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성 그림

6학년 담임의 연말 업무 중 하나는 중학교 배정 원서를 쓰는 일이다. 우리 학교가 위치한 도계읍에는 남중, 여중이 하나씩 있다. 아이들은 별도의 추첨 절차 없이 중학교에 진학한다. 나름 수월하게 보일지도 모르나 남모를 고민거리가 있다. 도시지역 중학교에 다니고 싶어 하는 학생이 꽤 된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 6학년은 4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중 한 명이 2학기 말에 전학을 갔고, 3명이 졸업 후에 학군을 옮길 예정이다.

학교 선택은 학부모와 학생의 권리이므로 교사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시골 탈출 정서를 발견할 때마다 놀라곤 한다. 시골은 어디까지나 거쳐 가는 곳이라는 생각. 국토의 균형발전을 겉으로 지지하지만, 인구 감소 국면에서 지방의 도태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 그런 마음이 교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학부모 처지에서 보면 초등학교 시기에 시골살이는 꽤 괜찮다. 시골 학교일수록 이런저런 지원이 많아서 도시라면 비용을 내야 하는 프로그램도 무상으로 제공된다. 더구나 도계처럼 탄광산업이 발달한 경우 대한석탄공사나 탄광 기업처럼 소득이 높은 일자리가 있다. 또 주거비 부담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장점도 존재한다. 중학교부터는 계산이 복잡해진다. 대학 진학을 고려해 얼른 입시 레이스에 올라타야 한다는 판단이 서는 시기다.

입시 준비를 도시에서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학부모들은 출퇴근이 가능한 인근 동해시, 멀게는 강릉에 집을 구해 아이를 시내 중학교로 보낸다. 물론 이 선택이 가능해지려면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사교육에 투자할 의향과 학군이 받쳐주는 지역의 아파트를 구매할 여력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물론 농어촌특별전형을 노리고 전략적으로 고교 졸업까지 시골에서 지내기도 한다. 재학 중 단 한 번이라도 부모나 학생이 주소지를 도시로 옮겨서는 안 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워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다.

교사라고 다를 것은 없다. 강원도의 경우 벽지, 농어촌에 근무하면 승진 가산점이 주어진다. 시골 학교 기피 현상을 막으려는 조치다. 시골 학교에 근무한다고 해서 온 가족이 시골로 오는 건 아니다. 대부분이 장거리 출퇴근을 감수하거나, 본인만 주중에 관사를 이용한다. 당장 ‘벽지 가산점’이 주어지는 우리 학교만 봐도 학교 소재지인 도계읍에 주소를 둔 교사 비율이 20% 미만이다. 주변 지역에 있는 소규모 학교의 사정도 비슷하다.

교사건 학생이건 모두 도시로…

이유는 있다. 도시의 삶이 더 편리하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미취학 자녀를 키우는 선생님들은 소아과와 종합병원이 가까이 있기를 바란다. 어린이 놀이시설과 교육기관, 문화센터를 일상적으로 누리고 싶어 한다. 유치원에서 같은 반 친구들이 적어도 10명 이상은 되어 다양한 인간관계를 경험하길 기대하고, 가끔 시내에서 여러 브랜드 매장을 아이와 함께 둘러보고픈 욕망도 있다. 이건 강원도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넓게 보면 지방과 수도권, 수도권과 서울의 문제이기도 하다. 마치 부동산 카스트 피라미드처럼 사람들이 편리함과 자산 가치를 좇아 더 큰 도시로 몰려 올라가는 것만 같다. 물론 여기서 피라미드의 하층은 지방, 그중에서도 시골이다.

학교 주변에서 빈집을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굳게 닫힌 대문에 녹슨 자물쇠가 채워져 있거나, 주인을 찾지 못한 우편물이 잔뜩 꽂혀 있다. 나는 도시로 떠나는 아이를 격려하며 중학교 재배정 절차를 알려주다 말고 주변의 묘한 분위기를 느끼곤 한다. 떠나는 아이는 늘어나는데, 외부에서 들어오는 아이는 거의 없다. 친구를 잃고 싶지 않은, 빈집이 생기는 걸 또 보고 싶지 않은 어린이의 눈빛은 쓸쓸하고 서늘하다. 그렇지만 담임인 나도 동해시에서 출퇴근하는 외지인인 까닭에 섣불리 위로의 말을 건네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만다.

기자명 이준수 (삼척시 도계초등학교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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