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외국인 노동자가 많이 거주하는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일대에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현수막이 외국어로 제작되어 걸려 있다.

‘퇴근 후 숙소에서 이탈하지 말 것.’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경기도 북부에 위치한 한 사업장이 새 방침을 세웠다. 외국인 노동자 ㄱ씨는 회사의 지시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함께 근무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은 퇴근 후 자유롭게 일상을 보냈다. 회사에서 마련한 숙소에 함께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만 행동에 제약이 걸렸다. 3월 초, ㄱ씨는 주말에 외출을 나갔다가 사업주한테 폭행을 당했다. 큰 부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사회적 재난이 개별 사업장 내 폭력으로까지 이어진 사례다.

코로나19 확산 후폭풍은 당연하게도 이주민 사회 역시 비켜가지 않았다. 주민등록과 건강보험 체계에 소속되어 있는 내국인은 정부 정책과 지역사회 대응을 통해 우선 보호를 받는다.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 결혼 이주여성 등은 생계와 방역에서 위기에 내몰린다.

경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며 노동과 생계에서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었다. 소비가 얼어붙고 무역에 차질이 생기면서 영세 제조업 공장 다수가 휴업하거나 가동률을 낮췄다. 10인 미만 영세 업체일수록 피해가 크다. 외국인 노동자 지원 단체마다 임금 분쟁 상담 요청이 늘고 있다. 아무런 설명 없이 한국어로 작성된 무급휴가 동의서를 내밀어 서명을 강요하거나 폭행 피해자 ㄱ씨 사례처럼 회사 숙소에 강제로 단체 격리를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고향으로 돌아가려 해도 퇴직금 미지급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김용철 대구 성서공단노동조합 상담소장은 3월 들어 퇴직금 분쟁 관련 상담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대구·경북에서 코로나19 지역감염이 확산되면서 급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노동자가 늘었는데 퇴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떠난 이들이 많았다. 김용철 소장은 10년간 한 공장에서 일한 베트남 노동자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원래 3000만원 정도 퇴직금을 받아야 하지만 사업주가 500만원만 지급하겠다고 주장했다. 체류 기간을 넘긴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는데 출근 카드도, 통장 기록도 없이 현금으로 임금을 지급해왔더라. 입증하기가 쉽지 않아서 결국 500만원만 받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급히 한국을 떠나면서 2월 급여나 월세보증금마저 제대로 돌려받지 못한 경우도 수두룩했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관행적으로 한 달 일한 급여를 그다음 달에 받는다. 2월 급여를 3월 말에 받는 식이다. 코로나19로 급히 출국하는 경우 노조나 지역 사회단체가 미지급 급여를 대리 수령한 뒤 송금해주는 식으로 중재하지만 이 같은 지원마저 어려운 지역에서는 받아내기 쉽지 않은 돈이다.

법적 지위가 취약한 이주민일수록 고통이 더 크다. 고용허가제 틀 안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휴업 동의서라도 받지만, 난민이나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은 애초 고용 기반이 허약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해고되기 쉽다. 난민을 비롯해 비자발적 이주자들을 지원하는 김영아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 대표는 “2월 말부터 일자리를 잃었다는 연락을 받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여성 난민들은 식품가공업이나 보육교사 등으로 일하는데,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긴급 생계비 지원 등 대책 논의가 확대되고 있지만, 난민 같은 사회적 약자는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성서공단노동조합 제공3월15일 대구 성서공단노조원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마스크·손소독제 등을 나눠주고 있다.

이주민의 의료 서비스 공백도 커

행정력의 ‘빈틈’을 메우던 민간단체도 연달아 문을 닫거나 기능을 멈추면서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만한 창구마저 줄어들었다. 류지호 의정부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상담팀장은 “코로나19 이후 외출을 꺼리기 때문에 상담이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전체 상담 건수는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경기도 내 다른 지역 상담센터가 문을 닫아 우리 쪽으로 찾아오는 외국인 노동자도 늘었다”라고 말했다. 김용철 대구 성서공단노조 상담소장 역시 “최근에는 안양이나 안산에서 대구까지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라며 우려했다.

각종 지원 단체가 제공하던 의료 서비스 공백도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는 이주민에게는 큰 위협이다. 김영아 MAP 대표는 “여러 단체들 가운데 이주민 무료 진료를 제공하던 곳부터 문을 닫았다. 그동안 난민 상담을 진행할 때 의료 서비스를 연계해왔는데 당분간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애초 건강보험이 안 되기 때문에 비싼 의료비를 지불해야 하는데, 생계 곤란에 처한 난민들 처지에서는 고통이 배가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마스크나 손소독제처럼 ‘개인 방역 아이템’을 구비하려 해도 소외되기 일쑤다. 정부가 물량을 확보하는 공적 마스크를 구입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증과 외국인등록증을 함께 제시해야 한다. 지역 건강보험에도 가입하지 못하는 6개월 미만 체류 이주민은 공적 공급체계에서 아예 제외된다. 3월6일 난민인권네트워크 등 이주인권단체들은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마스크 공급망은 사람을 가리고 있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주민에 대한 배제가 오히려 전 사회적인 방역에 허점을 노출하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마스크가 방역에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마스크 착용은 최소한의 사회적인 약속으로 작동하고 있다. 공공기관 등에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출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노동자가 모여 사는 경기 안산시 원곡동에 위치한 안산시외국인주민상담지원센터 등 공공기관은 ‘마스크 미착용자 출입금지’를 입구마다 내걸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주민은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하게 된다. 3월17일 원곡동 내 한 상점을 방문했다. KF94 규격 마스크 5장을 1만9500원(1장에 3900원)에, 일반 1회용 보건 마스크 5장을 1만8900원(1장에 378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공적 마스크 1장(1500원)보다 두 배 이상 비싼 값이다.

설령 마스크 공급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마스크를 사러 갈 시간이 없는 경우도 있다.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데다 지역적으로 고립된 곳에서 숙식을 함께 해결하기 때문이다. 지방 소도시나 농어촌 지역에서 일하는 이주민일수록 개별 방역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차라리 이들이 일하는 사업장에 방역 물품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지원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경제적 불안정성, 방역의 부실함도 문제지만 이주민 인권단체들은 입을 모아 ‘정보 부족’ 문제를 지적한다. 이주민 지원단체인 ‘이주민센터 친구’의 이제호 상근 변호사는 “이주민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온라인 정보 접근에 취약하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이주민센터 친구 역시 SNS와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방문 상담을 제한한다고 공지했지만, 이 사실을 센터 문 앞까지 찾아온 뒤에야 알게 되는 이들이 많았다.

ⓒ시사IN 조남진3월19일 경기도 안산시의 한 다문화이주민센터 관계자들이 외국인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이주민의 정보 부족이 몰고 올 후폭풍

한국은 대외적으로 방역 관련 정보가 신속하게 제공되는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이주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정부나 지자체가 발표하는 코로나19 확산 정보 대부분은 한국어이며 그나마 지원하는 외국어도 영어와 중국어 정도에 그친다. 정작 2019년 기준 고용허가제(E-9 비자)로 입국한 이들은 캄보디아·네팔·베트남·인도네시아·타이·미얀마·스리랑카처럼 영어나 중국어에 낯선 언어권 출신이 많다.

중국이나 베트남, 타이처럼 한국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가 잘 구축되어 있는 지역 출신은 방역 관련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나머지 국가 출신 이주민들은 그나마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던 상담센터도 내방이 불가능해지면서 정보 확인이 더 어려워졌다. 정치적·종교적 문제로 해당 국가 커뮤니티에서도 배제되는 일부 난민들은 더 큰 고립감에 빠져든다. 김영아 MAP 대표는 “정보 접근성, 자원 접근성(생계 문제), 심리적인 소외감. 이 세 가지 영역에서 난민이 특히 더 소외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보 부족은 이주민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 방역에 허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인지하고 있는 정부에서도 체류자격 미비(미등록 이주) 여부와 상관없이 코로나19 검진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있다. 원래 공공보건의료기관은 미등록 이주 외국인이 방문할 경우 법무부에 통보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1월28일부터 이를 한시적으로 면제 중이다. 하지만 이주민 인권단체의 말을 종합해보면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이주민은 드물었다. 이주민 인권단체들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해서라도 고용노동부나 법무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정책 홍보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이주민의 삶이 위협받는 것은 국내 경제 전체에도 위험요소가 된다. 코로나19가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멈춰 세우면서 지역마다 노동시장의 불균형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령 그동안 합법적인 계절노동자에 의존해왔던 농촌의 경우 지자체마다 3~4월로 예정된 계절노동자 초청이 무산되고 있다. 교류 협력을 맺은 타 지역 정부에서도 3~4개월 단기 노동력을 보내길 꺼린다.

농촌일수록 외국인 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주거환경이 열악해 방역이 취약하다는 우려도 뒤따른다. 다수 인력이 비좁은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농촌 외국인 노동자 거주 시설에 대해 지자체마다 소방시설과 환기, 온도조절 등에 유념하며 단속했지만, 감염병은 주요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사업장은 겨우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 수준으로 주거와 급여를 제공했고, 이주민은 최소한의 보상을 받으며 버텼다. 이 ‘아슬아슬한 균형’이 코로나19라는 태풍으로 끊어졌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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