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멈춘 대학의 풍경
  • 이대진(필명∙대학교 교직원)
  • 호수 653
  • 승인 2020.03.23 13:3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해성 그림

베스트셀러 책 제목처럼, 멈추니 보이기 시작했다. 지식의 최전선인 대학이 감염병 확산 저지의 최전선이 되면서 잊었거나 몰랐거나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당위론적인 구호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대학과 지역사회의 상생은 실제 생존의 문제였다. ‘대학도시’라는 말이 있듯이, 대학은 자신을 품고 있는 지역사회에 사회적·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장 학위수여식과 입학식이 취소되자 인근 꽃가게는 물론 현수막 업체나 인쇄·디자인 업체 같은 지역 소상공인들이 울상이다. 현재로선 학생 축제 같은 봄철 각종 행사의 개최 여부도 불투명하다.

중국인 유학생 자취방 계약 취소 잇따라

경계와 격리의 대상이 된 정원 외 중국인 유학생들은 대학과 지역사회가 공유하는 ‘자금줄’이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거두고, 대학가 집주인들은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한 중국인 학생들에게 보증금과 월세를 받는다. 유학생들은 장학금이나 고향에서 보낸 생활비 중 상당액을 동네에서 소비한다. 재정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인 유학생들을 대거 유치한 대학들은, 이제 지자체와 손잡고 유학생들에게 체온 측정을 부탁하고 도시락을 배달하는 관리와 보호의 압박을 견디고 있다. 자의 반 타의 반 입국을 취소하거나 연기한 중국인 유학생이 증가하자 자취방 계약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는 대학가 소식도 들린다.

사실 이번 사태 초기 ‘방학-졸업-입학-개강-수업’으로 이어지는 학사(學事) 운영의 톱니바퀴가 정지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학내 보건소나 의무실 차원에서만 필요한 대응에 나섰다. 대책 마련에 관여하는 행정 부서가 점차 늘어나는 상황이 됐지만, 모여서 회의를 하면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조치를 내놓기보다 교수·학생들의 뒷말을 우려해 ‘오버하지 말자’는 대학 행정 특유의 보수적 태도를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대학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학생들의 지역 간 이동이 극에 달하는 2월 말 이전에 바이러스 확산세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사이 행정 부서는 평소 주목하지 않은 학내 정보를 수집하고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했다. 외국인 학생 중 방학 때 고향에 다녀온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하고 코로나19 확진자 발생국 현황과 비교했다. 대구·경북 지역 출신의 신입생과 재학생은 몇 명인지, 언제 어떻게 캠퍼스로 돌아올 계획인지 따위를 파악하기 위해 이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돌리기도 했다. 여행지나 출장지가 중국·홍콩·타이 등 확진자 발생국이거나 대구·경북 지역인 구성원에게 연락을 취해 복귀 일자와 동선을 체크했다. 거주지, 연락처, 부모 집 주소, 외국인 학생의 본국 현지 주소, 출장신청서 같은 정보의 정확성과 관리체계가 새삼 중요하게 느껴졌다.

친절과 배려가 낯설고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며, 역으로 사소한 감사 표현이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도 다시 깨닫고 있다. 캠퍼스마다 격리 공간에 대한 방역과 청소, 격리자들을 위한 식사와 물품 전달, 체온과 컨디션 체크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맡은 임무를 다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갑작스러운 행정 조치나 협조 요청에 반발하는 경우도 있지만, 학교의 결정과 편의 제공에 학생이나 학부모가 감사 인사를 전했다는 이야기도 간간이 들려온다.

질문도 답변도 하지 않겠다는 듯 마스크로 입을 가린 학생들이 강의실에 앉아 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암울하다. 정문 앞에 도착한 캠퍼스의 봄과 함께, 공포와 불안으로 멈춰 선 대학의 일상이 하루빨리 제자리로 돌아오길 바란다.

Magazine
최신호 보기 호수별 보기

탐사보도의
후원자가 되어주세요

시사IN 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