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탑골공원’에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이유
  • 임지영 기자
  • 호수 647
  • 승인 2020.02.13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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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탑골공원’으로 대표되는 옛 가요 열풍이 계속된다. 새로운 세대가 옛것을 받아들여 재소비하는 패턴이다. 하지만 복고 콘텐츠에 대한 미디어의 태도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연합뉴스가수 양준일이 지난해 12월31일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주머니 뒤지면 에어팟 나올 거 같은데.’ 1991년 5월 KBS 〈쇼 토요특급〉에 출연한 가수 양준일의 ‘리베카’ 무대 영상을 본 2020년 대중의 반응이다. KBS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Again 가요톱10’은 1980~2000년대 가요 영상을 틀어준다. 위의 글은 300만 넘는 조회수의 영상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이다. ‘2대 8’ 가르마의 편견을 깨는 헤어스타일과 흔치 않던 디자인의 셔츠, 자유분방한 몸짓이 시선을 끈다. 에어팟은 당시 무대가 그만큼 ‘요즘 감성’이라는 비유다. 두 번째로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드디어 시대가 따라잡았다’였다.

20대이던 양준일은 50대가 되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양준일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해 말 그가 귀국하는 날, ‘환영해요 양준일’이란 문구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뜰 정도였다. 그는 1991년 ‘리베카’가 담긴 1집 앨범을 내고 2년여의 짧은 기간 활동했다. 짜여 있는 안무 외에도 즉흥적인 춤이 특징이었고, “떠오르는 말이 있걸랑(‘가나다라마바사’)” 같은 직접 작사한 가사가 파격적이었다.

활동 중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꿈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산타클로스라고 답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무난한 답변이지만 당시 진행자는 아직 어리다고 핀잔을 주었다. 음악을 표현할 때 몸으로 90%, 목소리로 10%를 표현하는, 당시엔 없던 캐릭터였고 그만큼 호불호가 갈렸다. 초등학교 때 미국에 이민을 간 그는 한국에서 데뷔한 후 영어를 많이 사용한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 정지를 당했고, 출입국 담당 직원에게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다’는 말을 들으며 비자 갱신을 거부당하고는 활동을 접기도 했다. 2001년 V2라는 그룹명으로 활동했지만 결국 미국으로 돌아갔다. 음식점에서 서빙을 하던 그를 현재로 소환한 건 유튜브와 10~20대였다.

지난해 그가 JTBC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에 출연했을 때 등장 전 음악만 듣고도 그의 정체를 가장 많이 알아차린 관객은 40대에 이어 10대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사라진 가수, ‘슈가맨’을 소환하는 콘셉트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10대가 태어나기도 전 활동했던 그는 2018년 즈음부터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일명 ‘온라인 탑골공원’이 배출한 스타다. 1990년대 방영되었던 〈SBS 인기가요〉를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로 제공하던 유튜브 채널 ‘SBS KPOP CLASSIC’이 그 시작이다. 이용자들은 옛 가요를 틀어준다는 점 때문에 ‘온라인 탑골공원’ ‘온라인 노인정’ 같은 애칭으로 불렀고 관리자를 공원지기라 칭했다. MBC와 KBS 등도 비슷한 채널과 콘텐츠를 제공하면서 1990년대 가요를 틀어주는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전체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양준일은 방송 출연 전부터 ‘90년대 지드래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연예인’으로 불렸다. 그를 기억하는 30·40 세대는 물론이고 10·20 세대가 화답했다.

‘뉴트로 퀸’이란 별명을 가진 박문치의 2018년 앨범.

당시엔 생소했고 지금은 익숙한

지난해부터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가 유튜브에 접속할 때마다 계속해서 1990년대 음악이 떴다. ‘탑골 가요’ 붐을 체크하던 중 유튜브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그를 이끌었다. 그는 양준일이 활동하던 당시에도 그의 음악은 충분히 충격적이었으며 시대를 앞서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댄스곡을 중심으로 한 1990년대 음악을 많이 듣고 자랐다. 양준일씨를 비롯해 ‘미니데이트’를 부른 윤영아씨처럼 앞서갔다 싶은 음악을 하는 가수들은 언제든 다시 대중의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방송사 유튜브 채널은 이때를 전후로 ‘유튜브가 낳은 스타’ 양준일의 과거 영상을 앞다투어 공개했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음악에 젊은 세대가 열광했던 이유는 뭘까. 배순탁 음악평론가는 당시엔 생소했고 지금은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양준일씨가 재닛 잭슨 같은 해외 뮤지션의 영향을 받은 것 같은데 그런 음악이 팝으로도 히트를 못했던 시절이다. 외국에서 대형 슈퍼스타인 데 비해 한국에선 반응이 적어 온도차가 심한 편이었다. 당시 정서로는 음악이 과하게 세련됐다. 그런 유의 음악이 복고 흐름을 타고 인기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이 흘렀고 이제 그런 음악이 대중에겐 익숙해진 상태다.” 지금은 보기 힘든 패션이나 안무 등 영상도 한몫했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는 지금의 젊은 세대가 주로 영상으로 당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다는 데에도 주목했다. “지금 세대에겐 당시의 무대가 참신한 거다. 아무리 오래된 곡이라도 처음 들으면 새로운 곡이다.”

지금의 인기가 단지 양준일이 ‘유튜브 스타’라서는 아니다. 방송에 출연한 그는 그간의 우여곡절을 들려주었다. 어려움을 겪었지만 인생을 대하는 태도는 여느 기성세대와 좀 달랐다. “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살면 된다. 계획이 있다면, 겸손한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내 과거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말들이 울림을 주었다. 한국에서 온 러브콜에 응할지 고민할 당시 그가 한 팬에게 물었다. “나를 직접 보는 게 좋아? 방송국에서 보는 게 좋아?” 팬은 말했다. “난 오빠를 다시 안 봐도 돼요. 오빠의 삶이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30년 만에 복귀한 가수 양준일은 외모도, 행동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라디오 공개방송 중에도 벌떡 일어나 그를 응원하는 팬들에게 다가가 하트를 그렸다. 다만 이번엔 진행자가 핀잔을 주는 대신 그의 행동을 지지해주었다.

온라인 탑골공원으로 대표되는 옛 가요에 대한 열풍은 대중문화계의 레트로 열풍을 반영하기도 한다. 레트로(Retro)는 레트로스펙티브(Retrospective)의 줄인 말로 재유행, 복고라고도 한다. 레트로는 2000년대 이후 전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다. 디자인 분야에서 시작된 말이지만 금세 대중문화 전반을 아울렀다. 최근에는 소주와 과자 포장도 1990년대로 돌아가고 있고, 서울 을지로의 카페를 비롯해 게임기와 전시회도 온통 ‘레트로 감성’이다. 〈레트로 마니아〉의 저자인 사이먼 레이놀즈 음악평론가는 ‘2000년대에는 과거에 한번 존재했던 거라면 뭐든지 재기를 노릴 수 있었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그는 (음악의 경우) 재활용과 되풀이가 구조적 특징이라고 진단한다.

달라진 건 단지 옛 세대의 추억이나 향수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요즘 세대가 과거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향유하는 현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레트로를 넘어 뉴트로라고 한다.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단어다.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는 “당시의 음악이 단지 재밌어서가 아니라 선명한 멜로디 라인이나 과감한 곡 구성 등 지금의 음악에서 느낄 수 없는 매력이 있어서 소환되는 측면도 있다. 실제로 박문치나 죠지 등 1990년대생 아티스트 중에 뉴트로한 사운드를 다루는 이들이 많아지는 추세다. 과거가 새로운 창작의 동력이 된 것이다. ‘그때’를 살아온 세대가 과거의 음악을 되새김질하는 게 아닌, 새로운 세대가 옛것을 받아들여 재창조하고 재소비하는 일종의 패턴이 만들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뉴트로 퀸’이라는 별명을 가진 뮤지션 박문치는 1990년대 음악과 정서를 적극 반영해 작업한다. 그가 발표한 〈네 손을 잡고 싶어〉나 〈널 좋아하고 있어〉의 앨범 재킷은 누가 봐도 1990년대풍이다. 음악도 마찬가지지만 흉내 내기가 아니라 정체성이다. 그가 지난해 동료 여성 뮤지션 치즈, 스텔라 장, 러비와 구성한 프로젝트 그룹 치스비치도 1세대 걸그룹 S.E.S와 핑클을 연상하게 한다. 이들의 뮤직비디오 밑에는 ‘초등학생 때 치스비치 뮤직비디오를 보며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아직 하루밖에 안 지났네요’ 같은 댓글이 달린다.

지금의 레트로 열풍이 과거의 가수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양준일 같은 슈가맨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활동을 해온 뮤지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김현철이 13년 만에 10집 앨범으로 돌아왔다. 젊은 세대에서 한국의 시티팝이 다시 유행 중이었다. 그는 “레트로 열풍 와중에 ‘죠지’라는 가수가 내 노래를 리메이크하게 됐고 연남동 클럽에서 공연하게 됐는데, 어린 친구들이 제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바로 다음 날부터 다시 음반 준비를 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의 30주년 콘서트 ‘돛’도 매진 행렬이었다.

‘탑골 가요’ 열풍이 가장 반가운 곳은 방송사다. 수십 년간 축적된 프로그램이 많아, 보여줄 콘텐츠도 많기 때문이었다. 조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tvN의 ‘응답하라’ 시리즈나 JTBC의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MBC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비롯해 가요는 아니지만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열광도 있었다. KBS의 유튜브 채널 ‘Again 가요톱10’과 SBS의 ‘SBS KPOP CLASSIC’에는 언제 접속해도 세기말 감성을 보여주는 이정현, 엄정화, 터보 등의 가수를 볼 수 있다.

발굴할 수 있는 ‘옛것’은 한정돼 있어

방송사는 ‘탑골 가요’의 흥행에 힘입어 옛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도 선보이고 있다. 온라인상의 이런 흐름은 거꾸로 방송 제작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온라인 탑골공원에 착안한 프로그램 〈음악감상실 콩다방〉이 2월 중 방송 채널 SBS FiL을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진행자 이본이 뉴트로 감성의 음악과 옛 추억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가요계 레트로 열풍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아무도 양준일 신드롬을 예측하지 못했듯 앞으로도 알 수 없다. 다만 레트로라는 말 자체에 힌트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옛것’은 발굴할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복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미디어의 태도에 대해 우려한다. “양준일씨가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캐릭터가 된 데에는 방송국의 책임도 있다. 당시 음악했던 사람이 그 말고 없었을까. 해외파 뮤지션들이 막 나오던 시점이다. 어떤 배경에서 그가 등장했고 당시의 음악 신이 어땠는지 같이 보는 게 아니라 한 캐릭터만 소비하고 마는 식이다. 미디어가 본질적으로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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