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2월5일 미래한국당 중앙당 창당대회에 한선교 당 대표(오른쪽)와 당시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참석했다.

이번 총선부터 적용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정치권에 후폭풍을 가져왔다. 비례대표 전문 정당을 둘러싼 소동이 여야 양쪽에서 벌어졌다. 미래통합당의 비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은 비례대표 후보들을 독단적으로 결정해 미래통합당과 갈등을 빚었다. 비례대표 전문 연합정당을 추진하던 더불어민주당은 플랫폼 세력과 참여 정당을 택하는 과정에서 논란을 샀다. 장애물에 부딪힌 양측 비례정당은 총선 이후에도 까다로운 고비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미래한국당은 연동형 비례제 선거법에 대항하기 위해 미래통합당이 만든 비례대표 전문 위성정당이다. 지난 2월5일 미래한국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미래한국당에는 우리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에서 둥지를 옮겨 합류한 분들이 많은데 어디에 있든 마음은 한결같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미래한국당 창당이 “무너지는 나라를 살리기 위한 자유민주 세력의 고육지책” “헌정을 유린한 불법 선거법 개악에 대한 정당한 응전”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미래한국당은 선거법을 우회하기 위한 형식적 틀일 뿐, 이 당의 비례대표 공천은 미래통합당 뜻에 따라 결정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3월16일 미래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가 발표한 비례대표 후보 명단 46명은 예상과 달랐다. 우선 미래통합당이 영입한 인사들이 이름을 올리지 못하거나 당선권 밖 후순위로 밀렸다. 미래한국당에 공천을 신청한 미래통합당 영입 인사는 총 19명인데, 당선권 순위는 4번을 받은 조태용 전 외교부 1차관 1명이었다. 이종성 전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사무총장(22번), 전주혜 전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23번),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26번), 박대성 페이스북코리아 부사장(32번), 지성호 나우 대표이사(44번) 등은 당선 가능성이 낮은 번호를 받았다. 21번을 받은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은 윤봉길 의사의 손녀로, 당초 유력한 1번 후보로 꼽혔다.

미래통합당에서는 분노의 목소리가 나왔다. 미래통합당 외부 인사 영입을 담당한 염동열 인재영입위원장은 3월16일 미래한국당 공천을 비판하는 입장문을 냈다. “영입된 인사 한 분 한 분은 보수 정당이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되찾기 위한 노력에 자신의 가치를 기꺼이 내어주고 철저한 검증까지 거친 분들이다. (…) 인재 영입으로 모신 분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와 역차별은 없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황교안 대표 역시 직접 의견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격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래한국당 내에서도 공천 명단에 대한 반발이 일어났다. 3월16일 저녁 한선교 대표는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해 공천 결과를 의결하려 했지만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3월18일 오전에 열린 미래한국당 비공개 최고위원회에서는 당선권 후보들의 비위와 평판에 대한 성토가 나왔다. 한 최고위원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옴)”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라는 표현도 동원했다고 전해진다. 비례대표 8번을 받은 보수 유튜버 우원재씨는 여기에 반발해 “듣보잡, 갑툭튀 아닌 미래통합당에서 영입했다는 대단한 인재님들의 실력이 궁금”하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이전부터 양당 간 공천 갈등의 조짐이 없지는 않았다. 황교안 대표와 한선교 대표는 3월9일 만나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공천을 논의했다. 3월11일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황 대표는 윤주경 전 관장과 지성호 나우 대표의 우선순위 공천을 제안했으나, 한선교 대표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 매체는 지난달 공병호 공관위원장 역시 미래통합당과 상의 없이 한선교 대표가 독단적으로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박형준 미래통합당 공동선대위원장이 3월9일 미래한국당에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다가 철회한 것도 양당의 물밑 갈등 탓으로 보인다. 3월18일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박 위원장은 “(미래한국당에) 가서 선대위 같은 것을 맡고 선거에서 (양당의) 합일성을 높이자는 취지의 (미래통합당) 요청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철회한 이유는 “미래한국당에서 거부반응을 보여서”였다. 박 위원장은 거부반응 주체가 한선교 대표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 양쪽에서 공격받은 한선교 대표는 결국 3월18일 오후 최고위를 열고, 부적격 인사 교체를 공관위에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공병호 공관위원장은 이날 오전까지 “1명 정도만 교체 가능하다”라고 말했지만, 심야 논의 끝에 20명 중 4명을 교체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시민을 위하여’ 우희종(오른쪽에서 세 번째)·최배근(오른쪽에서 네 번째) 공동대표 등 비례 연합정당에 참여한 각 당 대표들이 3월18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관계 끊고 ‘제2 위성정당’ 만들 수도

그러나 황교안 대표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은 일부 교체 정도로 봉합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다. 3월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황 대표는 미래한국당을 이렇게 비판했다. “미래한국당은 괴물 선거법에 맞서서 의회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혁신과 통합의 가치를 담는 희망의 그릇이었다. (…) 이번 선거의 의미와 중요성을 생각할 때 대충 넘어갈 수 없다. 단호한 결단이 필요하다. 구태 정치, 나쁜 정치와 단절할 것이다. 빠른 시일 내에 문제를 바로잡아서 승리의 길로 다시 되돌아갈 것이다.”

법적으로 별개 정당인 미래통합당이 미래한국당 공천 결과를 강제로 바꿀 방법은 없다. 일각에서는 미래통합당이 신뢰가 깨진 미래한국당과 관계를 끊고 ‘제2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 수 있다는 설도 나왔다. 총선 뒤 한선교 대표가 ‘딴마음’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퍼졌다. 3월19일 미래한국당 선거인단은 비례대표 명단 수정안을 투표로 부결시켰다. 그 직후 한선교 대표는 대표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부패한 권력이 참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제 개혁을 막아버리고 말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공천이 “참 잘한 공천”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역시 비례 연합정당 문제로 논란에 휩싸였다. 비례 연합정당은 미래한국당에 대응하는 전략적 임시 정당이다. 각 당에서 온 비례대표 후보들이 연합정당에 모이고, 연합정당의 이름으로 정당투표를 하는 것이다. 당선된 후보들은 총선 뒤 출신 정당으로 돌아간다. 미래통합당의 비례 위성정당을 강하게 비판해온 민주당은 수 주간 비례 연합정당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했다. 권리당원 투표를 거친 뒤 3월13일 비례 연합정당에 참여하기로 했다.

3월17일 민주당은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가자환경당, 가자평화인권당과 함께 비례 연합정당을 구성한다고 밝혔다. 당명은 ‘더불어시민당’으로 정했다. ‘민주당이 소수정당 후보에 앞 번호를 배려한다’는 내용을 협약서로 공식화했다. 민주당은 자당 출신 비례대표 후보를 후순위로 미루되, 당선자 7명은 확보되도록 협상에 나설 예정이다. 가령 연합정당의 총 비례대표 당선자 수를 15명으로 예상하면 9번부터 15번까지, 17명으로 잡으면 11번부터 17번까지 배치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연합정당의 ‘플랫폼’이 될 단체로 ‘정치개혁연합’이 아니라 ‘시민을 위하여’를 택했다고 밝혔다. 정치개혁연합은 2월28일 비례 연합정당 계획을 최초로 공식 제안한 단체다. 민주화 운동 원로들이 결성한 ‘주권자전국회의’가 전신이다. ‘시민을 위하여’의 토대는 개혁국민운동본부로, 지난해 ‘조국수호 검찰개혁’ 서초동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당초 물망에 오르던 정당들은 정의당, 민생당 녹색당, 미래당, 민중당 등이었다. 이 가운데 녹색당, 미래당, 민중당은 정치개혁연합을 통한 비례 연합정당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이, 왜 잘 알려지지 않은 신생 정당들과 시민을 위하여를 택했는지에 이목이 쏠렸다.

3월17일 윤호중 사무총장의 비례 연합정당 브리핑 자리에서 한 기자는 “정치개혁연합이 민중당 참여를 주장하면 함께하기 어려운지” 물었다. 윤 사무총장은 “이념 문제라든가 성소수자 문제라든가 그런 불필요한, 소모적인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들과의 연합은 어렵다”라고 말했다. 특히 논란을 불렀던 대목은 ‘성소수자’였다. 녹색당은 당일 “녹색당 비례후보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 김기홍 후보에 대한 ‘거부’로밖에 읽히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이튿날 녹색당은 비례 연합정당 참여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당내 논의 과정에 밝은 민주당 관계자는 성소수자 문제 때문에 녹색당이나 정치개혁연합을 배제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민중당의 이념 문제가 더 컸다는 것이다. 정치개혁연합은 가능한 원내에 많은 정당이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민주당으로서는 ‘종북’ 공격이 부담스러웠다. 그는 “민중당이 들어오면 보수 언론이 ‘조선노동당 위성정당’이라고 할 게 뻔하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 관계자는 “정치개혁연합과 틀어진 결정적 계기는 따로 있다고 들었다”라고 했다. 정치개혁연합에 참여하기로 한 녹색당·민중당·미래당이 각각 3석씩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는 세 정당이 무리한 요구를 해서 “다른 시민단체들”의 몫이 줄어들게 된 상황이었다고 했다.  

녹색당 등이 3석씩 요구? VS 무슨 소리!

민주당과 비례 연합정당 논의를 해온 하승수 정치개혁연합 집행위원장 얘기는 다르다.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하 집행위원장은 “의석 얘기는 나오지도 못했다. 참여 정당이 확정도 안 됐는데 어떻게 하겠나?”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민주당이 너무 많은 신생 정당들에게 연락을 한 데 대해 문제 제기를 한 건 맞다”라고 했다. 하 위원장은 비례 연합정당을 ‘연합정치’로 보고, 여기 참여하려면 정당의 활동 실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최소 3년 이상 활동 경험이 있는 정당의 참여 여부를 먼저 정리한 뒤 신생 정당을 보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정치개혁연합이 ‘총선 후 정당을 유지할 계획이다’ ‘독자적 비례대표 후보를 낼 것이다’라는 언론발 의혹을 두고는 “말이 안 된다. 정치윤리상 있을 수 없는 마타도어다”라고 말했다.

비례 연합정당이 당면한 고비는 공천이다. 민주당을 제외한 4개 정당 인재풀은 9~10석을 분배하기에 얕다. 더불어시민당은 “3월18일부터 공모와 영입 두 가지 방식으로 공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하승수 정치개혁연합 집행위원장은 이 결정을 두고 “각 정당이 선출한 후보를 공천하는 게 아니라 개인을 공천하는 건 연합정당이 아니다. 더불어시민당은 민주당의 위성정당이나 다름없다”라고 비판했다. 당선자들의 총선 후 거취도 문제다. 정당법상 비례대표 의원은 탈당하면 의원직을 잃는다. 의원직을 유지하려면 당에서 ‘제명’돼야 하는데, 바른미래당 의원들의 ‘셀프 제명’ 효력을 정지한다는 법원 판결이 3월16일 나왔다. 최배근 더불어시민당 대표는 “당 대표로서 비례대표를 제명하고 사퇴하면 문제가 안 된다”라고 말했는데, 정당법에 따르면 “정당이 소속 국회의원을 제명하기 위해서는 당헌이 정하는 절차를 거치는 외에 그 소속 국회의원 전원의 2분의 1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최 대표는 〈시사IN〉과 통화에서 “법적으로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더 보완하겠다. 법을 지키는 건 절대원칙이다. 당선자들은 각 당에 돌려보내기로 합의서를 만들어놨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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