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한다. “밥 먹었냐” “언제 밥 한번 먹자” “밥은 잘 먹고 다니니” “나중에 밥 한번 살게”가 한국인의 흔한 인사말이라고도 한다. 세계에서 우리만큼 밥을 중요시하는 나라가 없다고들 말한다.

과연 그럴까. 잘 먹여야 하는 대상으로 누구나 마땅히 인정하는 어린아이들의 밥상을 들여다보면, 물음표가 생긴다. 요즘 아이들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먹는지를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밥 중시 문화는 빈껍데기 인사말로만 남았다.

배고픈 결식아동은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더부룩한 ‘흙밥’ 아동이 사회 곳곳에 숨어 있다. 기초수급 가정 아이는 급식카드를, 서울 대치동 키즈는 엄마 카드를 손에 쥐고 똑같이 고만고만한 선택지 사이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사람도, 아이들이 밥을 먹을 공간도,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는 시간도 모두 턱없이 모자란다. 무엇보다 부족한 것은 아이들 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이다. 어른들의 무관심 탓에 밥에 관한 한 아이들의 삶은 완벽하게 계급 평준화가 이루어졌다. 잘살거나 못살거나 요즘 아이들은 똑같이 너무 못 먹고 산다. 못 먹으니 제대로 못 자고 제대로 못 큰다.

아동 흙밥이 사라져야 청년 흙밥도 노인 흙밥도 사라진다. 내 밥상의 소중함을 알고 자란 아이가 남의 밥상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 식사란 ‘필요한 열량을 채우는 행위’가 아닌 ‘나와 타인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여유’로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을 잘 먹이자는, 아무도 딴죽 걸지 않을 세상 당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 까닭은,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아동 흙밥 보고서’는 그 현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아이들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시사IN 신선영

어스름이 깔리는 저녁 시간, 골목 사이사이로 음식 냄새가 퍼졌다. 아이들이 식탁 앞에 모여들었다. 메뉴는 미트볼 스파게티와 크림수프와 모닝빵. 스파게티 소스는 신선한 토마토와 파르메산 치즈를 갈아 직접 만들었다. 아이들은 조잘조잘 떠들며 저녁밥을 먹고 놀이터로 뛰어나갔다. 가위바위보, 묵찌빠 게임, 술래잡기, 얼음땡을 하느라 숨차게 뛰는 아이들의 입김이 놀이터 옆 조리실에서 피어오르는 김과 한데 섞였다. 아이들의 저녁식사 장소는 집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19일 경기도 군포시 산본1동 노루목공원에 맘마미아 푸드트럭 ‘밥 먹고 놀자’가 차려졌다. 어디선가 하나둘씩 나타난 아이들 42명이 배부르게 밥을 먹고 함께 놀았다.

맘마미아 푸드트럭 사업은 군포시주몽종합사회복지관과 마을기업 좋은터, 헝겊원숭이운동본부가 운영하는 돌봄 사각지대 아동·청소년 지원사업이다. 지난해 10월부터 매주 화요일 산본1동 노루목공원과 당동 교전어린이공원을 번갈아 찾는다. 지역 내 주점 사장님이 가게 조리실을 내어주고 자원봉사자들이 요리 실력을 재능 기부했다. 금방 만든 음식을 솥째 공원으로 들고 가 따뜻하게 데우며 밥 먹으러 오는 아이들에게 떠준다. 어린이와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와서 먹을 수 있다.

ⓒ시사IN 신선영맘마미아 푸드트럭을 찾은 아이들은 밥을 먹고 ‘공주쌤’ 홍슬희씨(오른쪽) 등 자원봉사자들과 어울린다.

배고픈 아이들 위해 ‘VIP 카드’ 발급

두 지역을 선정한 이유는 ‘거점이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었다. 대개 지역아동센터, 학교 복지실, 청소년센터 등 지역의 복지 거점을 통해 밥을 못 먹고 다니는 아이들이 파악된다. 두 지역은 그런 거점이 없거나 턱없이 부족한 곳이었다. 분명 아이들이 많이 살고 있을 것 같은데, 잘 챙겨 먹지 못하는 아이도 있을 것 같은데 도무지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일종의 감만 가지고 무작정 푸드트럭을 몰고 갔다. 천막을 치고 식탁을 놓고 ‘얘들아 밥 먹자’ 현수막을 걸어놓으니 거짓말처럼 아이들이 찾아왔다. 9명, 26명, 46명, 67명…. 매주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지난해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 날 저녁 교전어린이공원 푸드트럭에 밥 먹으러 온 아이들 수는 87명을 기록했다.

“요즘 밥 못 먹고 사는 애가 어딨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찾아보지 않아서, 혹은 찾아가지 않아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최대한 가까이 찾아가 밥 짓는 냄새를 풍기면 배고픈 아이들이 배죽 얼굴을 내민다. 어느 날은 초등학교 2학년 언니가 여섯 살배기 동생 손을 꼭 붙잡고 맘마미아 푸드트럭에 찾아왔다.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가 밤 10시 넘어 퇴근할 때까지 집에서 기다린다는 자매는 챙겨준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얘는 집에 먹을 게 없어요. 뭐라도 좀 먹여주세요”라며 같은 학교 친구를 데리고 온 중학생도 있었다. 부모가 이혼한 뒤 밥을 잘 못 먹고 있다는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은 밥을 먹다가 고개를 들어 푸드트럭 삼촌·이모들에게 물었다 “더 자주 오시면 안 돼요?”

서울시 상수동에서 ‘진짜 파스타’라는 식당을 운영하는 오인태씨는 자신의 가게를 배고픈 아이들의 밥 거점으로 만들었다. 20대 초·중반, 고시원에서 겨우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청년 흙밥’ 시절을 보낸 오씨는 결식아동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늘 마음이 아렸다. “성인도 밥을 제대로 못 먹으면 비참하고 외로운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처음에는 구청에 꿈나무카드(서울시 결식아동급식지원 카드) 가맹점으로 등록하려 했다. 절차를 알아보다가 점점 화가 났다. 전용 단말기를 설치하고 매출을 따로 정산받아야 하는 등 자영업자 처지에서도 귀찮은 일이 많고 쓰는 아이들로서도 이런저런 제약이 많았다. 오산시 공무원이 결식아동 카드를 허위로 등록해 1억4000만원을 횡령했다는 뉴스를 보고는 ‘뚜껑’이 열렸다.

ⓒ시사IN 신선영‘진짜 파스타’는 결식아동을 위한 VIP 멤버십 카드를 만들었다. 진짜 파스타의 무료 식사 제공은 ‘선한 영향력’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그래서 오씨는 꿈나무카드를 안 받기로 했다. 대신 배고픈 아이들을 위한 VIP 카드를 만들었다. ‘VIP 손님’들에게 써서 SNS에서 퍼뜨린 편지 내용은 이랬다. “얘들아 아저씨가 어떻게 알려야 너희들이 상처받지 않고 편하게 올 수 있을까? 생각을 해봤는데 잘 모르겠더라, 미안하다. (…) 나의 실수로 너희들의 감정이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얘들아 그냥 삼촌, 이모가 밥 한 끼 차려준다 생각하고 가볍게 와서 밥 먹자.” VIP 규칙도 만들었다. ‘들어올 때 눈치 보면 혼난다!!’ ‘금액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거 얘기해줘. 눈치 보면 혼난다!!’ ‘매일 매일 와도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고 웃으며 자주 보자.’

VIP 손님들이 하나둘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쭈뼛쭈뼛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메뉴판을 보고 한참을 고르다가 제일 싼 메뉴를, 인원수보다 적게 주문했다. 오씨와 직원들은 양을 푸짐히 늘리고 메뉴를 하나 더 만들어 “실수로 만들었는데 먹어줄래?”라며 갖다주었다. 맛있게 먹고 떠난 아이들이 두 번 세 번 찾아올 때마다 점점 어깨가 펴지는 게 보였다. “기운 없이 왔다가 기운 있게 나가는” 아이들을 보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북받쳤다. “애들이 왜 먹는 걸로 눈치를 봐야 하죠?”

SNS에서 소문이 나자 전국의 사장님들로부터 하나둘 연락이 왔다. 대전의 한 호프집 사장은 아이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은데 주점이라 급식카드 가맹점 등록이 안 되어 궁리하던 차였다. 어떤 사장은 “‘진짜 파스타’처럼 아이들을 먹이고 싶은데 ‘유명해져 매출 올리려고 그런다’며 인터넷에서 욕을 먹을까 봐 무섭다”라고 걱정하고 있었다. 각자 고민하던 ‘선한’ 사장들을 오씨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었다. 지난해 여름 청와대에서 김정숙 여사가 보낸 감사 편지로 유명해진 ‘선한 영향력’ 프로젝트가 그렇게 시작됐다.

ⓒ시사IN 신선영진짜 파스타에서 제작한‘선한 영향력’ 스티커.지난해 12월까지 400개가게가 이 프로젝트에참여했다.

오씨는 “전국 곳곳에 우리 같은 가게들이 많아지면 배고픈 아이가 굳이 파스타 한 그릇 먹으러 2시간 걸려서 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선한 영향력은 널리 퍼져 지난해 12월까지 전국 400개 가게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사장님들이 첫 ‘VIP 손님’이 왔다 간 후에 꼭 한 번씩 울면서 전화를 준다. 아이들 모습이 너무 마음에 밟힌다며, 이런 일에 동참하게 해줘서 고맙다며 운다.”

오씨는 올해 또 다른 계획을 세웠다. 선한 영향력 네트워크를 사단법인 형태로 만들고 뜻있는 사장들에게 조금씩 출자를 받아 배고픈 아이들을 위한 프랜차이즈 방식의 식당을 만들려고 한다. ‘선한 영향력’ 스티커가 붙은 지금의 식당들보다 아이들이 더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형태를 모색 중이다. 일반 손님들을 통해 난 수익은 모두 다음 2호점, 3호점 개설에 쓰는 식으로 전국에 아이들의 ‘밥 거점’을 확산시키는 게 장기적 목표이다.

2013년 시민건강연구소와 천안 지역 풀뿌리 단체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아동건강네트워크는 아이들의 아침밥 거점 만들기를 시도했다. 당시 천안시 한 초등학교에서 실시한 아동건강행태조사 결과 10명 중 1명꼴로 일주일 중 4일 이상 아침밥을 먹지 않는다고 답했다. 저소득 가정 아이가 일반 가정 아이에 비해 5배 이상 더 아침을 굶었다. 학교에서 먹는 점심 급식 한 끼가 하루 식사의 전부라는 아이도 33명이나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였다. 아동건강네트워크가 어린이 건강권 사업의 첫 순서로 ‘아침밥 지원’을 택한 이유였다.

“밥 먹일 공간 구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

사업은 난항을 겪었다. 후원과 기부 등으로 예산은 마련됐는데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먹일 공간이 없었다. 애초 구상은 지역 초등학교의 급식실을 이용하는 보편 서비스였다. 선별적으로 가난한 아이들을 골라서 먹이면 낙인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지불능력이 되는 아이들은 비용을 내고 먹고, 비용을 못 낼 상황인 아이들은 지역에서 모금을 통해 후원하려 했다. 그런데 학교가 여러 행정상의 이유를 들며 반대했다. 가정의 책임 영역인 아침밥을 왜 학교에서 제공해야 하는지 강하게 따져 묻는 교사도 있었다. 결국 해를 넘기며 사업이 지연되다가 2014년 4월부터 2개 지역아동센터에서 시행하는 정도로 아침밥 지원 규모가 축소됐다.

ⓒ시사IN 신선영선한 영향력 프로젝트로 VIP가 된 한 학생의 편지가 ‘진짜 파스타’ 벽에 붙어 있다.

작은 규모라도 밥 거점이 생기니 몇몇 아이들의 삶이 조금씩 변화했다. 아침을 안 먹는 게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던 아이들이 많았다. 유일한 양육자인 할머니가 ‘뭐라도 사먹고 가라’며 준 돈으로 아침부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등교하는 아이도 있었다. 식품영양학과 교수, 생협 관계자 등이 머리를 맞대 만든 식단으로 아침밥을 챙겨 먹고 나서 평소 저녁 식사 시간에 편식과 식탐이 심하던 한 아이는 스스로 식사량을 조절하고 골고루 먹어보려는 모습을 보였다.

밥 먹는 자리에는 음식만 있지 않다. 아이들의 옷매무새를 살펴주고 머리를 빗겨주고 “학교 잘 다녀오렴” 인사해주는 돌봄이 밥 사이에 자연스레 끼어드니 학교 가는 아이들 얼굴이 더 밝고 활기차졌다. 사업에 참여한 전경자 순천향대 간호학과 교수는 “아침밥은 방과 후 돌봄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돌봄의 빈 공간을 찾아낸다. 아이들이 하루를 든든하게, 자신 있게 시작할 수 있도록 지지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밥을 매개로 한 아동의 돌봄 거점이 우리 사회에 너무 부족하다. 김보민 헝겊원숭이운동본부 대표는 말했다. “어르신들을 모시면 일단 밥부터 주고 시작하지 않나. 아이들에게는 왜 그렇게 못하나? 경로당 2층 등 유휴 공간이 그렇게 많아도 아이들을 먹이고 놀릴 공간으로 내어달라는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공간만 있으면 나머지 운영비는 여러 후원사업 예산을 따서라도 만들 수 있는데 아이들 밥 먹일 공간을 구하는 일이 가장 힘들다.” 아이들의 ‘밥 거점’이 크고 으리으리할 필요도 없다. “거기에 누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진 어른이 있느냐를 보고 아이들은 와서 마음을 열고 밥을 먹는다.”

맘마미아 푸드트럭에 세 번째 찾아온 혜진이(7)는 올 때마다 ‘공주쌤’ 홍슬희씨를 찾는다. 찾아는 오되 새침하게 앉아서 잘 먹지도 않던 혜진이는 겨울 내내 꾸준히 아이들 곁에 와서 살갑게 웃고 꼭 안아주는 공주쌤에게 마음을 열었다. 공주쌤을 위해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 편지와 손거울 선물을 가져온 혜진이에게 “공주쌤이 왜 좋아?”라고 물었다. 혜진이는 말했다. “우리한테 밥을 주고 사랑해주니까요.” 아이들에게 밥은 사랑이고, 희망이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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