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영 작가는 국회 보좌진으로 7년 동안 일하며 생활동반자법 초안을 마련했다.

보좌진으로 국회에서 일하는 7년 동안 그가 ‘모시는’ 의원이 카메라에 담기는 것만 봐왔다. 황두영 작가는 사진기자가 요구하는 포즈를 취하다 금세 얼굴이 발개지고, 민망한 듯 폭소를 터뜨리다가 어색하게 함박미소를 지었다. 그는 국회에서 처음으로 ‘생활동반자법’ 명칭을 짓고 내용을 구상했다. 생활동반자는 두 성인이 합의하에 함께 살며 서로 돌보자고 약속한 관계다.

2014년 그가 보좌하던 진선미 의원(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생활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 (생활동반자법)’ 초안을 마련했지만 발의하지 못했다. 생활동반자법은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은 사람이 국가에 등록하면, 이에 따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복지 혜택 등 권리를 보장하고 둘 사이의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한다. 일부 보수 단체들은 이 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주장하며 입법을 막았다. 너무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정치의 속성 탓에, ‘생활동반자법’은 고유명사로만 남아 심도 있게 이해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사이, 1인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4분의 1 수준으로 높아졌고, 독거노인·고독사 등이 증가하면서 돌봄 공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더 늘었다.

황두영 작가는 생활동반자법이 “외로운 우리 사회에 진지한 대안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라고 확신한다. 생활동반자법을 “원 없이” 설명하기 위해 국회를 나왔다. 생활동반자법은 그것이 무엇인지 정의되기도 전에 찬성 또는 반대해야 할 것으로 해석하려는 정치적 욕망들에 묻혔다. 선거 국면에서 ‘생활동반자법 제정’이 유행어처럼 쓰이고, 이를 요구하는 대중적인 목소리도 들렸지만 막상 생활동반자법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없었다. 한 지인은 “국내에서 너만큼 생활동반자법을 공부한 사람이 없다. 네가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써야 한다”라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지난해 7월 말, 국회를 떠났다.

그로부터 5개월 만에 쓴 책이 〈외롭지 않을 권리-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이다. 책은 인쇄되기도 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진행한 후원 프로젝트로 1400% 달성률(목표 금액 100만원, 722명 참여)을 보였다. 펀딩 참여자들은 ‘마음 맞는 친구와 함께 살 때에도 혜택을 받고 싶다’ ‘함께 사는 문제가 더 쉽고, 따뜻해져야 한다’라며 가족을 구성하는 새로운 틀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같은 호응은 결혼제도에 회의를 느끼는 젊은이가 늘고 ‘법 밖의 가족’을 꾸리려는 다양한 시도가 느는 사회적 변화와 맞물린다.

1950년대생들도 생활동반자법에 호의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은퇴하면서 중노년 1인 가구도 증가하는 중이다. 중노년층 돌봄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중노년 1인 가구에 대한 복지정책은 의식주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이들도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욕망한다. 황두영 작가가 법안을 구상하며 만난 1950년대생들은 의외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재혼을 선택하기 쉽지 않은 노년에 마음 맞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즐거움을 유지하고 친밀한 관계를 꾸리는 데 생활동반자법이 유용하리라는 의견이었다.

사실 황 작가 ‘개인’에게 비추어볼 때 생활동반자법 입법이 절실한 문제는 아니다. 젊고 건강한 비장애인 남성이면서 경제활동을 하는 그는 당장 생활동반자법이 없더라도 사는 데 지장이 없다(그는 이러한 배경에 대해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자각하고 있었다). 오히려 생활동반자법은 사회복지 혜택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들에게 광범위하게 필요하다. 한 예로 생활동반자법이 보장하는 주요 혜택이 주거권이다. ‘함께 살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거나 청약가점, 임대주택에 입주할 기회를 주는 식이다. 이러한 혜택은, 신혼부부 등 일부만 누리던 수혜의 폭을 대폭 확장시킨다.

그는 주거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약자 보호’라고 말했다. 동거 중 가정폭력, ‘동거녀’ 살인 등은 뉴스 단골 소재다. 같이 살다가 어떤 불행이 생길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다. 동거 중 가정폭력 피해자는 이혼제도에서와 달리 모든 보호에서 제외되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되는데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만큼 절실한 문제가 있을까? 생활동반자법은 동거 중 신체나 재산상 피해가 발생할 때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를 제시한다. “생활동반자가 ‘돌봄을 약속한 관계’로 긍정적이고 낭만적으로 표현되지만, 이들 사이에도 매우 현실적인 문제가 닥칠 수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최소 안전망을 고려해야 합니다.”

최근 신천지 대구본부, 청도대남병원과 대구 한사랑요양병원에서 발생한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돌봄이란 무엇인지 되묻는다.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돌봐지고 있는지, 종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젊은이들이 얻고자 한 정서적 만족감은 무엇이었는지가 가슴 아프게 확인되었다. 정치는 이들의 돌봄에 대해 조망하지 않았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질문이 코로나19 사태에서 던져진 셈이다. 황두영 작가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향후 우리 사회의 돌봄 문제를 대답하는 데 생활동반자법이 유효한 키워드로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4년 7월, ‘생활동반자에 관한 법률’ 토론회에서 생활동반자법 초안이 공개되었다. 작가는 그 후로 6년 동안, 머릿속에서 홀로 가다듬고 연구하면서 생활동반자법 법안을 구체화해나갔다. 〈외롭지 않을 권리〉 4부 ‘만들자, 생활동반자법’은 법에 담겨야 할 내용을 세부적으로 써 내려간 챕터다. 시민연대협약(PACS)을 제정해 생활동반자 관계를 인정해온 프랑스 등 외국 사례를 참조하는 한편 국내 민법과 충돌할 수 있는 부분까지 신경 쓰려고 애썼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생활동반자법 논의가 진척되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친족의 가치가 침해되지 않는가’ ‘상속권이 없는 게 적절한가’ 등 구체적인 논의를 통해 완성도를 더 높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찬성과 반대 의견이 오가는 중에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겁니다.”

그는 생활동반자법을 충분히 숙성시키고, 사회적 요구까지 더해지면 정부나 국회가 선택할 정책 카드로 생활동반자법이 제시될 날이 머지않았다고도 낙관했다. 국민연금 고갈,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논란 등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돌봄 재정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는 공동체의 미래가 걸린 문제다. 세금을 낼 사람이 없는데 받아야 할 사람은 늘어나는 상황에서, 국민의 실질적인 행복을 높이면서 재정 수요를 줄이려면 우리 사회가 생활동반자법을 대안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배우 최불암씨가 〈수사반장〉을 패러디하며 주택연금 제도를 홍보해요. 국가가 노후를 보장하기 힘드니까 새롭게 제도를 디자인한 거죠. 이처럼 ‘매년 5월은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는 달’ 같은 카피를 만들어 친구와 함께 살도록 유도하는 날이 언젠가 오지 않을까요?”

정치학도로서 ‘밀레니얼 세대의 정치 감각을 표현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는 다음 책에서 민주화 이전 세대와 이후 세대의 괴리를 다룰 예정이다. 제목도 이미 정해놓았단다. “생활동반자법은 민주 진보 세력이 어디까지 혁신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지 가늠하는 잣대가 될 것”이라는 그의 장담이 과연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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