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니언 등 수려한 자연경관을 품은 미국 서부 네바다주에는 국립공원 내에서 뛰노는 3000여 마리의 야생마가 있다. 야생마에게 일일이 고유 이름을 지어주고 보존한다. 지난 1월8일 네바다주 공원관리국이 리노 지역 파크웨이 일대에서 뛰노는 신생 야생마에 처음으로 한국인 이름 ‘Wan Joong(완중)’을 명명해 화제다. 완중은 김완중 로스앤젤레스 총영사(57·가운데)다.

‘완중 야생마’에는 사연이 있다. 한국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53년 3월 말 미군과 중공군은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매향리 일대에서 휴전협상을 앞두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휴전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벌인 당시 전투에서 900명 이상의 미군이 전사했다. 이들은 모두 네바다주 출신이었다.

김완중 총영사는 2018년 부임 후 네바다주 참전 미군과 휴전 65년 만에 첫 인연을 맺는다. “한국 영사관에서 행사에 참석한 게 이번이 처음이라는 얘기를 듣고 무척 송구한 마음도 들어서 이후로는 긴밀하게 교류 협력을 이어갔다. 거기서 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자인 네바다주 공원관리국장을 만나면서 내 이름을 딴 야생마 선물의 인연이 됐다.” 야생 망아지 완중은 지난해 5월17일 태어난 수컷 말로, 갈색과 붉은색 털이 조화를 이루는 ‘녹비색(Buckskin)’이다.

김완중 총영사는 네바다주와 한국전쟁으로 맺은 인연을 한국 기업 유치, 한인 커뮤니티와의 연대 등으로 이어나갔다. 1월 라스베이거스 국제전자제품전시회(CES 2020)에서 그는 네바다주와 한국 기업 간 투자협력 방안 및 블록체인 등 첨단기술을 활용한 야생마 관리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보수 색채가 짙은 미국 서부 교민 사회에서 김 총영사는 ‘통합의 전도사’로도 통한다. “가장 큰 보람이라면 그간 보수와 진보로 갈려 있던 동포 사회에 단합, 통합의 기운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그가 부임했을 때 미국 서부 교민 사회는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로 극한대립 상태였다. 그는 보수적인 교민 사회에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정부의 외교적 노력을 방해하기보다는 일단 기회를 주고 기다려봐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교민 통합을 위해 미주 항일독립운동을 매개체로 삼았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100년이 넘은 재미 항일독립운동의 흔적인 ‘국민회의 독립운동’ 유물 6700여 점을 천안 독립기념관으로 보낼 수 있었다. 김완중 총영사는 “야생마 완중이 연중 눈 덮인 ‘시에라네바다’ 고봉을 누비면서 한국과 네바다주, 나아가서는 한·미 동맹과 우호의 상징으로 잘 자라주길 기원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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