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한다. “밥 먹었냐” “언제 밥 한번 먹자” “밥은 잘 먹고 다니니” “나중에 밥 한번 살게”가 한국인의 흔한 인사말이라고도 한다. 세계에서 우리만큼 밥을 중요시하는 나라가 없다고들 말한다.

과연 그럴까. 잘 먹여야 하는 대상으로 누구나 마땅히 인정하는 어린아이들의 밥상을 들여다보면, 물음표가 생긴다. 요즘 아이들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먹는지를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밥 중시 문화는 빈껍데기 인사말로만 남았다.

배고픈 결식아동은 눈앞에서 사라졌지만 더부룩한 ‘흙밥’ 아동이 사회 곳곳에 숨어 있다. 기초수급 가정 아이는 급식카드를, 서울 대치동 키즈는 엄마 카드를 손에 쥐고 똑같이 고만고만한 선택지 사이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사람도, 아이들이 밥을 먹을 공간도, 마음 편히 식사할 수 있는 시간도 모두 턱없이 모자란다. 무엇보다 부족한 것은 아이들 밥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이다. 어른들의 무관심 탓에 밥에 관한 한 아이들의 삶은 완벽하게 계급 평준화가 이루어졌다. 잘살거나 못살거나 요즘 아이들은 똑같이 너무 못 먹고 산다. 못 먹으니 제대로 못 자고 제대로 못 큰다.

아동 흙밥이 사라져야 청년 흙밥도 노인 흙밥도 사라진다. 내 밥상의 소중함을 알고 자란 아이가 남의 밥상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아이들에게 식사란 ‘필요한 열량을 채우는 행위’가 아닌 ‘나와 타인의 몸과 마음을 돌보는 여유’로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을 잘 먹이자는, 아무도 딴죽 걸지 않을 세상 당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 까닭은, 현실이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아동 흙밥 보고서’는 그 현실을 알리기 위함이다. 기사에 등장하는 아이들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시사IN 조남진지난해 12월18일 서울 대치동 학원가 편의점에서 한 학생이 컵라면을 먹고 있다.

“오늘 뭐 먹었어?” 하고 묻자 열세 살 상진이는 말했다. “12시에 집에서 짜파게티 부숴 먹고 게임하다가 8시에 편의점에서 김치라면 사먹었어요.” 피자·치킨 간식을 거부하던 열 살 준성이는 밥버거 간식이 나오자 떨어진 밥풀까지 싹싹 긁어먹고 나서 멋쩍게 말했다. “요새 밥을 못 먹어서요.” 또래 친구들과 아침식사를 제공해주는 지역복지 프로그램에 참여한 열한 살 소미는 설문조사 종이에 적었다. “집에서 텔레비전 보며 ‘혼밥’ 할 때보다 덜 쓸쓸해서 좋아요.” 여섯 살 여동생 손을 꼭 잡은 아홉 살 지예는 자랑했다. “저 다섯 살 때부터 밥했어요. 쌀 씻고 물 맞춰서 넣을 줄 알아요.”

우리 사회는 밥 굶는 아이가 눈에 보일 때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외환위기 사태가 진행되던 1990년대 후반 학교 운동장에서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아이들이 대거 발견된 것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결식아동 지원사업인 ‘아동급식지원사업’을 시작한 배경이었다. 이후 지방자치단체로 이양됐던 아동급식지원사업에 한시적으로나마 국비가 지원된 때도 ‘수돗물 점심’ 아이들이 다시 눈에 띈 2008년 금융위기 이후였다.

2018년 12월 기준 35만7127명의 아이들이 하루 한 끼 혹은 두 끼씩 나라에서 밥을 지원받는다(〈그림 1〉 참조). 아무리 매정한 자유시장주의자라도 이 복지지출에는 크게 딴죽을 걸지 않는다. 결식아동 지원만큼 비정치적이고 보편타당한 후원 행위도 드물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결식아동’을 입력해보자. 숱한 국가기관, 기업, 시민단체, 정치인, 연예인, 유튜브 스타, 인스타그램 유명인들이 결식아동을 돕기 위해 돈을 내고 바자회를 열고 김치를 담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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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따뜻한 손길은 ‘보이는 데’까지다. 수돗물로 배를 채우는 아이들이 사라지자 정부는 아동급식지원사업 국비 지원을 끊었다. 초·중·고교 무상급식 덕분에 학기중 점심에 배곯는 아이는 없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학기중 아침·저녁, 주말·방학 중 밥을 제대로 챙겨 먹는 아이를 발견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기초생활수급, 차상위계층 등의 ‘국가 공인’ 결식 우려 아동 인정 기준을 통과하지 않은 아동에겐 좀처럼 도움의 손길이 닿지 않는다.

‘21세기 아동 흙밥(흙수저의 밥)’은 더 이상 결식(缺食)의 형태로 잘 나타나지 않는다. 상진이, 준성이, 소미, 지예처럼 오히려 늘 무언가를 먹는다. 질 낮은 음식을, 혼자, 불규칙하게, 허겁지겁 입안에 욱여넣을지라도 일단은 먹기 때문에 결식 지원의 사각지대에 남는 아이들이 많다. 아동 흙밥의 양태는 다양하고 복잡하다. 어떤 아이는 굶어서 흙밥이지만, 어떤 아이는 너무 먹어서 흙밥이다. 어느 아이는 너무 가난해서 흙밥을 먹지만, 어느 아이는 적당히 버는 부모 밑에서도 흙밥을 먹는다. 늘 배고픈 흙밥 아동도 있지만, 늘 더부룩한 흙밥 아동도 있다. 기존 ‘결식 렌즈’로는 아이들의 식사권과 건강권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굶는 아이들’에 더해 ‘먹는 아이들’도 자세히 바라봐야 한다. ‘누가 못 먹고 있는가?’에서 ‘어떤 아이들이 어떤 밥을 어떻게 먹고 있는가?’로 질문을 바꾸어 살펴보면, 형편없는 아동 흙밥이 사회 도처에 널려 있다.

■ 굶지 않지만 고기·생선·과일은 못 먹는다

“우리는 끼니를 거를 정도의 상황은 아니에요(현수(8)·민수(6) 어머니).” “실제 밥을 못 먹이지는 않지만…(정희(17)·정수(16)·선희(13)·란희(11) 아버지).” “우리 같은 사람이 어떻게 잘사는 사람들과 똑같이 먹으면서 하고 그래요? 우리랑 그 사람들은 다르지(은미(9)·성빈(2) 어머니).” 자녀의 결식 경험을 묻는 질문에 대한 부모들의 첫마디였다(정정호, 〈아동이 있는 빈곤 가구의 식품 미보장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 2012). 모두 한 달 생활비가 평균 80만원, 식비는 30만원 남짓한 가정이다.

“굶기지는 않았다”라는 부모들에게 ‘어떻게’ 먹이는지를 물어보자 결핍이 드러났다. 아이들은 먹되, 단조롭게 배를 채웠다. “단백질을 고기보다는 두부나 이런 거에 많이 의존하게 되고, 대체하는 거 있잖아요. 우리 돈으로 삼겹살 1년 내내 한 번도 안 사요. 아이들도 그런 줄 알고.” “김치찌개를 끓이더라도, 다른 걸 썰어 넣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다른 걸 못 넣으니까… 어쩌다 김치 하나에, 시금치나물 하나 해주니까 왜 이렇게 반찬이 많으냐고 하더라고요.” “딸기가 한 바구니에 5000원 하는데 몇 번 손이 가더라고요. 에휴 이걸로 반찬 사면 몇 끼를 먹는데…. 그냥 왔어요.”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한국보건사회연구원)는 아동의 상대적 박탈감을 측정할 수 있는 ‘박탈지수’ 항목을 처음 추가했다. 기존 가구소득을 바탕으로 한 아동빈곤율 수치만으로는 계층에 따라 아동 투자 격차가 큰 우리나라에서 아동의 결핍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의식주, 의료, 문화생활 등 9개 영역 31개 문항을 제시하고 ‘네, 아니요’를 물었다. 이를테면 이런 문항들이다.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고기나 생선을 사먹는다(식생활)’ ‘매우 추운 날 입을 수 있는 외투(코트, 파카, 털이나 가죽옷 등)를 두 벌 정도는 가지고 있다(의생활)’ ‘전용 수세식의 화장실 및 온수 목욕시설을 갖추고 있다(주거환경)’ 등등.

조사 결과 가구소득에 따라 전체적으로 아동의 박탈지수가 차이 났지만 가장 큰 격차를 보인 영역은 의식주 가운데에서도 ‘식(食)’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고기나 생선을 사먹지 못하는 아동의 비율은 전체 평균 2.87%인 데 비해 기초수급 빈곤 아동가구는 25.55%에 이르렀다(〈그림 2〉).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신선한 과일을 먹지 못하는 아동 비율도 마찬가지다. 전체 평균은 3.24%인데 빈곤 아동은 32.39%였다. ‘식사의 양을 줄이거나 거른 적이 있다’는 항목도 격차(3.67~9.6%)가 나지만 식단의 구성에서 훨씬 더 큰 차이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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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섭취량 통계에서도 이런 사실이 확인된다. 12~18세 아동의 소득수준별 주당 채소류 섭취량을 살펴보면 3~5분위(상위 60%)에 비해 1~2분위(하위 40%) 아동이 눈에 띄게 낮게 나타난다(〈그림 3〉). 아이들의 흙밥은 단순히 먹고 안 먹고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무엇을 먹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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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급식카드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고기, 생선, 채소, 과일 대신 가난한 아이들은 무얼 먹고 살까? 기초생활수급, 차상위계층 등 빈곤 가정 아동들에게 지급되는 아동급식카드 사용 데이터로 추측이 가능하다. 꿈나무카드(서울), 컬러풀드림카드(대구), 푸르미카드(인천), 행복드림카드(부산) 등 지방자치단체별로 그 명칭과 하루 한도액 등이 다양하지만, 아동급식카드는 대부분 아동이 속한 지역 내 음식점에서 하루 한두 끼니를 사먹을 수 있게 도와준다. 기존 종이 식권을 대체한 방안이다.

이 카드를 아이들은 어디에서 긁을까? 편의점이 8할이다. 서울 영등포구, 서초구, 송파구, 종로구, 중구는 가맹점 중 편의점 비율이 90%를 넘는다(〈그림 4〉 〈그림 5〉). 2018년 3월 기준 대구시 아동급식카드 편의점 이용률(거래 건수)도 70%에 이른다. 해가 지날수록 편의점 이용률이 올라간다(〈그림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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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뭘 사서 먹을까? 아이들은 사 ‘먹기’보다 사 ‘마신다’(〈그림 7〉 〈그림 8〉). 우유·요구르트 같은 음료 종류가 가장 많은 비중(43.5%)을 차지하고, 도시락·레토르트 식품 등 겨우 식사라 불릴 수 있는 품목은 36.6%에 그친다. 치즈·어묵·핫바·가공란·빵·주먹밥 등도 아이들의 배를 자주 채워준다. 라면·탄산음료·과자 등은 아동급식카드로 편의점 구매가 제한된 시기의 통계여서 그나마 건강한 식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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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외 가맹점을 다변화하면 아이들의 식단이 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담당 공무원들도 ‘가맹점 확대’를 아동급식카드의 가장 시급한 개선 과제로 꼽지만(〈그림 9〉) 현실에서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일단 1식 지원 단가 4000~5000원(지자체별 상이)으로 한 끼 식사를 내어줄 수 있는 식당이 많지 않다. 절차도 번거롭다. 전용 카드단말기를 설치해야 하고(편의점은 범용인 경우가 많다), 매달 시·군·구청에 서류를 보내 매출액을 정산받아야 한다. 아이들이 급식카드를 꺼내면 구석에 처박아둔 전용 단말기를 꺼내 전원부터 켜고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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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도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다. 편의점을 선호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일반 식당에 비해 “메뉴가 다양(19%)”하고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어서(46%)”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눈치가 보이지 않고(13%)” “친구에게 보여주기 싫어서(4%)”이기도 하단다(〈그림 10〉).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먹은 다음 티 나는 결제를 처리해야 하는 식당보다 얼른 음식을 사서 집에 갖고 들어가 먹을 수 있는 편의점 이용이 훨씬 마음 편한 것이다. 그렇게 흙밥 먹는 아이들은 자꾸 안 보이는 곳으로 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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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이 아니라 사람이 없다

아동급식지원을 받는 아이 부모에게 ‘자녀가 밥을 잘 챙겨 먹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다. “밥이나 반찬이 없어서(20.8%)”는 부차적인 이유다. 많은 아이들이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39.1%)”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다(〈그림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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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결식률 통계에서도 돌봄 부재에 따른 밥의 격차가 보인다. 9~17세 아이들의 아침 결식률은 가구 유형·맞벌이 여부에 따라 갈린다(〈그림 12〉). 양(兩)부모보다 한부모·조손 가정의 아이, 외벌이보다 맞벌이 가구의 아이들이 더 많이 아침을 굶는다. 특히 한부모·조손 가정 아이들은 “밥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아침을 건너뛰었다는 비율(17.7%)이 양부모 가구 아이(2.1%)에 비해 월등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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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가 다 있어도, 엄마 아빠 대신 ‘파출부 이모’가 있어도 ‘밥 챙겨주는’ 엄마·아빠·이모가 아니면 결국 아이는 못 먹는다. 성규(7)는 엄마 아빠가 있지만 게임중독에 빠진 부모가 PC방에서 살다시피 하는 탓에 제대로 된 식사를 못한다. 민아(12)와 진아(10)는 엄마가 없지만 아빠가 부자다. 그런데 이틀에 한 번씩 들어온다. 가사 도우미가 들르지만 집 청소만 하고 나간다. 쌀도 없는 집에서 자매는 과자·피자·햄버거로 배를 채운다. 지역 사회복지사가 우연히 ‘발견’한 성규나 민아 자매는 국가 공인 결식아동이 아니다.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한 국가의 복지망은 빈곤형 결식아동만 찾아낼 뿐 이렇게 다양한 사연의 돌봄 부재형 결식아동까지 잡아내진 못한다.

그걸 찾아내는 것도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사람’은 가정뿐 아니라 공공영역에서도 턱없이 모자란다. 지방자치단체 아동급식 담당 공무원에게 ‘아동급식 지원대상 발견의 어려운 점’을 물었을 때 69.5%가 “인력 부족”을 들었다(〈그림 13〉). 한 공무원은 “공무원 한 사람이 대상자 700~1000명을 관리해야 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시간이 없으니 방문조사(36.4%)보다 전화조사(38.8%)로 결식아동을 찾아내고, 그러다 보니 담당자 절반이 “우리 지역 내 모든 결식아동이 급식 지원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하지 못한다(〈그림 14〉).

ⓒ시사IN 변진경·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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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아동센터에서도 늘 호소하는 게 급식 운영 인력 부족이다(〈그림 15〉). 지역아동센터에서는 결식아동을 포함한 지역 내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평일 석식, 공휴일 중·석식 등을 제공한다. 지역아동센터에 등록된 아이들은 전자급식카드를 쓰는 대신 센터에서 조리된 음식을 먹는다. 이때 센터에 지급되는 식비는 편의점·식당에 적용되는 1식 단가보다 500~2000원가량 낮다. 재료를 사서 음식을 만들고 차리는 인건비도 따로 없다. 많은 센터에서 기존 직원이 급식 업무를 겸하거나 자원봉사자들에게 재료 준비, 조리, 배식을 의존한다. 지금 아이들에게 진짜 부족한 것은 ‘밥’이 아닌 ‘밥 차려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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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흙밥의 대물림

아동 흙밥은 단순히 식사 메뉴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밥을 먹는 시간, 밥을 먹는 환경, 밥을 먹는 태도, 밥을 바라보는 관점까지도 아동 흙밥의 구성 요소가 될 수 있다. 밥을 먹는 환경·태도·관점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 대물림된다는 점이다.

서울시 급식지원카드인 꿈나무카드 사용 데이터를 분석한 경희대 산학협력단 SK청년비상 빅리더팀(지도교수 전종식)은 꿈나무카드 결제 시간대를 분석해보았다. ‘제시간에 먹지 않는’ 아이들의 규모를 가늠해보기 위해서다. 아침 7~11시, 점심 11~15시, 저녁 5~9시로 식사 시간대를 꽤 넓게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시간대를 벗어난 시간에 음식을 구매한 비율이 전체 결제의 50%를 넘기는 아이가 무려 대상자의 16.5%, 2023명이나 되었다. 이 가운데 116명은 주로 새벽 시간대(0~6시)에 편의점 음식을 사먹었다. 분석팀은 “아동청소년기는 식습관 형성이 결정되는 시기로 성인이 되었을 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식습관 정립 교육 등 대책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사회복지사나 교사들은 식습관이 망가진 아이들을 종종 본다. 경기도 군포 지역에서 돌봄 공동체 ‘헝겊원숭이운동본부’를 운영하는 김보민 대표는 아버지와 살던 창배(12)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밤늦게 퇴근해 집에 올 때까지 혼자 기다리며 식사하던 습관이 밴 아이였다. “뭐든지 다 말고 비벼서 허겁지겁 삼켰어요. 쩝쩝 소리를 내고 흘리고…. 누군가와 함께 밥 먹으며 식습관을 배우는 건데 기회가 없었던 거죠. ‘비빔 금지, 입에 넣고 다섯 번 이상 씹기’ 이런 규칙을 만들어서 식사 지도를 했어요.”

초등학교 교사 이준수씨는 학교 급식 시간에 ‘잔반 줄이기 운동’을 벌이면서 가정환경 간 식습관의 격차를 실감했다. 2주간 반찬을 남기지 않는 학생에게 스티커를 주고 스티커를 많이 모으면 상품을 주는 캠페인이었다. 이 교사의 반에서 상품을 받은 아이 9명은 모두 부모와 거의 매일 저녁 식사를 하는 집 아이들이었다. 부모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아이일수록 편식이 심하고 반찬을 많이 남겼다. 이 교사는 “체감상 돌봄이 부족한 아이일수록 비만율도 높은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실제 통계에서 뒷받침된다. 소득분위별 2~18세 소아청소년의 비만율을 살펴보면, 가구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하위 20%)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다(〈그림 16〉). 한부모·조손 가정 아동의 비만율도 양부모 가정 아동보다 높다(〈그림 17〉). 가난하고 돌봄이 적을수록 뚱뚱한 것이다.

ⓒ시사IN 변진경·최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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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을 들고 취약 아동의 가정을 방문한 사회복지사들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상황을 종종 겪는다. 쌀을 들고 갔는데 집에 밥솥이 없다거나 햇반을 들고 갔는데 집에 전자레인지가 없는 식이다. 김장 나눔 행사로 받은 김치 한 통이 모텔용 소형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아 베란다에서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쉬어가고 있는 광경도 자주 본다.

아동 구호단체 기아대책의 심희영 간사는 지난해 도시락 김 세트 등 밑반찬거리를 사들고 아버지와 함께 사는 건희(8)네 집을 방문했다. 온 집이 쓰레기 더미로 덮이고, 1구짜리 전기쿡탑과 냄비 하나가 부엌세간의 전부이던 환경에서 건희는 여러 차례 장염에 걸려 입원을 반복했다.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게 돼 이사를 축하하며 반찬을 건넸다. 그날 저녁 “맛있게 잘 드셨냐”라고 전화했더니 건희 아버지는 대답했다. “반찬들이 너무 아까워서 그냥 간장에 밥 비벼 먹었어요.”

건희 아버지는 가스레인지 불을 켜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다. 고아원에서 자라 노숙과 여인숙 생활을 반복하며 살아온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제대로 된 집밥을 차리고 아이를 먹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몰랐다. 초등학생 셋을 키우는 다른 가정의 부모도 비슷했다. 전화해서 물어보면 어김없이 “쌀 다 떨어졌어요” 해서 부랴부랴 쌀과 반찬을 구해다주면 “휴, 다행이에요. 이제야 먹일 수 있겠네요”라고 안도하는 이 ‘대책 없는’ 부모는 수입이 생기면 빚을 갚는 데 다 써버렸다.

심 간사는 말했다. “가난을 경험하며 자란 부모들이 또 현실이 가난하면 가장 후순위로 미루는 게 바로 식사더라. 아이들을 제대로 먹이는 게 1순위가 아니라 빚 갚고 공과금 내고 남는 게 있으면 먹이고 아니면 못 먹이는 식이다. 옆에서 보면 ‘이런 식으로 또 가난이 대물림되는구나, 대물림될 수밖에 없구나’ 싶다.” 기아대책 박현주 간사는 “아이뿐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어른들에게도 올바른 식습관과 식생활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 공간과 시간으로 쪼개지는 아이들의 밥상

정부는 뭘 하고 있을까? 아동복지법 제35조 ‘건강한 심신의 보존’ 조항은 아이들 밥에 관한 국가의 책임을 명시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아동의 건강 증진과 체력 향상을 위하여 급식 지원 등을 통한 결식 예방 및 영양개선에 관한 사항을 지원하여야 한다.” 그래서 정부는 2000년부터 아동급식지원사업을 시행 중이다. ‘보호자가 충분한 주식과 부식을 준비하기 어렵거나, 주·부식을 준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아동 스스로 식사를 차려 먹기 어려운(2019년도 보건복지부 결식아동 급식 업무 표준매뉴얼)’ 결식 우려 아동이 그 대상이다. 2018년 기준 35만7127명의 아이들이 이 정책의 지원을 받고 있다.

단, 이 아이들을 먹이는 건 중앙정부가 아니다. 2005년 정부는 아동급식지원 업무를 보건복지부에서 지자체로 이양했다. 결식 우려 아동을 찾아내고, 지원 범위와 방법을 결정하며, 가맹점과 도시락업체를 관리하고, 음식 위생을 점검하는 일을 모두 지자체가 한다. 각 시·군·구가 따로 아동급식위원회를 설치하고 지자체 조례에 따라 세부 내용을 결정한다. 보건복지부는 업무 표준 매뉴얼을 만들어 지자체에 내려보내고 몇 년에 한 번 우수 사례 시상식을 연다.

문제는 예산도 지자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중앙정부는 매뉴얼을 통해 권장 최저 단가만 정해준다. 현재 한 끼에 4000원이다. 그나마 2018년 3500원에서 500원 오른 금액이다. 보건복지부가 지자체에 하달한 업무 매뉴얼에는 ‘지방재정이 가능한 경우 급식 단가 탄력적으로 인상 가능’이라고 적혀 있다. ‘지방재정이 가능한’ 지자체도 있지만 불가능한 곳도 있다. 재원난을 겪는 지자체의 호소로 2009년 541억원, 2010년 285억원씩 국비 지원을 해준 적이 있지만 그때뿐이었다. “경제위기 극복과 함께 결식아동 수가 줄어들었다”는 이유로 국비 지원이 끊긴 2011년부터 지금까지 아동급식지원사업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출액은 ‘0원’이다.

지자체들은 형편대로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있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0월 기준 결식아동 급식 단가는 최저 4000원(대구·대전·강원 등)에서 최고 6000원(서울 일부·경기도)까지 벌어져 있다. 한 끼당 가격뿐 아니라 한 해 한 아이에게 지원하는 끼니 수도 모두 달랐다. 부산이 최저 131끼, 충남이 최고 282끼다. 한 아동이 1년간 지원받는 총예산액도 최저 58만8000원(부산)에서 최고 115만9000원(제주)까지 천차만별이다. 광역지자체별로도 다르지만 기초지자체별로도 다르다. 서울시 서초구는 올해부터 한 끼당 7000원을 지원한다. 같은 나라에 사는 아이들인데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밥의 질이 갈린다.

행정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에 따라서도 아이들의 밥상을 분절한다. 취학아동의 경우 아침, 점심, 저녁은 물론이고 학기중, 방학, 주말, 공휴일에 따라 밥의 지원체계가 다르다. 조·석식 지원 예산은 지자체에서 맡지만 중식은 교육청에서 돈을 낸다. 그런데 그것도 학기중 평일 중식만이다. 학기중 주말·공휴일은 지자체가 교육청과 협의해 시·도교육비특별회계를 조달받아야 한다. 방학중 중식 예산은 아예 교육청 대신 지자체에서 부담한다(〈그림 18〉). 이 복잡한 급식비 전달체계 안에서 아이들의 밥상은 구멍이 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방학일, 개학일, 재량휴업일도 제각각이다. 갑자기 결정된 대체휴일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한 휴교일에도 급식 공백이 발생한다. 월요일, 개학일, 긴 연휴의 끝이면 학교나 지역아동센터에서 유독 허겁지겁 밥을 입에 욱여넣는 아이들이 많다.

ⓒ시사IN 변진경·최예린

■ 결식 넘어 ‘식품 보장’으로

좋은 밥이란 매우 주관적이다. 무엇이 흙밥이고 무엇이 좋은 밥인지 매끈하게 나눌 수 없고 사람마다 그 기준도 다르다. 특히 아이들의 밥이 그렇다. 삼시 세끼를 다 먹으면 좋은 식생활일까? 필요 열량을 채우면 그만일까?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면 될까? 일정한 시간 익숙한 장소에서 먹는 게 중요할까? 아무리 복지망을 촘촘히 엮어서 보살핀다 한들 국가와 사회가 이 모든 질문에 답을 내리고 모든 아이를 완벽하게 챙겨 먹이기는 힘들다. 다만 기존의 렌즈를 바꿔 끼울 필요는 있다. 기존의 ‘결식’ 렌즈는 21세기형 아동 흙밥을 바라보기에 너무 화각이 좁다.

정정호 청운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이 있는 빈곤 가구의 식품 미보장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2012)에서 아동의 식사 복지를 논할 때 ‘결식’ 대신 ‘식품 미보장(food insecurity)’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식품 미보장이란 가정 내 경제적 자원 부족으로 가구 구성원이 음식 부족을 걱정하거나 질적·양적인 면에서 음식을 충분히 혹은 제대로 먹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식품 보장(food security)’ 상태가 되려면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적극적이고 건강한 삶에 필요한 음식에 충분히, 항상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영양상 적절하고 안전한 음식이 즉각적으로 이용 가능하고, (응급 구호식품에 의존하거나 버려진 음식을 활용하거나 훔치는 등 다른 대처 전략을 사용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식으로 적절한 음식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시사IN 신선영헝겊원숭이운동본부 등에서 격주로 진행하는 ‘맘마미아 푸드트럭’이 지난해 11월19일 경기도 군포시 한 공원에 차려졌다.

아동 결식은 식품 미보장 가구의 일부분, 특히 가장 심각한 상태에서 발생하는 ‘응급’ 상황이다. 한번 응급 상황으로 치달은 아동의 삶이 다시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나락으로 떨어지기 전 개입하는 게 효율적이다. 정 교수는 논문에서 “일반적으로 가정 내에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아동이 식사를 거르는 상황은 어쩌면 가장 마지막에 발생하기 때문에 빈곤 아동의 일상적 경험이 아니며, 따라서 빈곤층의 식생활 경험을 살펴보기 위해 결식이라는 개념을 활용하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식품 보장’ 상태는 아이 개인이 아니라 그 아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실현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결식 혹은 결식을 둘러싼 상황을 부분적이고 단편적으로만 이해해왔지만, 이제는 좀 더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 개인에게 필요한 식사(영양)가 제공되는 공간인 가족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소득으로 아동 및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재화, 특히 식품을 구입하고 제공하는 생활단위는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시사IN 이명익아동급식카드는 저소득층 아동의 식사 지원을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한다. 아동급식카드의 편의점 사용 비율은 매년 높아지고 있다.

■ “사람 없이 돈만 써서는 효과가 없다”

지난해 11월29일 오후 5시30분. 일찍 퇴근한 직장인, 이웃 할머니, 인근 학교 급식실 조리원 등이 경기도 군포시 헝겊원숭이운동본부 사무실에 모였다. 지역 내 취약 아동들에게 반찬을 배달해주는 ‘푸드 키다리’ 자원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후원 반찬가게에서 금방 요리해 갖다준 고추장돼지불고기, 메추리알버섯장조림, 카레돈가스가 보온가방에 차곡차곡 나눠 담겼다. ‘푸드 키다리’들은 따뜻한 반찬 가방을 메고 군포 각지로 흩어져 저녁 시간 좀체 밥 짓는 냄새가 나지 않는 아이들 집의 문을 두드렸다. 이날 자원봉사자 태기웅씨는 정미(13), 재현이(15), 수지(9)를 만나 반찬을 건넸다. 여러 차례 방문해 낯이 익은 태씨를 보고 아이들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태씨는 “처음엔 아이들이 방문을 부담스러워할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먹을 것뿐만 아니라 사람이 찾아와주는 걸 즐거워한다”라고 말했다.

‘식품 보장’의 단위가 꼭 가족일 필요는 없다. 해체된 가족공동체를 대체할 울타리가 있다면 완벽하진 않아도 온기가 도는 밥상을 차릴 수 있다. 그 울타리는 사람이 만든다. 한 지자체 아동급식 담당 공무원은 말했다. “정책이 좋다고 한들 세상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찬밥이라도 같이 먹을 사람이 필요하다.” 김보민 헝겊원숭이운동본부 대표도 말했다. “아이를 돌보려면 사람을 써야 한다. 사람 없이 돈만 써서는 효과가 없다. 돌봄은 관계 속에서 가치가 전달된다.” 헝겊원숭이운동본부는 맘마미아 푸드트럭, 엄마품 멘토링, 푸드 키다리가 간다 등 ‘음식과 사람이 함께 아이에게 가는’ 형태로 아이들의 식생활 지원 활동을 벌이고 있다.

ⓒ시사IN 변진경돌봄 사각지대 아동에게 반찬을 배달하는 ‘푸드 키다리’ 자원봉사자들이 음식을 챙기고 있다.

전주시 ‘엄마의 밥상’은 획일적인 복지 행정에 온기를 더한 사례다. 엄마의 밥상은 전주시청이 아침을 굶고 등교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아침마다 따뜻한 도시락을 배달해주는 사업이다. 기존 결식아동 급식지원사업과는 별개로 진행된다. 2014년부터 시작해 지난해에는 예산 5억6200만원으로 280명 아이들에게 아침밥을 먹였다. 새벽에 갓 만들어진 밥, 국, 반찬 세 가지가 보온 도시락에 담겨 아이들 집으로 배달된다. 일주일에 한 번 간식꾸러미와 1년에 한 번 생일 케이크도 제공된다.

박은하 전주시청 희망복지지원팀장은 “단순히 아이들의 배고픔을 채우는 차원을 넘어 밥을 먹으면서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이어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전주시민이 선정한 최고의 정책’으로 꼽히고 여기저기서 후원금도 들어오지만 정책 유지가 쉽지는 않다. 새벽에 도시락을 만들고 배달해야 하다 보니 무엇보다 그 일을 할 사람을 구하기가 녹록지 않다. 그래서 다른 지자체에서 종종 벤치마킹을 위해 전주시를 방문하지만 정책이 쉽사리 확산되지 않는다.

ⓒ연합뉴스전주시가실시하는 ‘엄마의밥상’ 도시락을배달받은 한아이가 감사의글을 남겼다.

까다롭고, 모호하고, 빈 구멍을 막으면 또 다른 데서 구멍이 보이는, 내 아이도 아닌 남의 아이들 밥 문제에 왜 이렇게 신경을 써야 할까? 우리 아이들 모두가 ‘흙밥’을 먹지 않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2013년부터 천안에서는 여러 시민단체, 아동복지단체가 네트워크를 결성해 어린이건강권사업의 일환으로 아침밥 지원사업을 벌여나갔다. 주도적 역할을 해온 전경자 순천향대 간호학과 교수는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한 교사의 볼멘소리를 기억한다. “우리 애도 아침밥 안 먹고 학교 가요. 대체 학교(사회)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 겁니까.” 전 교수는 말했다.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비정규직 등 고용이 불안정한 사회에서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가정에 맡긴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가정에서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사회가 책임을 지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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