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포토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해 9월 청와대 앞에서 ‘조국 장관 파면 촉구’ 삭발식을 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죽었습니다. 자유는 죽었습니다. 오직 독재정권만이 살아 있고 압제정치만이 살아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악법 천지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 학생단체의 성명이 아니다. 1월13일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형사소송법 개정안·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자 다음 날 오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글 말미에 황 대표는 이렇게 적었다. “문재인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우리 모두 독재와 맞서 싸워 이깁시다. 독재와 필사적으로 싸우는 우리 모두가 자유민주주의이고 대한민국입니다.”

‘반독재’와 ‘황교안’은 낯선 조합이다. 황교안 대표는 독재정권에 맞선 이력이 없다. 그는 제5공화국의 공안검사였다. 집회·시위법과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해설서를 출판할 정도로 밝다. 2009년 펴낸 〈집회·시위법 해설〉에 황 대표는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칭했다. 2013년 그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자 언론은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라는 별명을 소개했다.

‘거리의 투사’ 이미지도 그와 거리가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내면서 황 대표는 ‘과잉 의전’을 요구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방문 시설의 일반인 이용을 통제하고, ‘대통령 권한대행’이라고 적힌 명패와 시계를 만들었다. 반면 보수 언론은 그의 모범생 이미지를 높이 평가했다. “옆길로 가지 않는 스타일”(2017년 1월4일 〈동아일보〉), “특유의 중저음과 차분하고 흔들림 없는 답변”(2017년 2월26일 〈한국경제〉), “점잖은 언행과 온화한 성품, 국무총리직 안정적 수행”(2018년 10월17일 〈월간중앙〉) 따위 수식어가 붙었다.

ⓒ연합뉴스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6월18일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이동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인식을 공유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해 초 신임 대표 선출을 앞두고 “샌님” 같은 황교안 전 총리의 캐릭터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지난해 2월7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정치 모르는 점잖은 사람 하나 내세우고 자기들 맘대로 공천하고 특권 누리는 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점잖은 사람’은 황교안 전 총리, ‘자기들’은 친박 의원들을 겨냥한 말이었다. 그는 황교안 대표가 ‘얼굴마담’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권은 친박 세력이 행사하고 결국 “도로탄핵당”이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하지만 전당대회 2개월여 뒤인 지난해 5월6일, 〈조선일보〉는 ‘목이 쉬도록, 원고 없이… 투사가 된 황교안’이라는 기사를 냈다. 이후 황 대표는 삭발, 단식, 장외 투쟁을 행하며 점점 거칠고 강한 이미지를 쌓아왔다.

‘권위적인 보수 관료’였던 황교안은 어째서 ‘반정부 투사’가 됐을까. 지난해 12월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왜 우리는 이렇게 필사적으로 싸워야만 합니까?”라고 자문한 황교안 대표는 “이 위대한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함”이라고 답한다. “문재인 정권의 잔악무도한 폭정” 탓에 “자유 대한민국이 벼랑 끝에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황교안 대표는 “위대한 자유 대한민국”을 “애국 시민”들이 지켜야 한다는 이 글의 레퍼토리를 반복해왔다. 1월13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는 현 정부가 “전형적인 폭군 통치”이며, 자유한국당은 “국민 누구나 마음껏 정권을 비판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말했다. 1월2일 새해 대국민 인사에서는 “문재인 정권의 폭정과 무능 앞에 무참히 무너지고 짓밟히는 대한민국을 이대로 놔둘 수 없다”라고 말했다. 건강 악화로 입원 중이었던 지난해 12월26일 ‘대국민 호소문’에서 황 대표는 이렇게 밝혔다. “만신창이가 된 제 몸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주삿바늘의 고통보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좌파 독재로 망쳐가고 있는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을 막아내지 못한 채 병원에 실려온 무기력한 제 자신을 석고대죄하며 간절히 호소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이해가 안 가. 민주당에 좋은 일인데···”

황교안 대표가 문재인 정부를 ‘독재’라고 보는 주된 사유는 검찰개혁 법안과 선거법 개정안이다. 나치 독일을 운운하며 법안을 비판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15일 기자회견에서 황 대표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권력의 비리를 돕는 히틀러의 게슈타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2월26일 ‘대국민 호소문’에는 선거법이 개정되면 “히틀러의 나치당이 선거를 통해서 국회에 진입한 후 독재와 전쟁의 광기를 내뿜었던 것처럼 우리를 망국의 길로 이끌 것”이라고 했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해 11월 패스트트랙 법안과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를 묶어 반대하며 8일간 단식을 했다.

하지만 황 대표의 읍소에 대한 여론 반응은 신통치 않다. 지난해 11월25일 MBC 보도에 따르면 코리아리서치 조사 결과 ‘황교안 대표의 단식 투쟁에 공감한다’는 응답은 28.1%였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7.3%였다. 지난해 12월24일 〈오마이뉴스〉는 리얼미터 조사에서 ‘패스트트랙 법안을 표결 처리해야 한다’는 응답이 51.1%, 반대하는 응답이 39.6%였다고 보도했다.

황 대표가 이끄는 자유한국당의 지지도도 답보 상태다. 1월10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지지도는 20%. 황교안 대표가 선출된 다음 날인 지난해 2월28일 조사(20%)와 다르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지지도는 40%다. 더불어민주당이 36%, 자유한국당이 27%로 양당 지지도 격차가 9%포인트까지 좁혀진 시기도 있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한 10월 셋째 주 조사 때였다. 하지만 이후 양당 지지도는 도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황 대표가 단식하던 당시 민주당 안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이다. 오히려 우리 당에 좋은 일”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검찰개혁은 진보 유권자뿐만 아니라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는 의제인데, 야당 대표가 격하게 반대하는 것은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황 대표가 검찰 출신이어서일까? 하지만 같은 검찰 출신인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해 11월 “정치라는 게 결국 협상이다. 하나(공수처법)를 내주되 선거법은 협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자유한국당이 홍 전 대표 말처럼 나왔다면 검찰개혁에 비해 여론 지지가 부족한 선거법은 추진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었다. 저쪽(황 대표를 비롯한 자유한국당 지도부)이 소수파를 안 해봐서 협상을 할 줄 모르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황교안 대표의 강경 투쟁은 정치 지형을 읽어내지 못한 미숙함의 발로일까? 그럴 수도 있다. 황 대표는 여론전에 익숙하지 않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1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며, 사법시험 합격 후 35년간 검사·관료로 살았다. 그런데 만약 역풍 가능성을 인지했다면 황 대표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지난 10개월간 논란이 된 몇몇 장면을 보면 황교안 대표는 이념형에 가깝다. 지난해 7월 황 대표와 자유한국당 지도부는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 비하 발언으로 당원권이 정지된 김순례 의원은 관례에 따라 최고위원에 복직할 수 없다’는 내용의 당내 보고서를 묵살했다. 지난해 10월24일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과 관련해 수사 대상이 된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는 방안을 두고 황 대표는 “당에 기여한 부분에 관해 그대로 넘어갈 수 없다. 반드시 그런 부분도 반영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가산점에 대해 생각해본 바 없다”라고 말을 바꿨다. ‘갑질 논란’이 있는 박찬주 전 육군대장을 1호 영입 인사로 받았다. 논란이 확산된 뒤에도 황 대표는 박 전 대장을 “정말 귀한 분”이라고 일컬어 다시 비판받았다.

황 대표가 나경원 전 원내대표의 재신임 문제를 처리한 방식은 특히 거센 반발을 불렀다. 지난해 12월3일 나경원 당시 원내대표가 임기 종료를 앞두고 “의원총회에서 재신임 여부를 묻겠다”라고 말하자, 2시간 뒤 황 대표는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연장 불가’를 결정했다. 여러 의원들의 공개 비판이 터져 나왔다. 다음 날 의원총회에서 김태흠 의원은 이 결정에 대해 “황당하다”라고 비판했다. 원내대표 연임 여부를 결정할 권한은 의총에 있는데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이 월권을 했다는 것이다. 같은 날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김세연 의원은 “당 지배구조의 근간을 허무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대표에 의한 원내대표 임기 종료 결정을 “사법부가 직접 입법을 시도하거나 행정부가 법률을 개정하는 행위”에 빗대었다.

황 대표는 자유한국당이 공당으로서 유지해온 시스템을 흔들고, 대신 수상한 외부 세력에 힘을 실었다. 지난해 12월에는 보수 유튜버에 대해 “입법보조원 자격을 줘서 국회에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게 하자”라는 제안을 했다. 반면 ‘편파 보도’를 하는 언론사와 기자에 대해서는 자유한국당 출입금지 등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해 12월16일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태극기를 든 참가자들을 향해 황교안 대표는 “여러분 (국회에) 들어오신 것이 이미 승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일부 참가자들은 경찰에게 폭력을 쓰고 기물을 파손하며 본관 내부 진입을 시도했다.

가장 치명적인 외부 세력으로 꼽히는 인물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인 전광훈 목사다. 황 대표와 몇몇 자유한국당 관계자들은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집회에 여러 차례 참석했다. 황 대표 본인이 마이크를 잡기도 했다.

ⓒ시사IN 조남진전광훈 한기총 대표회장이 지난해 6월11일 릴레이 단식기도 중에 음료를 마시고 있다.

지난해 3월20일 황 대표가 처음으로 한기총을 공식 방문할 때부터 교계에서는 말이 많았다. 수년 전 주요 교단들이 탈퇴한 한기총은 이단 시비가 있는 교단까지 받아들인 집단이고, 수장 전광훈 목사 역시 논란이 적지 않은 인물이다. 지난해 여름 기자에게 한기총과 전광훈 목사의 문제점을 한참 열거한 교계 인사는 “그런데 그 독실한 신자인 황교안 대표가 이런 평판을 정말 몰랐을까?”라고 말했다. 논란이 될 것을 알면서도 본인 가치관에 맞기에 감수했다는 이야기였다.

개신교 근본주의자 특징 빼닮아

‘정치보다 신앙’이라는 황 대표의 가치관을 더 널리 알린 사건은 지난해 5월 일어났다. 지난해 5월12일 경북 영천 은해사의 부처님오신날 행사에서 그는 불교식 예법인 합장과 반배를 거부했다. 아기 부처를 씻기는 의식 때 호명되자 손사래를 쳤다. 여러 종교의식에 두루 협조하는 보통 정치인들과 다른 모습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황 대표를 그저 ‘종교관이 투철한 정치인’ 정도로 볼 여지가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랬듯, 황 대표에게는 신앙이 침범할 수 없는 역린이기에 불거진 문제라는 것이다. 보수 개신교 인사들은 ‘종교의 자유’를 들어 황 대표의 행동을 감쌌다.

하지만 황교안 대표는 일반적인 개신교인 정치인이 아니다. 황 대표의 언행에 드러나는 ‘종교적 정치관’은 개신교 근본주의의 특징과 닮았다. 미국 사학자이자 신학자인 조지 마스든은 책 〈근본주의와 미국 문화〉에서 개신교 근본주의자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다뤘다. 그에 따르면 근본주의자는 세상을 신과 악마, 선과 악, 성과 속, 구원받은 자와 심판받을 자로 나누고, 역사는 그들의 지속적인 투쟁 과정이라고 본다. 황교안 대표는 한동안 ‘악한 세력’ ‘지옥’과 ‘천국’ ‘천사’ 등의 개신교 용어를 사용했다. 특정 종교색에 대해 비판이 나오자 이런 용어들은 줄었다. 대신 ‘좌파 독재’ ‘폭정’과 ‘자유 대한민국’ ‘애국 시민’이 그 자리를 채웠다. 성경에 나오는 낱말만 없어졌을 뿐, 양자의 대결을 강조하는 서사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공산주의는 단골 악역이다. 개신교인들이 대부분 반공을 표방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개신교 근본주의자가 일반적 개신교인들과 구분되는 지점은 ‘어디까지를 공산주의로 보는가’이다. 영국 신학자 제임스 바는 책 〈근본주의 신학〉에서 이렇게 썼다. “근본주의자는 공산주의의 범주를 크게 확대한다. 복지국가, 개혁주의적 태도, 급진주의, 진보주의, 사회주의 등이 모두 가면을 쓴 공산주의의 다른 이름이라고 본다.” 반공의 범위를 확장하는 개신교 근본주의는 ‘공안검사’와 ‘반(反)독재 투사’라는 두 정체성의 연결점이다.

ⓒ시사IN 이명익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해 12월23일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가 ‘좌파 독재’를 하고 있다는 황교안 대표의 현상 인식은, 반공을 중시하는 개신교인들에게조차 잘 통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31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인 응답자 중 71.2%가 공산주의 배격을 표방했다(비개신교인 58.2%). 하지만 ‘태극기 집회 참가’나 ‘전광훈 목사 언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개신교인 응답자 비율이 각각 74.4%와 86.6%로 더 높았다. 자유한국당이 ‘2대 악법’으로 꼽은 패스트트랙 법안에 대해서도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의 의견은 차이가 나지 않는다(〈시사IN〉 제643호 ‘한 줌의 길 잃은 양 ‘아스팔트 개신교’’ 참조).

자신의 투쟁에 대중이 공감하지 않을 때 근본주의적 정치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종교사회학 연구자인 정태식 교수는 “‘악마’와 타협을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홍준표 전 대표가 정치의 기본 원리로 꼽은 ‘협상’을 근본주의자인 황교안 대표는 택하지 않는다. 자신이 ‘악’으로 규정한 법안과 추진 세력에 관해 황 대표는 초지일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태도를 고수했다. 그 화법은 마치 선지자, 순교자 같았다. “4+1, 이 권력의 불나방들을 보십시오. 자유민주주의 틈새를 누비고 들어와서 자유민주주의를 뒤덮어버리려고 하는 잡초 같은 세력입니다. (…)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사생결단할 수밖에 없습니다(지난해 12월13일 본인 페이스북에서).” 정태식 교수는 종교와 타협한 정치가 자기 고양(self-elevation)에 빠진다고 썼다.

2020년 1월 중순의 시점에서는 황교안 대표의 변모를 성공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한국갤럽의 지난해 12월12일 조사에 따르면 황 대표에게 ‘호감이 간다’고 답한 유권자는 18%이다. 67%는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했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에 이어 7명 중 뒤에서 두 번째이며 2017년 2월 조사(21%)보다 더 떨어졌다. 60대 이상(52→29%), 자유한국당 지지층(89→60%)의 이탈이 눈에 띈다. 지난해 장외 집회에서 황교안 대표는 종종 주술을 걸듯 “우리가 이겼다”라고 외쳤다. 하지만 그가 입당한 뒤 자유한국당은 별다른 낭보를 전해 받은 적이 없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