자신을 미화하거나 최소한 감추려 발버둥을 치던 시절이었다. 쟤는 왜 저렇게 황당한 소릴 내뱉은 걸까. 그런데 그의 자기소개는 세월이 흐르며 재해석되었다. 그는 자기소개를 망친 사람이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 남다르게 솔직한 사람이었던 것이라고. 특별히 친하진 않았지만 4년간 주변에서 본 바에 따르면 그 친구는 독특한 매력의 소유자였다. 학과 활동도 열심히 했고 멀쩡히 졸업했다.

나는 졸업 후에 종종, 특히 교사가 된 후로는 매해 3월이면 그가 떠올랐다. 신학기에 긴장된 모습으로 앉아 있는 학생들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되도록 자신의 가장 매끄러운 모습, 최선의 상태를 어필해야 하는 절박함이 묻어나는 모습들 말이다.

학급당 인원수 감소, 그만큼 좁아진 인간관계

요즘 고등학교는 대부분 학급당 인원수가 30명 안팎이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아주 쾌적해졌어. 좋겠어.’ 부러워하기만 할 수 없는 게 언젠가부터 3월에 고등학생들이 불안해하는 정도가 조금씩 심해진다는 걸 깨달았다.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학급당 인원수이다. 특히 남녀 합반의 경우 동성 급우가 열 명 수준이거나 심지어 한 자릿수인 경우도 생긴다는 점에 주목해 보자. 남녀공학이더라도 대부분 고등학교는 학급이 동성으로 구성되고 인원이 50~60명이던 때와 사정이 다르다. 선택지가 50~60명에서 열댓 명으로 줄어든 경우 자신의 ‘솔메이트’를 찾을 확률은 현저히 줄어든다. 그 좁디좁은 선택지 내에서 재빨리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화장실에 함께 가고 급식 줄도 같이 설 단짝, 그리고 자기가 속할 그룹을 찾고 결정해야 한다. 1년을 결정할 그 중요하고도 미묘한 관계가 3월 내에 형성된다.

신학기를 준비하던 청소년들은 얼마나 가슴이 울렁거리고 설레었을까.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것이 유예되었다. 자기소개는 물론 전국연합학력평가도 미뤄지고 이후 일정도 오리무중이다. 이럴 때 고등학생은 뭘 하면 좋을까. 자기주도학습도 좋고 이참에 독서도 좋다. 거기에 더해 자기가 진짜 누구인지 탐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자기소개란 남에게 하기에 앞서 자기 자신에게 먼저 해야 하니 말이다. 내 동기처럼 파격적인 자기소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에게 하는 진짜 자기소개를 해보길 권한다.

기자명 정지은 (서울 신서고등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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