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연극판’에서 일하고 싶었다. 서울 대학로를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산하 연극아카데미 2년 과정을 마쳤다. 가장 좋아하는 걸 하면 가장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다. 졸업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매일 울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행복하고 싶었다. 그때 ‘교육연극(Educational Drama & Theatre)’이라는 샛길을 봤다. 작품이 목적이 아닌 커뮤니티 안에서 연극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다룬 별도 학문이었다. 배운 것을 현장에서 접목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장애인 연극 모임을 소개받아 보조로 참여하게 됐다.
“취직하라는 부모님 등쌀에 떠밀릴 때였는데, 같이 모임을 하던 친구가 〈비마이너〉라는 곳에서 사람 뽑는다고 서류를 넣어나 보라는 거예요. 그때 정말 돈이 필요했어요(웃음).” ‘차별에 저항하는 장애인 언론’ 〈비마이너〉와 강혜민씨(34)의 인연은 얼떨결에 시작됐다. 그 덕분에 2012년 강씨는 대학로와 새롭게 만났다. 언제든 연극을 볼 수 있는 장소에서, 매일 출퇴근하는 〈비마이너〉 사무실이 있는 공간으로 변했다.
변했다기보다는 ‘깨졌다’는 표현이 더 적확했다. 그곳에는 강씨가 몰랐던 세계가 있었다. “사무실에 처음 왔는데 ‘이 많은 장애인이 다 어디서 쏟아져 나온 거지?’ 싶더라고요.” 처음 집회 취재를 나갔을 때의 기억도 선명하다. 장애인 집회는 ‘열과 오’를 맞춘 대열이 불가능했다. 흐트러진, 정돈할 수 없는, 불가능한 몸이 주는 현장의 긴장이 강씨를 사로잡았다. 장애인 활동 지원제도 관련 기사를 준비하면서 ‘전설처럼’ 구전으로 전해지던 한강대교 6시간 투쟁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망연하기도 했다. “어떤 언론사에도 현장을 자세히 다룬 기사가 없는 거예요. 이제부터라도 내가 샅샅이 기록해야겠다, 다짐했어요.”
‘제일 먼저 나갈 줄 알았던’ 강씨는 8년 차 기자로 매체를 책임지는 편집장이 되고, 10년 차 〈비마이너〉는 기자 3명 월급을 겨우나마 최저임금은 맞춰줄 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좋은 보도가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라는, 아마도 전 세계 모든 언론사 편집장의 고민이 강씨에게도 숙제다. 〈비마이너〉를 떠받치는 건 매달 5000원을 내는 수백 명의 후원독자들이다. 이 매체가 거의 유일하게 자신들의 목소리가 되어준다고 생각하는 장애 당사자들이, 활동가들이, 기초생활 수급자들이 없는 돈을 쪼개 힘을 보탠다.
“코로나19 여파가 벌써 느껴져요. 경기가 위축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줄이는 지출이 후원이잖아요. 홈페이지에서 저희 기사 몇 개만 읽어보셔도 금방 아실 거예요. 저는 이 매체가 기성 언론이 안 보고, 못 보는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눈’이라고 생각해요.” 〈비마이너〉 10주년의 ‘꿈’은 소박하다. 월 200만원 이상 버는 사람들의 지갑을 여는 것. 그래서 2020년에는 기자 한 명을 더 채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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