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켈 그림

매년 이맘때에는 왠지 운동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지난해에는 요가를 등록했다. 말 그대로 작심삼일이었는데, 잘 나가다가 괜히 사흘째 되던 날 척추와 자세에 좋다고 하여 플라잉 요가 수업에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분명히 ‘초급’ 수업이었으나 일단은 그 초급도 해먹을 잡고 올라갈 만한 근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내가 알 턱이 없었다. 내 몸은 골반에 해먹을 끼운 채 거꾸로 매달리는 것까지가 한계였다. 그렇게 45분간 매달려 있었다. 아주 긴 45분이었다.

그보다 1년 전에는 복싱을 등록했었다. 모두가 뛰고 있는 체육관 한가운데 나만 항상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한 시간 넘게 끊임없이 울리는 ‘땡’ 소리에 맞춰 2분 뛰기, 1분 쉬기를 반복하다 보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줄넘기, 스텝, 샌드백, 근력운동까지 이어지는 루틴을 거뜬하게 해내는 모습은 멋있었고 그만큼 멀었다. 관장님은 꾸준히 하다 보면 체력도 늘 것이라고 응원했다. 체력이 늘기도 전에 수명을 탕진할 것 같은 위기감에 눌려 한 달을 채 다니지 못했다.

철인 3종 경기 같은 ‘방식’은 왜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올해는 무턱대고 어떤 운동을 등록하고 도망치기에 앞서, 어쩌다 이렇게 체력도, 근력도, 좋아하는 운동도 없는 몸으로 30대를 맞이하게 되었나 생각하는 시간을 먼저 가졌다. 쉬는 시간에 한 번도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공을 패스해본 기억이 없기 때문일까? 어느새 스탠드 그늘이 우리들의 자리가 되어 없는 듯 녹아들었기 때문일까? 수행평가를 위한 체육을 배웠기 때문일까? 근육이 생기기보다는 마르기를 원한 적이 있기 때문에? 격투기를 하면 여자애 얼굴이 엉망이 된다며 차라리 발레를 배워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엄마가 물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택했기 때문일까? 한 세션에 10만원이 넘는 운동치료 PT를 받을 때에도 자꾸 트레이너가 몸이 예뻐지면 남자친구가 기뻐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일상이 바빠서 혹은 내가 그냥 게을러빠진 인간이라서?

돌이켜보면 운동을 기꺼워하지 않았다. 기꺼워할 만한 기억이 없다. 그런 상태에서 어른이 되어버렸고, 가난과 과로 사이에서 나를 돌보는 시간을 줄인 채 몇 년을 살았다. 어느 정도 시간적·경제적 여유와 여성에게 향하는 코르셋을 걷어낼 용기,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함이 생겼을 때는 이미 아주 기본적인 운동조차 어려워할 단계에 들어가 있었다. 조급한 마음에 좋다는 운동은 다 한 번쯤 시도해보았다. 필라테스, 요가, 헬스, 복싱, 댄스, 기체조…. 내가 했던 운동의 목록을 찬찬히 보다 보니 깨닫게 되었다. 운동마저도 ‘내가 무엇을 좋아할지’보다, 사회가 ‘너한테 어울리겠다’고 권할 법한 종목을 골라왔다는 걸 말이다. 왜 농구나 축구는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혹은 철인 3종 경기 같은 ‘방식’은 왜 생각해보지 못했을까?

결국은 내가 정말로 운동이라곤 하나도 좋아하지 않거나 영 젬병인 인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껏 운동을 좋아해본 적이 없으니 ‘아직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지 못한 것뿐’이라는 믿음만은 버리지 못하겠다. 이제 더 이상 데친 가지처럼 흐물거리고 싶지 않다. 건강한 몸을 갖고 싶다. 쉽게 숨차 하지 않으며 두 발로 단단히 걷고 싶다. ‘여자는 근육, 척추 수술은 1700만원’ 같은 말을 내게 쌓아가며 운동에 대한 의지를 다진다.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당장 죽지는 않겠지만 결국 어떤 운동이 내게 맞을지를 찾아나가는 과정은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책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찾아나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장벽으로 인해 가로막혀 있던 상상력이 넓어지며 내가 할 수 있는,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새롭게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 기쁠 따름이다.

기자명 박수현 (다큐멘터리 감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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