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Photo보석 당시 카를로스 곤의 모습
ⓒAP Photo곤이 1월10일 레바논에서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일본이 설 휴가에 들어간 지난해 12월29일, 마치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일이 벌어졌다. ‘르노·닛산·미쓰비시 얼라이언스’의 전 최고경영책임자(CEO)인 카를로스 곤이 일본을 탈출했다는 것이다. 그는 2018년 11월 도쿄 지검 특수부에 금융상품거래법 위반 혐의 등으로 체포되었다. 4개월여 뒤인 2019년 3월, 도쿄의 거주지에 머무르는 조건하에서 보석으로 석방되어 재판을 받고 있었다.

곤은 눈길을 끄는 사람이었다. 부도 위기에 처한 닛산과 미쓰비시를 잇달아 살려내 일본과 해외에서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그의 주된 경영전략이 노동자와 회사 시설을 대량으로 정리하는 방식의 구조조정이었기 때문이다. ‘코스트킬러(cost killer)’로 불릴 정도였다. 10억 엔(약 105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연봉, 15억 엔(약 157억원) 규모의 보석금도 일본인들 사이에서 큰 관심거리였다.

지난해 3월 보석 당시, 곤은 언론의 눈을 피하기 위해 청소원으로 변장한 채 구치소에서 나왔다. 그러나 그 모습이 너무 부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눈에 띄었다고 한다. 그의 청소원 분장 사진은 여러 형태로 변형되어 인터넷을 떠돌며 누리꾼들에게 조소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에서 이토록 화제를 뿌린 곤이 해외로 탈주한 직후인 1월2일,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는 그를 공식 수배했다. 그러나 그가 탈출한 레바논과 일본 사이에는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어 있지 않다. 일본으로 다시 데려오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그의 대탈출극이 일본인들에겐 자국 사법제도의 현실을 재성찰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곤이 레바논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발표한 성명서 역시 일본 사법제도를 겨냥했다. “나는 지금 레바논에 있다. 나는 더 이상 피고인이 유죄라는 전제를 깔아놓은 상태에서 기본적 인권까지 부정하는 그릇된 사법제도의 인질이 아니다. 일본 사법제도는 국제법과 조약 아래 준수되어야 할 법적인 의무를 현저히 무시하고 있다. 나는 정의를 피해 도망간 것이 아니라 비리와 정치적 박해에서 탈주한 것이다. 나는 이제 겨우 언론과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기소 상태인 곤으로서는 이런 이야기를 할 만하다. 일본에서는 일단 기소당해 재판받는 상태가 되면 무죄판결을 받아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일본 형사 피의자 가운데 유죄판결을 받는 비율(=검찰의 승소율)은 오랫동안 99.9% 전후를 유지해왔다. 일본 법무성이 작성한 범죄백서(2019년도)에 따르면 2018년 형사재판 총수는 27만5950건인데, 이 가운데 무죄판결은 123건에 불과했다. 유죄율이 무려 99.96%다.

일본 변호사 중 일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법제도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곤이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판사가 나의 유무죄 여부를 판단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검사가 결정하더라”)에 공감하는 변호사도 적지 않다.

일본의 형사 피의자 유죄율이 이렇게 높은 까닭은 무엇일까? 첫째, 검찰관이 확실히 유죄로 판정받을 수 있는 사건만 기소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2015년의 경우, 형사법을 위반한 사람 가운데 기소된(재판을 받게 된) 비율은 38.9%에 불과했다. 둘째, 일본 재판부는 검찰 판단에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편이다. 재판부가 아니라 검찰의 판단으로 유무죄가 가려진다고 지적하는 일본 내 법률 전문가도 적지 않다.

한편 1월 중순 현재까지 곤의 탈출에 대한 기사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그중 특기할 만한 새로운 ‘팩트’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그가 자택을 나갈 때 콘트라베이스 케이스에 숨었다는 보도는 오보로 밝혀졌다. 혼자 유유히 걸어 나오는 영상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관련 보도가 나왔을 때, 누리꾼들 중엔 실제로 콘트라베이스 케이스에 들어가 SNS에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악기 회사 야마하가 악기 상자에 들어가면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다만 그가 공항의 화물검색대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악기 상자에 숨은 것은 사실인 듯하다.

ⓒAP Photo1월3일 기자들이 카를로스 곤 자택으로 추정되는 베이루트의 집 앞에서 취재를 하고 있다.

부친은 1970년대에 브라질로 탈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카를로스 곤 전 회장은 탈출 3개월 전에 미국 육군 특수부대 출신자들을 고용했다. 그들은 일본을 20회 이상 오가며 공항 10여 군데를 조사한 끝에 간사이 국제공항의 보안심사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공항에서는 X선 검사가 불가능한 큰 수하물에 대해 직원이 직접 열고 체크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테러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개인 제트기의 수하물에 대해선 보안검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더욱이 일본에서는 항공사로부터 관련 업무를 위탁받은 민간 업체들이 보안검사를 맡기 때문에 소홀한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곤 전 회장은 호흡구멍이 뚫린 음향기기(콘트라베이스가 아니라) 상자에 숨어 보안대를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자신이 소유한 개인 제트기를 타고 프랑스 여권으로 레바논에 입국했다.

이렇게 대탈출극의 전모가 어느 정도 밝혀질 무렵, 또 하나의 소설 같은 뉴스가 흘러나왔다. 곤의 부친 역시 과거에 범죄를 저질러 해외 도피한 경력이 있다는 것이다. 일본 경제지 〈포브스 재팬〉에 따르면, 프랑스 시사주간지 〈르누벨 옵세르바퇴르〉 도쿄 특파원이 곤의 인생을 기록한 책(〈도망자〉)을 오는 2월에 발간한다. 그 책에 곤의 부친인 조지 곤(2006년 사망)의 사연이 실려 있다.

이 책을 사전 입수한 쿠웨이트 신문 〈알카바스〉에 따르면, 조지 곤은 1960년 4월 레바논에서 성직자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당시 조지 곤은 밀수업자로 살해된 성직자와 공범 관계였는데, 이익 배분 문제로 다투다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그는 교도소에 들어갔으나 상당히 자유로운 수감 생활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교도관들에게 뇌물을 건네 낮에는 교도소 밖에서 지내다가 밤에 돌아오곤 했다는 것이다. 조지 곤은 다른 수형자의 고발로 검찰이나 재판관에 대한 살해 음모를 적발당해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1970년대에 모범수로 풀려 나와서 브라질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아들 카를로스를 낳은 곳이 바로 브라질이다. 실제로 그동안 여러 책이나 언론 보도에서 카를로스 곤의 경력은 수없이 언급되었다. 부친에 대한 이야기만 빠져 있었는데, 이런 사연 때문이었으리라 보인다.

카를로스 곤이 일본 검찰에 체포되면서 부친을 연상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사건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부자의 기구한 운명을 겹쳐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포브스 재팬〉 편집장은 트위터에 “마치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을 보는 것 같다”라는 소감을 털어놓았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가로,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업보를 주제로 많은 소설을 썼다.

기자명 도쿄·김향청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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