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은 그림

나는 친구가 졸업식장에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분명히 안 올 것이다. 올 리가 없다. 내가 그렇게 단정했던 이유는 단순했다. 3년 내내 단짝이었지만 나와 그의 운명은 대학 합격과 불합격으로 갈렸기 때문이다. 가장 친한 친구는 원하던 대학에 붙었고 자기는 떨어졌으니 당연히 졸업식에 참석할 맛이 안 날 것이다. 절친과 졸업 사진을 찍어야 지긋지긋했던 고등학교 수험 생활이 달콤한 척 마무리될 텐데. 난감했다.

졸업식이 끝나면 오지 않은 그에게 뭐라고 위로의 전화를 하지? 갓 스무 살이 된 내가 그런 속 깊은 생각만 한 건 물론 아니었다. 실은 누가 알면 창피할 정도로 합격의 환희에 흠뻑 젖어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드디어 졸업식. 나는 그와 그 가족들의 모습에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친구는 당연하다는 듯이 졸업식에 왔을 뿐 아니라 그 모습이 상상을 뛰어넘었다. 부드러운 미소로 졸업의 기쁨과 10대의 완성을 자축하는 그의 태도에 일단 나는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졸업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한 일가친척들, 그리고 그날을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온 부모가 그 뒤에 든든하게 버티고 있었다. 딸이 전교 일등으로 졸업하는 것도, 당당히 대학에 합격한 것도 아니지만 친구의 고교 졸업 자체가 그 가족에게는 충분히 경축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는 나에게 졸업 선물까지 내밀었다. 낯익은 물건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첫 미술 과제 때 그가 제출하고 ‘A+’를 받아 내가 경탄했던 한지 문갑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그걸 내 졸업식 선물로 주려 찜해뒀다고 했다.

친구는 재수해서 이듬해, 서울 최고의 미대에 단과대 수석으로 합격했다. 그에게는 별로 대단한 게 아니었는지 절친인 나조차 그 사실을 합격 발표일이 꽤 지나서 알게 되었다. 나는 그의 등짝을 세차게 후려갈겼던 거로 기억한다. “너 재수했는데 이번에도 떨어진 줄 알고 내가 얼마나 전전긍긍한 줄 알아? 근데 뭐? 수석?”

패자처럼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는 제자들

“시험은 원래 떨어지라고 있는 거야.” 시간이 흘러 몇 년 뒤 어느 날, 펑펑 우는 나에게 그가 말했다. 당시 나는 임용고사의 연이은 낙방에 좌절과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나 빼고 세상천지가 잘나가는 것같이 보여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누굴 만날 돈도 없었다. 그때 친구가 던진 그 한마디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지금 날 동정해?” 하면서 삐딱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라면 그 말을 할 자격이 충분히 있지 않은가. 시험은 원래 떨어지라고 있는 것이다. 짓궂은 역설로도 들리는 그 한마디가 심금을 울리고 뼈를 때렸다.

전쟁으로 비유되곤 하는 입시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마치 패자처럼 고등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는 제자들을 많이 본다. 그게 꼭 그들 자신 탓일까. 그리고 내 친구가 그 옛날 대학 낙방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게 그의 대인배적 기질 때문만이었을까. 나는 친구도 멋있었지만 실은 그를 넉넉히 축하하고 응원하던 가족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는 실패에 굴하지 않는 의지의 젊은이보다 먼저 졸업 그 자체를 축하해주고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어른이 필요하다. 일희일비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이제 막 성년이 된 어린 사람들보다 어른들이 먼저 실행하는 게 맞다.

기자명 정지은 (서울 신서고등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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