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겨울왕국〉이 나오기 전까지 우애 깊은 자매 이야기를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콩쥐에게는 팥쥐가, 신데렐라에게는 아나스타샤와 드리젤라가 있었으니까. 밤마다 서로의 곳간에 쌀가마니를 옮기는 의좋은 형제는 있는데 왜 자매애에 대한 상상력은 이토록 부재한 걸까.
성녀 마리아에게도 마르타라는 언니가 있었다. 성경 누가복음의 한 구절에 등장하는 두 자매 모습은 기존 통념과 다르지 않다. 시중을 들던 마르타가 예수 발치에 앉아 말씀을 듣는 마리아를 시기하자 예수가 “마리아는 이 일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며 마리아를 옹호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성경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진다. 마르타는 정말 동생을 질투했을까? 예수는 정말 마리아를 편애했을까? 소설 〈마르타의 일〉은 마르타와 마리아의 관계로 암시되는 수아와 경아 자매를 통해 성경에 기록되지 못했던 자매애를 복원하고 여성에게 쏟아졌던 무수한 차별의 흔적을 파헤친다.
이야기는 동생 경아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경아는 ‘착하고 예쁜 봉사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SNS 셀럽이었다. 동생이 남긴 SNS 기록에서 수아는 악성 댓글과 낙인, 데이트 폭력 그리고 페미사이드와 같은 여성혐오의 실체를 확인한다. 언니는 문득 깨닫는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마리아도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라고. 진범을 찾아 나선 언니는 동생의 삶을 다시 쓰는 단 한 사람이 되기로 한다. 그것이 ‘마르타의 일’이었다.
소설 〈체공녀 강주룡〉을 쓴 박서련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의 전작이 잡지 〈동광〉에 실린 한 장의 사진에서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삶을 복원해냈다면, 이번 작품은 누가복음 10장41절에서 청년 여성들의 자매애를 재해석했다. 이 책을 읽고 오명을 썼던 다른 자매들의 삶이 더욱 궁금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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