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전문가, "비용절감이 공공의료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지 않아야"
  • 김영화 기자
  • 호수 654
  • 승인 2020.03.1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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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 통계학을 바탕으로 공중보건 분야에서 깊이 있게 연구를 이어온 이탈리아의 생물통계학자 파브리지오 카린치 교수는 “과학자들의 지성을 연결해야 할 때다”라고 강조한다.
ⓒEPA이탈리아 군인들이 3월15일 프랑스 남부 망통과 접한 국경에서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차량 검문을 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처음 ‘지역 봉쇄’를 택한 곳은 이탈리아였다. 2월21일 북부 지역인 롬바르디아주 코도그노에서 코로나19 첫 감염자가 확인된 이후 18일 만에 내린 조치였다. 3월17일 기준 확진자 3만1213명, 사망자 2852명. 중국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전국에 이동 제한령이 내려지면서 4월3일까지 이탈리아 국민들은 업무, 건강 등 불가피한 이유가 아니면 거주 지역 밖으로 이동할 수 없다. 주유소, 약국, 식료품점 등을 제외하고 모든 상점에 휴업령이 내려졌다.

“우린 포위당했다. 여기는 정말 무섭다. 우리는 가족, 친구, 모든 것으로부터 고립되었다. 평소처럼 일할 의욕을 갖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평생에 한 번도 이런 일은 없었다.” 이탈리아 출신 생물통계학자이자 볼로냐 대학 통계과학 전공인 파브리지오 카린치 교수가 〈시사IN〉과의 이메일 인터뷰 말머리에 적은 말이다.

카린치 교수는 지난 30년간 통계학을 바탕으로 공중보건 분야에서 연구를 이어온 학자이다. 2월28일 〈영국의학저널(BMJ)〉에 ‘코로나19:대응, 분권화, 그리고 0번 환자 추적(COVID- 19:preparedness, decentralisation, and the hunt for patient zero)’이라는 사설(Editorial)을 게재했다. 사설에서 그는 분권화된 이탈리아의 지역적 특성을 중심으로 이번 사태에서 초기 방역이 왜 실패했는지 분석하고, 보건 위기 상황에서 공공의료 서비스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는 데이터 교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카린치 교수는 이탈리아 페스카라 지역에 위치한 자택에서 자가격리하며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시사IN〉은 그와 세 차례 걸쳐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재 이탈리아 상황은 어떤가?

우리는 확실히 감염병의 위험을 과소평가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감염병이 이렇게 빠르게 확산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 현재 모든 것이 중단된 상황이다. 초중고부터 대학교, 공공시설이 문을 닫았다. 방문객들로 붐비던 중심부는 완전히 텅 빈 상태이고, 일요일에 문을 연 슈퍼마켓에는 생필품을 사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확실히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고작 며칠 만에 악몽이 현실이 된 듯하다.

이동 제한령에 대해 국민들은 어떻게 반응하나?

시민들 대부분은 일치된 반응을 보인다.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격리된 상황에서도 발코니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고, 여러 활동을 하면서 서로 연결되고자 한다. 일부는 반려견 산책을 하거나 혼자 거닐며 간단한 운동을 하기도 한다. 대다수는 스마트 업무로 이전보다 바빠졌다. 내가 근무하는 볼로냐 대학에서는 학생 5만명을 대상으로 한 주에 2500개 강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쌍방향 강의, 실습과 시험, 논문까지도 가능한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확진자가 급증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탈리아는 중국보다 훨씬 작지만 더 다양한 지역 분포가 있다. 지역마다 문화, 행동양식, 사회경제적 지위, 수입, 사회기반시설 정도가 굉장히 다르다. 공공의료 서비스의 질적인 측면에도 격차가 크다. 중부·북부 지역의 경우 의료 서비스 속도가 빠르고, 효율적이며, 양질이다. 중증환자 치료를 위한 전문화된 의료 서비스도 중부와 북부 지역에 몰려 있다 보니 감염병 방역에서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가 처음 발병한 곳은 초기 대응이 상대적으로 가능했던 북부 지역이었다(이탈리아 내 코로나19는 롬바르디아주, 베네토, 에밀리아로마냐 등 북부 3개 주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했다). 문제는 해당 지역들이 북부 지역에서도 상대적으로 의료 시스템이 빈약한 중소 도시였던 데다 감염병의 규모가 이렇게 클 줄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이탈리아 정부는 후베이식 봉쇄전략을 수용했다. 진원지인 롬바르디아의 코도그노에서는 확산세가 누그러지는 모양새다.

ⓒFabrizio Carinci 제공파브리지오 카린치 교수.

이탈리아 확진자들의 치사율이 7%를 넘는다. WHO에서 집계한 세계 평균치(3.4%)보다 두 배 높은데 원인이 무엇일까?

치사율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인구수에 대한 사망자의 비율을 뜻한다. 이 지표는 분자와 분모를 나눠서 해석해야 한다. 분자인 사망 수에는 고위험군이나 고령자가 포함된다. 이들은 대개 만성질환과 같은 복합조건(complex condition)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이런 혼합 사례가 다른 나라에 비해 좀 더 많은데, 세계에서 가장 평균수명이 긴 국가 중 한 곳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공정한 비교를 위해서는 지표가 표준화되어야 한다. 분모인 확진자 수도 국가마다 다르다. 이탈리아 정부는 한국에서 수행된 만큼의 대량 테스트를 아직 시행하지 않았다. 이탈리아 국립보건연구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은 확실한 증상이 있는 사람들만 검사할 것을 각 지방 당국에 권고했다. 진원지에서 엄청난 수의 확진자가 나왔던 초기 단계 이후 다른 유럽 국가나 WHO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탈리아의 검사 기준도 바뀌었다(3월17일 기준 이탈리아의 누적 검사자 수는 13만8000여 명이다). 감염자 수는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한다. 치사율은 일종의 ‘통계적 착시(statistical artifact)’일 뿐이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병상이 부족해서 고령 환자 치료를 포기하는 상황이라고 하는데?

북부 지역의 병상과 의료진은 부족한 상황이지만 해당 보도는 다소 과장된 면이 있다. 최근 OECD의 〈한눈에 보는 보건 보고서 2019〉(Health at a Glance, 2019년 11월7일 발간)’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병상은 1990년 이후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이는 의료 현대화와 지역사회 의료체계가 전환되며 달라진 결과였다. 문제는 코로나19 급증세에 따라 음압치료 병상에 대한 요구는 OECD의 다른 국가에서 이용 가능한 양의 두 배를 넘었다는 점이다. 중증 환자 사례가 증가하자 몇몇 임상 전문가들은 “각 지역의 병상이 다 찰 경우 새 확진자들은 ‘회복’ 가능성에 근거하여 치료해야 한다”라고 관계 당국에 경고했다. 이 경고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졌고, 극단적인 결과만은 피할 수 있도록 병원의 수용 가능성을 늘리는 조치들이 시행되고 있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한 가지 교훈을 준다. 긴축과 비용절감이 공공의료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어떤 조치들이 시행되고 있나?

특별법이 제정되어 의료 장비를 구매하고 전담 병원을 개설하는 것이 용이해졌다. 심지어 유람선도 전국 각지의 환자들을 이송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제안되었다. 다행인 것은 북부 지역이 좀 더 부유하고 기업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후원자들도 이 위기에 대처할 수 있도록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는 프로젝트를 짜는 데 굉장히 적극적이다.

ⓒReuter3월14일 이탈리아 토리노 지역 주민들이 집 발코니로 나와 노래하고 박수를 치며 서로 응원하고 있다.

한국의 코로나19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한국에서 실시한 엄격한 원칙이 효과를 본 것 같다. 방역 효과가 다른 국가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꽤 고무적이다. 특히 ‘추적-검사-치료’로 불리는 한국식 방역 대응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질병의 실제 진화 과정을 이해하도록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역학적으로도 안정적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서구권 국가에서는 적용하기가 어렵다. ‘개인의 선택’과 ‘공공의 이익’을 저울질하는 데 상당한 문화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개인정보보호법이다. 감염병 대응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유럽연합의 개인정보 보호 규정인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에 따라 감염자의 ‘추적-검사’가 어려울 수 있다. 한국은 감염병 확산 상황에서 공공의 안전에 대한 더 나은 이해가 있다고 보인다.

전염병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내 연구의 주 관심사이기도 하다. 위기 상황에서도 빠른 발견(rapid discovery)을 가능하게 하는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유전공학 분야에서부터 보건정책 결정까지 이어지는 협력 모델이 필요하다. 백신과 치료법 개발 연구가 공중의료 시스템에 연계된다면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도 의료체계가 마비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여러 학문 분야에 걸친(multidisciplinary) 과학자들의 커뮤니티가 필요하다. 현재 내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것처럼, 네트워크에 소속된 과학자들 역시 연중무휴, 실시간으로 해당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과학자들 간의 말도 안 되는 경쟁을 멈추는 일이 시급하다. 과학 분야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권위 있는 인물이나 사업가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경쟁은 오로지 지식에 장벽을 만들 뿐이다.

사설에서 ‘국경을 넘는 질병 데이터 교환’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전염병이 퍼졌을 때 전 세계적으로 이용 가능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야 한다. 물론 각 환자들의 개인정보는 가려진, 익명의 데이터베이스를 말한다. 과학자 개인이 경력을 쌓는 것보다 서로의 지성을 연결해야 할 때다. 오픈 데이터베이스가 있다면 과학자들은 아이디어를 공유할 뿐만 아니라 정부와 협업해 데이터를 구축하고 솔루션을 찾았던 경험을 제시할 수도 있다. 정부의 관심사가 가능한 한 빨리 해결책을 찾는 것이라면, 과학자들의 관심사는 되도록 빨리 데이터를 모으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는 모든 짐을 병원과 산업 현장에 있는 영웅들에게 지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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