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치즈에는 구멍이 많다. 잘 보면 구멍이 불규칙하다. 여러 개 치즈를 실로 한 번에 꿰려면 구멍 위치가 정확히 맞아야 한다. 재난 사고 원인을 설명할 때 ‘스위스 치즈 모델’이 자주 언급된다. 영국 심리학자 제임스 리즌이 만든 이론이다. 어느 한 단계 실수(구멍)로만 재난이 발생하지 않고 여러 분야가 중첩된 결과라는 것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당시 최전방에 있었던 의료인들의 증언을 담은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2016)에도 이 모델이 언급된다. 최원석 교수(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는 말한다. “치즈 한 겹이라도 구멍 위치가 맞지 않으면 실로 한 번에 꿸 수 없어요. 메르스 사태는 우리 사회에 뚫린 구멍이 너무 많아서 구멍을 맞출 필요도 없이 터진 것이었을 수도 있어요.” 최 교수 지적대로 메르스 사태는 한국 사회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낙타 고기를 먹지 말라며 컨트롤타워 구실을 방기한 정부, 의료 수준은 세계 최고지만 최하 수준이었던 보건체계, 시민들의 안전 불감증까지 그 실상이 드러났다. 다행스럽게도 메르스를 겪으며 전 사회적으로 ‘경험치’를 쌓았다. 정부 대응체계도 돌아보았고, 민간병원 대응체계도 잡혔다. 시민들도 의료 쇼핑을 자성했고, 가족 단위 무분별한 면회 문화도 어느 정도 개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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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분야도 있다. 언론이다. 〈헤럴드경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을 계기로 대림동 르포를 했다. ‘르포 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 가래침 뱉고, 마스크 미착용 위생불량 심각.’ 1년 전 〈시사IN〉은 ‘대림동 한 달 살기’ 기획을 했다. 통계로는 포착되지 않은, 우리 안의 이웃 재한 조선족의 삶을 심층적으로 담아냈다. 이들에게 던져지는 혐오는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앞으로도 이 기사가 소환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메르스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등 전염병은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2016년 OECD 통계에 따르면 국내 병원 중에서 공공병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5.8%, 자료를 제출한 OECD 26개국 평균은 52.6%이다. 한국은 최하위다. 공공재는 적자나 흑자 개념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지탱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는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시민건강연구소 김명희 상임연구원의 지적처럼 감염병 유행은 ‘네버엔딩 스토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14~17쪽 기사 참조). 이번을 넘겨도 앞으로 새롭고 더 심각한 감염병이 출현할 수 있다. 공공병원은 적어도 한 구멍 정도는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다. 문제는 그 안전장치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재원의 분배는 정치가 결정한다. 그 정치를 바꿔 우리의 안전을 확보하는 길이 있다. 지금 손 씻기만큼이나 4월15일 내 손으로 하는 정치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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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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