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두 성인이 합의하에 함께 살며 서로 돌보자고 약속할 때, 생활동반자법은 이들의 권리를 보장한다.

온라인 서점에서 진행한 2019년 ‘올해의 책’ 명단에 김하나·황선우 작가의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가 빠지지 않고 포함됐다. 제목 그대로 두 여자가 함께 사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다. 40대 여성인 저자들이 함께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구입하는 과정부터 둘이 살기 시작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를 실감나게 그린다. 이 책이 재밌는 에세이로서 읽는 맛 이상 흥행하는 것을 보며 혈연·결혼 이외의 방식으로 ‘함께 사는 삶’을 꿈꾸는 사회적 욕구가 특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흔히 ‘동거’는 이성애나 동성애 같은 성애적 관계의 커플이 함께 사는 것을 이야기하는 반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에서는 깊은 우정에 기반한 관계를 그린다는 점이 특이하다. 저자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하고, 더불어 경제적으로도 협력한다. 성인이 돈을 섞는다는 건 신뢰를 보여주는 일이다. 둘의 사이좋은 모습을 보면, 사람이 같이 살고, 또 국가가 이를 인정하기 위해 꼭 성적인 연결이 필요한지 묻게 된다.

이 책을 읽고 나도 친구와 같이 살기로 결심했다고 하자. 제일 큰 문제는 상황과 마음이 잘 맞는 친구를 찾는 일이다. 즐거운 수다 상대를 찾는 건 누구에게나 인생에서 중요한 과제다. 게다가 비슷한 경제 조건을 갖추고 비혼이기도 한 상대를 찾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같이 살 친구를 찾은 다음 마주할 문제를 생각해보자.

일단 집을 구해야 한다. 두 명이 살 만한 15~24평 아파트는 큰 안방과 작은방 한두 개로 구성되어 있다. 방의 크기가 불평등하다. 한 명은 큰방, 다른 한 명은 작은방에 살아야 한다. 애초에 부모가 쓰는 큰방, 자녀가 쓰는 작은방을 가정하고 지어진 탓이다.

원하는 집을 찾거나 친구랑 합의를 보았다고 가정하자. 이제 돈을 구하는 게 문제다. 친구와 같이 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공공임대, 공공 분양주택은 없다. 결혼하지 않고 친구랑 살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주거복지의 가장 큰 혜택에서 밀려난다. LH대학생전세 임대주택대출, 중소기업청년 전세자금대출, 버팀목 전세대출, 한국주택금융공사 행복전세대출 등 정책적 혜택이 있는 전세자금 대출도 받을 수 없다. 둘이 살기 적당한 집을 구하려면 둘 몫의 소득에 기반해 두 사람 명의의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결국 혼자 대출받아서는 자금도 부족하고, 아무래도 공평하게 부담하기도 어렵다.

이 외에도 차별은 다양한 곳에서 벌어진다. 일시적으로 실업 상태이면 가족 간에는 국민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등록해서 건강보험 비용 부담을 줄이거나 연말정산 때 부양가족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서로 부양하고 안전망 역할을 하더라도 국가는 이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사보험도 마찬가지다.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출산하거나 크게 아프면 이를 돌보기 위해 휴가와 휴직을 인정받는다. 물론 완전히 정착되지 않은 제도이기는 하지만 동거 관계는 아예 고려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입원 수속, 수술 결정 등 위급한 상황에서 의료 결정을 위해 멀리 사는 혈연 가족이 와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주민센터나 은행에서 간단한 심부름을 대신해주려 해도 둘의 관계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가정폭력 가해자도 가족관계가 청산되지 않으면 등초본을 발급해 다른 가족의 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데, 동거인의 경우 아무리 가까워도 안 된다.

생활동반자법이 필요한 이유

법적인 보호가 없으니 가정폭력에 대해서도 보호받지 못한다. 법적으로 묶인 사이도 아닌데 싫으면 안 살면 되는 것 아니냐고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폭력 피해는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어렵게 만들어 사람을 무력하게 한다. 재산의 대부분이 얽혀 있는 주거를 옮기는 일 역시 단순하지 않다. 특히 동거 가구의 다수가 저소득층인 현실을 감안할 때, ‘싫으면 갈라서라’는 해결책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별을 통보하면 정신적·물리적 폭력 등을 저지르는 ‘이별 범죄’의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친구와 함께 살고 싶은 게 꼭 결혼을 거부하는 청년층만의 마음은 아니다. 폭증하는 1인 가구의 다수는 노인층이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사별, 이혼 등으로 결혼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재혼은 심리적 장벽에다 신분관계, 그에 따른 상속관계의 변동이 부담스럽다. 그보다는 이성이든 동성이든 마음 맞는 친구랑 사는 게 낫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중노년층에서는 홀로 된 노후가 이미 당면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 생활을 위해서도 ‘누구와 살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시설에서 오래 거주한 장애인들은 기존 혈연가족과 관계가 단절된 경우가 허다하다. 이 경우 시설에서 수십 년을 함께 산 친구가 훨씬 ‘가족’에 가깝지만 법적으로는 남남이다. 탈시설을 결심하는 장애인들은 시설에서 함께 생활한 친구에게 의지하며 새로운 자립 생활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들은 서로에게 자립 생활의 용기가 된다.

장애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립 생활의 방식이 다양할수록 자립을 결심하기가 더 쉬워진다. 장애인들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 권리라는 큰 틀 안에서 혈연·혼인에 대한 권리뿐 아니라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권리도 더불어 논의되어야 한다. 두 권리는 순차적인 것이 아니라 큰 틀에서 함께 이뤄나갈 수 있는 것이다.

혼자는 힘들다.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은 이유는 다양하다. 정서적 충만, 경제적 안정, 장애 활동보조 등 이성애적 사랑에 비해 작은 이유라고 볼 수는 없다. 어떤 이유로 같이 살고 싶은지는 개인적·사회적 이유로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가 ‘결혼’이라는 제도에 너무 익숙해서 그렇지, 사실 어떤 이유로 같이 살고 싶은지를 국가가 굳이 따져 묻는다는 것이 더 어색한 일일 수도 있다.

심지어 남녀가 함께 살더라도 결혼식을 올리거나 혼인신고를 하는 일이 각각의 옵션에 불과해졌다. 혼인신고가 필수라던 사회적 합의가 무너지고 나면 그 무겁고 무서운 무게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나의 수십 년을 결정할 수 있는지’가 의문스럽고 새삼스러워진다.

아무런 법적 권리가 없는 동거, 그리고 높은 장벽의 혼인. 그저 이 두 가지 선택지면 충분할까? 점점 늘어나는 법 밖의 가족들을 보며, 결혼하지 않는 세태를 안타까워하고 훈계하면 족할까? 동거 커플의 대부분은 혼인 말고는 함께 살기에 적절한 방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더 가볍고 유연하면서, 개인의 권리를 공평하게 챙길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말이다.

이미 같이 살고 있거나 혹은 같이 살려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을 법적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더 약한 사람들이 피해를 본다. 두 성인이 합의하에 함께 살며 서로 돌보자고 약속할 때, 생활동반자법은 이들의 권리를 보장한다. 생활동반자법은 가장 약한 고리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법이다.

 

〈외롭지 않을 권리 -혼자도 결혼도 아닌 생활동반자〉
황두영 지음
시사IN북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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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황두영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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