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왼쪽부터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 임승관 안성병원장.

인후통처럼 깔끄러운 감정이 마음의 목구멍에 걸려 있다. 우리는 모두 화나고 두렵고 불안하고 우울한 상태다. 바이러스는 호흡기와 심혈관계, 순환계를 넘어 개인과 집단의 마음까지 공격한다. 방역 실패에 분노하고 전염원을 미워하고 남과 비교하며 주눅 들거나 우쭐대는 마음으로 지난 늦겨울을 보내왔다. 꽃망울이 하나둘씩 터지는 봄이 오지만 슬프게도 전 세계 어느 과학자와 의사도 코로나19 종식을 입에 담지 않는다. 여러 과학적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이제 겨우 팬데믹 초기를 지나갔을 뿐이다.

견디기 힘들어서 물었다. “코로나19 백신이 개발되기 전 우리 마음의 면역력을 높일 수 있는 마음 백신이라도 어디 없을까요?”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예방의학 전문의)과 임승관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장(감염내과 전문의·경기도 코로나19긴급대책단 공동단장)으로 출발한 〈시사IN〉의 ‘주간 코로나19’의 첫 게스트로 박한선 서울대 인류학과 박사를 초대했다. 박한선 박사는 정신의학과 전문의이면서 인류학 관점에서 전염병을 연구해온 신경인류학자이다.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2019), 〈재난과 정신 건강〉(공저, 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공저, 2018) 등을 썼다. 전염병이 개인과 집단의 심리에 미치는 영향에서부터 개학 연기의 타당성, 정치의 역할, 클럽이 붐비는 이유, 정의로운 분배에까지, 3월18일 저녁 서울 반포동 한 세미나 카페에서 다채로운 주제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나눴다. 혹시나 기대하는 독자가 있을까 봐 결론부터 말하면, 마음 백신에 관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인간의 마음은 감염병 앞에서 생각보다 꽤 무력하다. 다만 우리 마음속 불안을 그대로 직시하는 것이 그 답을 찾을 출발점이 될 수는 있다. 만약 해답이 있다면 말이다.

지난 한 주를 어떻게 보냈는지부터 얘기해보자.

박한선:힘들었다, 굉장히(웃음). 아이를 돌보면서 일해야 했다. 대학이 문을 닫았고 연구실도 재택 연구로 바뀌었다. 처음으로 동영상 강의를 촬영했다. 아내가 밖에 일하러 나가야 해서 초등학생 두 자녀 양육을 도맡았다. 보통 같으면 부모님에게 부탁드릴 텐데 연세 많은 분들은 치명률(치사율)이 높으니 차마 부탁하기 어렵다.

김명희:아버지가 입원했다가 퇴원하셨다. 원래 데이케어 센터에서 안 받아준다기에 걱정했는데 다행히 받아줘서 가족들이 한숨을 돌린 상태다.

모든 가정에 돌봄 비상이 걸린 것 같다. 초중고 개학도 4월로 연기됐다. 타당한 결정일까?  

김명희:네트워크 분석학자인 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 교수는 그간 과학적 근거를 볼 때 휴교가 유행을 차단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특히 인플루엔자 유행 때 그랬다. 아이들 간 전염뿐 아니라 미국에선 대부분 부모가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며 서로 접촉한다. 그런 걸 차단할 수 있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전파 차단 핵심이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동의하면서도 찜찜한 구석이 있다. 아이들이 집에 있다는 건 부모들도 다 집에 있다는 것이고 그러면 지역사회가 저절로 ‘스탠드스틸(standstill, 이동 제한)’이 된다는 의미인데 한국은 꼭 그렇지는 않다. 콜센터 여성 가장 사례도 나오고 학교 비정규직, 돌봄 공백 얘기도 나온다.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학술적으로 타당한 것과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고려, 또 그것을 전달하는 언론의 태도가 어느 때보다 중대한 시점이다.

임승관:우리가 그나마 알고 있는 건 인플루엔자의 경우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지금 아이들은 코로나19에 걸려도 많이 안 아프다고 하지만 이런 것이 과연 의료적으로 역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사실 아무도 답을 모른다. 그러니 휴교의 가치가 어떤지도 잘 모른다. 언젠가 어느 시점에는 항체 연구를 통해 알아내야 할 테지만, 아직은 아이들이 얼마나 걸렸는지, 학원·피시방에서 얼마나 퍼지는지, 걸려서 어른들에게 전파했는지를 모른다. 몰라서 어렵다. 다만 분명한 건, 어쨌든 코로나19는 계속 진행되고 있기에, 유행의 확산 면에서는 휴교를 선언한 시점보다 뒤 시점의 상황이 나쁠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까지 개학을 세 번 미뤘는데 항상 그 전보다 뒤가 나빠지지 않았나.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보건의료적 이득을 택할 것인지 사회경제적·교육적 이득을 택할 것인지. 두 가지를 다 얻을 수 없다.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손해를 볼 텐데 그것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 메울 수 있는가. 지금은 이 전략을 짜고 위기 소통을 하는 시간인 거다.

ⓒ시사IN 신선영3월19일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교대 근무하는 선생님이 비어 있는 1학년 교실을 살펴보고 있다.

지난주에도 집단감염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소금물을 신도들 입에 분무한 은혜의강 교회 등이 사람들의 미움을 많이 받았다.

박한선:은혜의강이나 신천지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집단인 건 사실인데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돌팔매를 받아야 하는 천하의 불한당인 존재는 아니다. 그런데 사회적 비난은 너무 심하다. 다른 사람들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것에 대해서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지금은 신천지지만 다음번엔 또 어디가 될까? 이런 식의 분위기가 굉장히 병적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문학평론가이자 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가 ‘희생양’을 이야기했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재난과 불행이 늘 생긴다. 인간의 숙명이다. 사람들은 어디에든 책임을 묻고 싶어 한다. 그 대상은 대개 국가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감염병일 경우 특정 소수집단으로 가는 경향이 크다. BIS(Behavioral Inhibition System, 행동 억제 체계)라는 개념에 따라 나와 다른 집단, 외모가 다른 사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 특정한 성적 행동을 보이는 사람, 성소수자들을 배척하고 비난한다. 에이즈 때 심각했다. 지금도 똑같다. 이것에 대해서 아무도 브레이크를 안 건다.

임승관:신천지 같은 경우 보건학적 관점과 정치학적 관점 두 개가 일치하는 면이 있다. 실제 감염률이 높았다. 그래서 그들에 대해 강력한 정책을 구사하는 것이 낙인 집단을 공격한다는 의미보다는 정당한 방역 정책으로 설명될 수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라고 할지라도 자연스럽게 방역의 목표와 일치하다 보니 국가는 더욱 손쉽게 반(反)신천지 정책을 채택하게 되고, 대중이 환호하니 더욱더 강해졌다. 방역 효과를 거둔 부분도 있지만 단점도 있었다. 신천지 교인 전수조사를 하면서 무증상·경증 감염자를 많이 찾아낸 점은 좋다. 문제는 제한된 병실 자원이 그들로 차게 되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신천지든 아니든 중증 환자를 못 받게 됐다. 그런 부분들이 더 살펴졌어야 했다.

희생양 찾기, 낙인찍기 이후에는 어떤 집단심리가 발생할까?

박한선:보통 감염병에선 희생양 찾기에서 끝난다. 희생양을 찾아서 처벌도 한다. 문제가 생겼고, 벌 받을 사람 찾았고, 처벌을 했으니 모두 해결되었다고 끝맺는다. 그런데 심각한 팬데믹, 흑사병이나 스페인 독감이 일어났을 때에는 마지막 단계로 사람들이 무덤덤해지는 상태에 빠졌다. 심각한 불안이 장기간 지속되면 무감각해진다. 예를 들면 학대를 심하게 당하는 아이나, 가정이나 직장에서 트라우마가 심한 사람들도 처음에는 저항하다가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가면 그냥 받아들이게 된다. 그게 생존 전략이다.

코로나19도 같은 길을 걸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흑사병, 스페인 독감 돌았을 때 주변 사람들 다 죽어나가는데도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식 낳고 다 했다. 그렇게 될 거다. ‘뉴 노멀(New Normal, 새로운 정상 상태)’이다. 그게 좀 더 걱정이다. 사람들은 지금 당장의 삶, 조금 어려운 말로 ‘패스트 라이프 스트래티지(Fast Life Strategy, 빠른 생애사 전략)’를 택할 거다. 전쟁 시기나 일부 미국 슬럼가 등에서 나타나는 심리현상이다. 장기적 미래 예측이 가능할 때와 그게 불가능할 때 삶의 방식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올해 1년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삶의 방식이 아마 지금과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코로나19 치명률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감염력(전파력)이 높고 노출이 많이 되니까 사람들은 과장되게 생각한다. 그래서 빠른 속도로 패스트 라이프 스트래티지로 갈 가능성이 있다. 가설을 세워본다면 사람들이 더 순간순간의 향락 혹은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 식으로 갈 수 있다. 지금 금값이 떨어지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본다. 현물 자산에서 금이 얼마나 중요한데, 금보다는 지금 당장 손에 쥐는 현금을 원하는 것 아닌가. 관련이 있지는 않겠지만 강남의 클럽이 붐빈다고 하는데 뭐 꼭 나쁜 거는 아니다. 그런데 왜 이 와중에 클럽을 더 가려고 할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명희:프랑스 사람들도 술집 폐쇄령이 나오니 (시행) 전날 수만명이 몰려나와서 술을 마셨다지 않나.

한국 사회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마주쳐본 적 없는 집단심리의 변화를 겪을까?

박한선:팬데믹이 1~2년 간다고 한다. 가능성이 높다. 마법처럼 환자가 한 명도 안 생기고 ‘한국, 세계 최초 완전 청정국가 선언’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조만간 코로나19가 존재하는 걸 일반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그건 불안이 심각한 지금보다 어찌 보면 더 안 좋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덤덤한데, 건강한 게 아니다. 불안한 상태에서 무감각해지는 거다.

임승관:무덤덤해지는 건 피해야 하지만 침착함은 찾아야 한다. 불안감, 공포, 적(敵)을 찾는 마음에서 침착한 마음, 평정심으로 돌아온다면 그 사회는 잘 극복해낼 거고, 무관심·회피 같은 부정적 방어기제로 간다면 우리 사회가 좀 더 걱정스러운 방향으로 갈 것이다.

ⓒ연합뉴스신도 46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경기도 성남시 은혜의강 교회 입구.

박한선:전염병 대유행에서 침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중요한 건 ‘노멀 앵자이어티(normal anxiety, 적정 불안감)’다. 무덤덤해지는 건 불안이 너무 높다 보니 회피하기 위해서다. 적당한 불안을 인정해야 한다. 문제는 이 상황에서 적정 불안감이 어느 수준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우리는 어느 수준으로 불안해야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예를 들어 코로나19 치명률이 70%라면 이 인터뷰 자리에 안 나온다. 아예 아무도 안 만날 거다. 그게 그 상황의 ‘노멀(normal, 정상)’이다. 코로나19에 어느 정도 수준까지 불안해야 하는지 단언할 수 없다. 사회 안정을 극단적으로 추구하고 아예 팬데믹을 부정하는 나라가 일본이라면, 마스크를 사기 위해 한없이 긴 줄을 서는 오버 리액션도 문제다. 답은 모르겠다. 중간쯤 어딘가에 있을 텐데.

임승관:침착하자는 말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이 시기에 위기를 겪고 있다면, 예를 들어 전쟁을 겪고 있다면 항상 침착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것이 달성 가능한 수준에서 최대한 추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개인마다 그만한 인격과 수양을 갖고 있냐고 묻는다면 나 역시도 스스로 자신이 없다. 하지만 사회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다르다. ‘무인도에 갈 때 3가지만 가지고 갈 수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이번 코로나19 위기에 빗대보자. 첫째는 기침 예절, 손 씻기와 같은 개인위생 준수. 두 번째는 좋은 정부, 즉 ‘정치를 하지 않고’ 시민을 위하는 정부. 세 번째는 원활하고 세련된 위기 소통. 최소한 이 세 개를 챙겨야 할 것 같다.

박한선:정서적 불안과 인지적 불안을 나눠 보는 것이다. 정서적 불안은 없앨 수 없다. 바이킹 같은 놀이기구를 탔는데 정서적으로 편안하다면 이상한 거다. 속으로는 불안해도 겉으로는 사진을 찍고 신문도 보는 척하며 재미있는 사진을 찍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인지적으로 행동 조절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그런데 이게 오래는 못 간다. 그리고 압도적인 불안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못한다. 그래서 팬데믹이 장기화되면 전체 인구집단 내에서 불안감이 과도하게 올라가면서 병적인 반응이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그걸 계몽이나 계도나 정부 시책으로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가장 필요한 게 백신 개발이다. 여기다 에너지를 더 할당해야 한다. 또 의료자원을 코로나19에만 쓰면 다른 중증 환자 사망률이 높아진다. 에볼라바이러스 때 그랬다. 콩고에서 에볼라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썼는데 에볼라는 막았지만 다른 요소로 인한 국가 전체 사망률이 더 높아졌다.

김명희:‘정치’라는 용어가 ‘정쟁’으로 오염되다 보니 ‘정치하지 않는 좋은 정부’가 곧 ‘좋은 정치’다. 피할 수 없는 위기를 사회적으로 설득하는 게 좋은 정치고, 그 일이 정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예를 들면 국회·야당도 있고, 전문가 집단도 있고, 노동조합·기업도 있다. 이들이 어떤 종류의 리더십을 발휘해서 좋은 정치를 만들어갈 것인가.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재택근무를 하려면 기업이 호응해야 하는 거고, 이걸 설득할 수 있는 제도화도 뭔가 있어야 한다. 내면의 불안감까지는 어떻게 못 해도 최소한 그것들이 증폭되는 길로 나아가지 않게 최소한 인지적 불안을 낮추는 차원에서라도 좋은 정치의 역할은 정말 너무나 중요하다.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차이니즈 바이러스’라는 말을 사용하며 중국을 비난했다.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다음 미국에 사는 중국인이 테러를 당했다. 이렇게 불안을 점점 ‘에스컬레이션(escalation, 단계적 확대)’하면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정치의 문제를 단순히 정치인의 문제 혹은 정치적 쟁투로 바라보는 시선이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박한선:불행하게도 어떤 정치 체계도 팬데믹을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다. 완벽한 철인정치가 아닌 이상에야.

결국 우리는 코로나19에 질 수밖에 없나?

임승관:이길 수 없는 게임은 맞다. 상대가 너무 강하다. 우리는 한국의 2부 리그 팀인데 FC 바르셀로나나 레알 마드리드와 붙는 것인지도 모른다. 1-0으로 질 거냐 2-0으로 질 거냐 같은 게임이다. 한번 이겨보겠다고 무리한 전략을 짜다가 5-0, 10-0으로 지면 트라우마가 남는다. 수비 전략, 체력전으로 2002 한·일 월드컵 때처럼 전략을 잘 짜면 어쩌면 져도 1-0으로 질 수도 있고 운 좋으면 무승부가 될 수도 있다. 또 1-0으로 지면 진 거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싸움은 토너먼트가 아니고 리그전과 같다. 한 게임 한 게임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만 그런 리그 안에서 상처입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

김명희:지는 싸움이라는 표현도 적절하지 않다. 지구에서 가장 많은 생명체가 박테리아이고 인류가 한 번도 감염병의 병원체, 미생물에 대해서 이겨본 적이 없다. 그래서 서글픈 패배? 이런 뉘앙스일 필요는 없다. 인류는 항상 져왔고 미생물은 항상 더 힘이 세다.

박한선:인류가 지금까지 다 합치면 500억명, 그중에 현재 70억명이 살아 있다. 죽은 인류의 원인을 조사해보면 70%가 전염병으로 죽었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매년 말라리아로 죽는 사람이 세계에서 100만명, 한국에서 결핵으로 죽는 사람이 매년 1800명, 세계적으로 매독으로 죽는 사람이 매년 10만명이다. 이미 우리는 감염병에 걸려서 죽어왔다. 다만 무덤덤해졌을 뿐이다. 코로나19가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는데 그게 좀 무섭다. 말라리아는 모기를 잡으면 되고, 약도 있다. 지금 말라리아로 죽는 것은 의료자원의 적절한 배분이 안 되어서다. 병원이 없는 아프리카에서 죽는 거지 의사가 약을 주면 안 죽는다. 불평등 때문에 죽는 건데, 코로나19는 현재 치료약도 백신도 없다. 바로 이게 신종 바이러스의 무서움이다.

ⓒ시사IN 신선영2월24일 메르스 사태 이후 처음으로 5일장을 휴장한 성남 모란시장.

백신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임승관:백신이 가장 결정적 희망이라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겠으나 평범한 개인은 그것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그렇다면 백신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공공병원 운영에 참여하는 처지에서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공공의료가 만들어지는 데 시스템(체계), 문화, 사람이 필요하다. 아래로 갈수록 어려워서 사람을 통제하기가 가장 어렵고, 문화를 만드는 건 그것보다 낫고, 어쩌면 체계가 가장 쉬운 것 같다. 앞으로 1년이든 2년이든 백신이 나오기까지 체계를 만드는 데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거칠게 말해서 대구에서 사람들이 생명을 잃어가는 게 모두 코로나19 때문일까. 자원이 적절하게 분배되게 만드는 체계에 집중하면, 또 정부와 시민사회가 같이 힘을 합치면 좀 비길 수도 있지 않을까.

김명희: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당장 공공의료 병상 배분, 마스크 배분, 인력을 어디로 보낼 것인가 모두 다 자원의 할당과 관련된 이슈이다. 자원을 어떻게 정의롭게 할당할 것인가는 정치학과 철학의 오랜 이슈였고 항상 현실에서 바람직하게 작동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만은 최선을 다해서 정의롭게 분배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부 혼자 할 수 없고 다양한 사회 행위자들의 목소리가 정의로운 원칙대로 최대한 따라갈 수 있도록 압력을 가하고 지지하는 것이 한편으로 필요하다. NGO든 정치운동 단체든 봉사 조직이든 시민사회가 같이 가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시위를 전문으로 하는 곳부터 도시락 배달을 하는 곳까지. 역설적으로 다 같이 살 수밖에 없다는, 연대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이기도 하다.

임승관:백신이 분명 히어로지만, 백신이 보급된다고 해도 그것이 과연 무한정일 것인가? 분명히 유한할 것이고 그러면 과연 백신은 어떻게 분배돼야 할까. 정말 필요한 행정인력, 의료진에게 먼저 배분돼야 하는데 성공적으로 시행될까. 백신이 중요한 건 맞고 최고의 무기인 것도 맞지만 기다리는 자세가 어떻게 보면 더 중요하지 않을까.

박한선:언론이 취약계층을 계속 강조해 얘기를 해줘야 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때 젊고 돈 많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방법을 찾는다. 저소득층, 장애인, 특히 정신장애인들은 상황에 대해서 판단도 못 한다. 평소에도 그런데 감염병이 돌 때는 행동이 어눌하거나 외모가 다르거나 위생관리가 안 되는 이들에 대해 편견이 극도로 커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예 접근을 안 한다. 이런 사람들이 소리 없이 죽어가기 전에 살펴야 한다.  

ⓒ시사IN 신선영대구의료원 방역을 위해 선별진료소에서 대기하고 있는 육군 현장지원팀 대원.

김명희:2016년 경주에서 지진이 났을 때 2명이 죽었다. 선로 보수하던 철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번에는 감염병이지만 다음번엔 지진, 폭염일 수도 있다. 어떤 위기든 그런 분들이 맨 앞에서 온몸으로 막고 있는 거라서 감염병에 특화된 대책이 따로 있지는 않을 거라 본다. 사회의 취약한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사회가 어떻게 대우하고 함께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해보는 계기가 된다면 그나마 코로나19로 희생한 대가로 얻는 학습이 되지 않을까 한다.

임승관:코로나19 팬데믹을 올해, 내년 겪어내는 건 그 과정을 잘 기록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에 헌신, 배려, 이타, 희생, 책임의 사례를 남기느냐 못 남기느냐의 일이다. 몇 퍼센트의 치명률, GDP 몇 퍼센트의 하락 이런 것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박한선:소설 〈페스트〉에서 타로라는 인물이 자율방역대를 만든다. 주인공인 의사 리유는 얘기한다. “자율방역대를 만든다고 해서 페스트 감염을 막을 수는 없다.” 자율방역대가 하는 일이라고는 사망자 명단을 작성하고 죽은 사람을 무덤으로 옮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어떤 사람들은 향락과 술에 빠지지만 반대쪽에서는 감염을 막는 데 큰 도움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타로처럼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어떤 마음으로 감염병 시대를 살아가야 할까’라는 질문에 누가 쉽게 대답해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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