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와 21세기 사진의 분기점은 면도날처럼 가파르다.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 사진만으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에는 소수의 전문가들이 사진이라는 매체를 다루었다면 21세기에는 누구나 카메라를 들고 언어처럼 쉽게 구사한다는 점이 근본적인 차이다.
이런 차이로 사진 문화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흔히 촬영되던 장르가 현재 거의 사라졌다. 대표적으로 ‘거리 사진’ 장르이다. 도시의 개방된 거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피사체로 삼아 찍는 사진이 거리 사진이다. 20세기 초반 라이카 같은 소형 카메라가 등장하자 다큐멘터리 사진의 가장 흔한 장르가 되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프랭크 등이 주로 거리 사진을 찍었다. 세기말이 되면서 거리 사진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고 21세기에는 거의 사라졌다. ‘초상권’ 때문이다.
최근 후지필름은 새로운 소형 카메라 X100v를 출시하며 일본 사진가 스즈키 다쓰오에게 카메라 리뷰를 맡겼다. 그는 일본 사진계에서 알아주는 거리 사진가다. 후지필름은 이 사진가가 자사의 소형 카메라를 가지고 어떻게 거리에서 인상적인 사진을 얻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동영상을 올렸다. 반응은 전혀 다른 방향에서 폭발적이었다. 당장 영상을 내리라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어찌된 일일까?
스즈키의 폭력적인 촬영 방식 때문이었다. 그는 망원렌즈를 활용한 ‘도촬’ 방식도 아니고, 광각렌즈로 지나가는 사람들 앞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었다. 초상권을 염두에 두지 않은 촬영에 사람들은 온갖 표정을 지었다. 불쾌해하고, 일그러지고, 얼굴을 가렸다. 이에 대해 스즈키는 “저와 주제가 마주 보게 되면 주제의 감정이 드러난다. 내 의도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게 아니다. 항상 긴장감이 있어야 한다. 내가 찍은 사진들이 관객들의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영상은 곧 내려졌고 후지필름은 사과했다. 스즈키와 전속계약도 해지했다. 이 사태는 카메라를 사용하는 전 세계 사용자들에게 경각심을 일으켰고, 사진하는 사람들에게 ‘거리 사진이란 도대체 어떻게 찍어야 하는가’ 다시금 환기시켰다.
“내게 윤리를 묻지 마라”
스즈키 이전에도 거리 사진으로 문제를 일으킨 유명 사진가가 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사진가 브루스 길든이 대표적이다. 그는 “내게 윤리를 묻지 마라”는 말로 유명하다. 그도 거리의 사람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플래시를 터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렇게 폭력적인 방식으로 거리 사진을 찍으려 했을까? 이들이 내세우는 결론은 비슷하다. 도시에서 인간의 역사를 기록하겠다는 이유였다. 스즈키는 “나는 주로 사람들을 촬영한다. 그들의 열정, 감정, 고통 등을 표현하고 싶다. 멋진 구도에는 관심이 없다. 코믹한 거리나 유머러스한 거리 사진에도 관심이 없다. 긴장감이 높은 거리를 촬영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굳이 그의 사진 철학에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도시의 은폐된 이면을 드러내려는 시도에 같은 사진가로서 공감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의문이 있다. 만약 사진가인 내가 그의 우스꽝스럽고 폭력적인 촬영 모습을 찍어 폭로하면, 그는 어떤 기분일까? 스즈키 사진에는 피사체에 대한 일방적인 해석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전지적이며 파시즘의 냄새가 난다. 카메라와 사진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자신만이 유일하게 진실을 대면할 수 있다는 폭력성에 도취된 한 사진가의 거리 사진일 뿐이다. 그의 사진은 거리 사진의 정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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