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지 말아주세요
나카가와 마나부 지음, 김현화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저는 사회에 나와서 잘해나가지 못했습니다.”

2001년 9월, 홋카이도 메아리 중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나카가와 마나부는 교사 일이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걸 실감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내다 어느 날 갑자기 잠적해버린다. 이후 도쿄에 상경해 우여곡절 끝에 30대 중반 무렵 만화가로 데뷔한다. 살면서 괴로운 순간마다 여러 번 도망쳤지만 그중에서도 중학교에서 도망쳤던 일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일을 매듭짓기 위해 당시 잠적했던 지역을 순서대로 여행하고 그 경험을 만화로 담았다. 당시 그를 찾느라 고군분투했던 부모와 그가 가르치던 학생의 부모, 학교의 동료 교사를 차례차례 만나며 과거의 자신과 대면한다. 괴로운 기억이었지만 예상한 만큼 끔찍하지는 않았다.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위기
한스 바론 지음, 임병철 옮김, 길 펴냄

“피렌체 공화국이 독립을 위해 투쟁한 12년 동안… 그 신조가 성장했다.”

15세기 초엽 이탈리아 지역의 도시 공화국 피렌체 시민들은 공포로 전율하고 있었다. 통일왕국을 꿈꾸며 팽창을 거듭하던 전제주의 밀라노의 군주 잔갈레아초가 피렌체를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20세기 최고의 르네상스 학자로 불리는 저자 한스 바론은, 당시의 피렌체가 밀라노 전제주의의 공격이라는 외부의 도전에 응전하는 과정에서 ‘공화제적 가치에 기초한 시민적 휴머니즘’이라는 근대적 사상이 태동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14세기까지의 신학적 세계관으로부터 시민의 능동적 사회참여 및 부(富), 가정사 등에 적극적 가치를 부여하는 세속적 윤리·문화 운동이기도 했다. 1960년대에 발간되어 ‘공화주의’와 관련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켜온 이 책이 드디어 한국에서도 번역되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
다니구치 지로·브누아 페터스 지음, 김희경 옮김, 이숲 펴냄

“그 주제가 정말로 제게 와닿아야만 일하게 되죠.”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를 알게 된 건 작품 〈산책〉을 통해서다. 대사가 거의 없고, 자연스러운 배경과 등장인물의 표정에 집중한 이미지만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입력에 놀랐다. 그 후 그가 〈고독한 미식가〉 〈선생님의 가방〉 〈도련님의 시대〉를 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어떤 작품에서건 그는 조용히 압도적이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다니구치 지로의 대담집이 나왔다. 어린 시절, 전문 만화가로의 길,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등을 사진과 그림을 통해 보다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인간이 자연에 얼마나 이기적인지 고발하고 싶어서 더 생생하게 묘사하려 노력하고, 더 매력적인 서사를 고민한다’는 대목에서, 그의 작품을 또 한번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죽음은 처음이니까
권혁란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엄마처럼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고 했던 생각보다 더 깊고 간절해지는 날들.”

시골집에서 요양원으로, 다시 요양병원으로 옮겨 다녀야 했던 구순 엄마의 마지막 2년. 고아이자 무학이었던 엄마 앞에서 가방끈 긴 딸은 고통스럽다. 온몸이 무너져 내린 채 섬망에 빠져 ‘하나 남은 이빨로 혀가 말려 들어갈 만큼 서럽게 욕을 하는’ 당신을 보며 ‘차라리 고아이기를 꿈’꿨던 오래된 갈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이 듦, 돌봄, 사멸, 존엄한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 죽음을 통한 이별을 미리 공부하는 실용서로서도 맞춤하다. 유치원처럼 어르신들의 일과를 SNS에 올리는 등 요즘 요양원 풍속도도 흥미롭게 읽힌다. ‘누구나 일생에 단 한 번 겪게 될 이야기’를 정면으로 직시하면서 저자는 끝내 죽은 엄마와의 화해로 나아간다.

 

 

 

 

 

 

 

 

 

IMF, 불평등에 맞서다
조너선 D. 오스트리 외 지음, 신현호 외 옮김, 생각의힘 펴냄

“불평등이 성장을 취약하게 할 수 있다는 발견을 통해, 불평등 연구는 IMF의 사명이 되었다.”

한국에서 IMF(국제통화기금)의 이미지가 좋다고는 빈말로도 하기 어렵다. 1997년 외환위기는 흔히 ‘IMF 사태’로 불리며 집단기억에 각인됐다. 한국인들은 IMF를 심하게 보면 경제위기를 초래한 글로벌 자본의 앞잡이, 좀 온건하게 보면 가혹하고 불공평한 심판 정도로 생각한다.
그게 IMF의 책임만은 아니겠으나, 한국은 ‘IMF 사태’ 이후 불평등이 가파르게 치솟았다. IMF가 불평등에 맞선다는 제목은 그래서 역설적인 느낌을 준다. IMF 소속 경제학자인 저자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반성적 성찰’의 목소리를 꾸준히 높여왔다. 책은 불평등이 성장의 필연적 결과물이 아니라 오히려 성장의 방해물이라고 입증해낸다.

 

 

 

 

 

 

 

 

 

 

가짜 뉴스의 고고학
최은창 지음, 동아시아 펴냄

“더 이상 언론만이 뉴스 정보를 공급하지 않는다.”

‘가짜 뉴스’ 입장에서 본 미디어 생태계를 분석했다. 그동안 가짜 뉴스라고 하면 소셜 미디어나 언론계 내에서 어떻게 유통되고, 공론장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위주로 조명되었다. 그러나 온라인상의 클릭 미끼부터 음모론, 정치 광고까지 가짜 뉴스는 이미 우리 세계의 일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짜 뉴스에 제대로 대처하고 싶다면 그 뿌리를 알아야 한다. 이 책은 ‘고고학’이라는 제목을 붙인 만큼 로마 시대부터 매스미디어 시대를 지나 소셜 미디어 시대를 아우른다. 가짜 뉴스가 트럼프를 당선시켰을까? 광우병 보도는 가짜 뉴스였나? 댓글 조작은 효과적이었을까? 다양한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가짜 뉴스가 생존해온 메커니즘을 확인할 수 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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