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이상헌 제공배이상헌 교사는 지난해 7월 수업 중 남녀 중학생들에게 성희롱을 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됐다.

배이상헌씨(57)는 30년 경력의 중학교 교사다. 광주 지역 중·고등학교에서 도덕 과목을 가르쳐왔다. 지난해 7월 광주광역시교육청은 배이상헌 교사를 직위해제했다. ‘처분 사유 설명서’에서 광주교육청은 그를 “남녀 중학생들에게 성적 학대를 하였다는 내용으로 고발되어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 수사 중인 자”라고 불렀다. 배이 교사를 조사한 광주남부경찰서는 지난해 9월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사건이 알려지게 된 계기는 ‘피해 당사자’인 학생들의 신고였다. 이른바 ‘스쿨 미투’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사건 양상은 다른 미투 사건들과 사뭇 다르다. 교육 현장에서 불거지고 있는 새로운 문제 상황도 보인다.

경찰이 조사한 ‘성적 학대’란 아동복지법 제17조 2호를 뜻한다. ‘아동에게 음란한 행위를 시키거나 이를 매개하는 행위 또는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배이상헌 교사가 조사받은 내용은 ‘성희롱’ 여부다. 학생들은 배이 교사의 언행으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신고했다. 지난해 7월17일 그가 교내 성고충상담원에게서 전달받은 학생들의 신고 사항은 이렇다. “△‘너희는 나를 식민지처럼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성관계를 하고 나면 기분이 야릇하고 좋다’고 말했다. △‘남자가 여자를 꼬실 때 잘 안 되면 강간하면 된다’고 말했다. △‘위안부는 몸 파는 여자, 위안부는 스스로 가서 그랬다’고 말했다. △‘창녀’ ‘창놈’ 등 단어가 나오고, 여성이 상반신을 노출한 채 달리는 장면이 있는 영상을 보여줬다. 경찰 수사를 받으며 2가지 신고 내용을 더 알게 됐다. △남녀가 키스하는 장면을 PPT 화면으로 보여줬다. △‘나랑 섹스할래?’라고 말했다.”

성적 침해는 대개 목격자가 없는 곳에서 발생한다. 이 사례는 그렇지 않다. 신고 내용은 모두 다수 학생들이 수업을 듣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다. 배이상헌 교사는 ‘식민지’라는 표현은 쓴 적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다른 발언은 부인하지 않으며, 수업 중 영상과 PPT를 보여준 것도 사실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억울함을 호소한다. 말과 행동의 맥락을 제거하고, 그 의미를 곡해했다는 것이다.

신고 내용에 대한 배이상헌 교사의 항변은 크게 둘로 나뉜다. 첫째, 발언 앞뒤를 잘라 정반대 의미처럼 보이게 했다. 배이 교사에 따르면 ‘성관계 후 기분이 좋다’는 발언은, 스킨십 자체는 좋더라도 적절치 못한 성적 요구에 대해 옳지 않다고 말하고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며 한 말이다. ‘위안부’ 관련 발언은 한 대학교수가 한 말이다. 그를 비판하기 위해 인용한 것이다. ‘강간하면 된다’는 발언은 성적 자기결정권의 중요성을 가르치며, 과거의 그릇된 성의식을 비판하면서 나온 말이었다. 말하자면 교사는 ‘A는 그르다’고 말했는데, 학생들이 ‘A라고 말해 불편했다’고 신고했다는 것이다.

둘째, 교육 목적이 있었다. 배이상헌 교사는 ‘나랑 섹스할래?’라는 발언이 나온 맥락을 이렇게 설명했다. “도덕1 교과의 중단원 ‘성윤리’에서는 성적 주체성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다룬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성관계를 차 마시기에 빗대어 ‘명백한 동의’의 중요성을 설명한 영상을 보여줬다. 학생들에게 영상 속 ‘차를 마실래?’가 ‘나랑 섹스할래?’의 의미인 것을 이해했느냐고 물었다.” 상반신을 노출한 여성이 나오는 영상은 프랑스 단편영화 〈억압받는 다수〉이다. 남성과 여성의 현실이 뒤집힌 가상 상황을 다뤘다. 여성이 상반신을 노출하고 노상방뇨를 하며 남성을 일상적으로 추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배이상헌 교사는 이 영화가 ‘미러링’을 통해 일상의 성차별을 인지하기 위한 교재였다고 말했다. 이 단편영화를 만든 영화감독 엘레노르 푸리아는 지난해 8월 배이상헌 교사를 지지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학생들에게 보낸 편지 형식을 빌려 그는 “여성을 향한 폭력과 성차별과 싸우세요. 당신에게 성차별·성희롱에 대한 정보를 주려 했던 사람과 싸우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라고 썼다.

광주교육청은, 중요한 것은 학생들의 반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8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광주교육청 성인식개선팀 정경희 장학사는 “학생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수업 도구, 자료, 교사의 발언으로 인해 학생들이 성적 수치심, 모욕감, 굴욕감 등의 피해를 받았다는 것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앞에서 본 신고 내용을 종합하면, 성행위나 성범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일, 신체 노출이 있는 영상을 보여주는 일이 ‘발달단계에 맞지 않는’ 수업에 해당한다고 광주교육청은 판단한다.

‘불편한 생각에 노출되고 싶지 않다’

반면 배이상헌 교사는 “발달단계를 누가 어떻게 판별하는가?”라고 묻는다. 지난해 12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의 〈기획회의〉 기고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시교육청은 교육과정 전개상 아무 문제가 없을지라도 학생이 불편함을 느꼈다면 ‘정서적 아동학대’가 된다고 말한다. …‘섹스·젠더·섹슈얼리티·성상품화·데이트 폭력·성적 자기결정권’ 등의 학습 요소를 설명하는 성윤리 수업에서 학생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일 아닌가?” 배이상헌 교사는 2월20일 〈시사IN〉과 통화에서 “오해로 빚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말실수를 하는 스타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배이상헌 교사는 곧 직위해제에 대한 행정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배이상헌 교사와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한 교사는 그의 교육관이 “한국 사회의 성의식에 비해 조금 급진적인 부분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형식적 성교육, 형식적 페미니즘을 탈피하자는 게 배이상헌 선생님 지론이었다. 한국은 ‘섹스’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불편해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보수적인 분위기다. 유럽처럼 성에 대한 내용을 전면적으로 풀어놓고 교사와 학생이 토론하는 기조로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 배이상헌 선생님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전부터 ‘불편한 수업’에 대해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이 교사는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는 예로 2018년 일어난 ‘〈구지가〉 사건’을 들었다. 인천 한 고등학교의 국어교사 A씨가 수업 중 “고대가요 〈구지가〉에 나오는 ‘거북이 머리’가 남근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학부모의 항의를 받은 학교는 학내 조사를 거쳐 인천광역시교육청과 논의한 뒤 해당 교사를 파면 처리했다. A 교사는 자신의 발언이 수업 내용의 맥락이 제거된 채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A 교사가 평소 성과 관련한 문제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는 학생들의 주장을 실은 언론도 있다.

ⓒ배이상헌 제공‘성평등교육과 배이상헌을 지키는 시민모임’이 2019년 8월 선포식을 갖고 배이상헌 교사의 원상 복직을 촉구하고 있다.

중·고등학교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일고 있다. 전공 특성상 성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법학 분야에서 특히 불거진다. 교수의 사담이 아니라 교과서 속 판례를 다루는 것만으로 갈등이 일어나는 때도 있다. 서울 시내 한 로스쿨 교수는 이런 경험을 소개했다. “음란물과 관련된 판례를 다룬 적이 있다. 작가가 ‘음란물 규제를 풍자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묘사했다’고 주장한 작품이었다. 문제의 ‘의도’에 대해 판단하려면 이 ‘음란물’을 수업에서 봐야 하는데, 불편함을 호소한 학생이 있었다. 항의를 받아들여 다음부터는 모자이크 처리를 했다.” 그는 비슷한 항의를 경험한 동료 교수들이 더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문제가 되고 개선이 필요한 상황도 분명히 있다. 그런데 맥락을 살피지 않고 ‘특정 내용을 다루는 것 자체가 싫다’는 학생들도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볼까? 지방의 한 로스쿨에 재학 중인 학생은 “교수들이 극도로 조심하는 게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는 형법 수업에서 성범죄를 다루던 교수가 말을 더 하려다 급히 중단한 기억을 떠올렸다. “판례를 보충해서 설명하려던 것 같았다. 미투 사건과 관련된 유명 케이스를 언급하려 했다고 짐작한다.” 그런데 그는 교수들의 말이 불편했던 장면도 몇 차례 있었다고 말했다. ‘술집 여자도 아니고’ ‘피해자가 예뻤나?’ 따위의, “지나가다 툭 튀어나온 것 같은” 발언이었다. 공개적으로 파문이 일지는 않았지만 몇몇 학생은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불편한 생각에 노출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학생들은 한국에서만 등장한 기현상이 아니다. 미국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와 변호사 그레그 루키아노프는 책 〈나쁜 교육〉에서 “이른바 ‘공격적인’ 생각에 노출되면 안 된다는 견해가 캠퍼스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다”라고 썼다. 10대 초반부터 SNS를 즐겨온 ‘i 세대’가 대학생이 되면서 문제가 심화됐다는 게 책의 분석이다. SNS와 스크린 이용 시간, 부모의 과보호, 학교의 관료주의적 규제 따위를 문제의 원인으로 꼽았다.

저자들은 일례로 미국 브라운 대학에 생긴 ‘안전공간’을 소개했다. 2015년 이 학교에서는 페미니스트 작가 두 명이 ‘강간 문화(책은 ‘사회에 팽배한 태도로 인해 성적 공격이나 학대가 일상적이고 하찮은 일로 여겨지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에 대해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에서 한 사람은 미국이 강간 문화 아래에 있다고, 다른 쪽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몇몇 학생은 강간 문화가 아니라는 입장의 연사를 학교에서 보는 것만으로 “감정 격발”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도록 쿠키, 담요, 강아지 영상 따위가 준비된 방을 마련했다. 이 안전공간을 찾아온 학생은 토론회에서 “제가 소중하게 꽉 붙들고 있던 믿음이 상충하는 견해에 거침없이 폭격당하는 기분”을 느꼈다고 호소했다.

안전주의에 따라 양육된 젊은 세대

책은 ‘안전주의’ 문화를 비판한다. 안전주의는 “안전이 신성한 가치라고 군림하는 믿음 체계”다. 안전주의적 교육은 학생을 상상 가능한 모든 위험에서 지키려 하는데, 감정적 안전도 그중 하나다. 안전주의에 따라 양육된 젊은 세대는 자신과 공동체를 ‘낯선 생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태도를 지닌다. 그들은 사안을 ‘참인가, 거짓인가’가 아니라 ‘위험한가, 안전한가’의 틀로 본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런 사고는 자신과 사회에 해롭다. “의사소통, 상황 등이 온화하거나 심지어 자비롭다고 해도 거기서 적의를 발견해낸다.” 극단적으로 말해 안전주의의 관점에서 발견한 적의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위협일 수 있다. 엘레노르 푸리아 감독의 말처럼 “성차별·성희롱에 대한 정보를 주려 했던 사람”을 위험인물로 오인하는 것도 가능하다.

안전할 권리는 무겁다. 하지만 의미가 확장된 안전을, 현존하는 신체 위협을 제거하듯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기이한 풍경에 닿는 때가 있다. 급진적 페미니스트 교사는 성비위로 직장을 잃고, 아이비리그 학생들은 유아가 된다. 법적 여성은 여대에 가지 못한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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