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순정윤순 사진가는 개인이 겪은 트라우마와 그 극복 과정을 작품에 담았다.

사진 공모전이나 전시작 공모 심사를 할 때마다 작품이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행을 타듯 비슷한 소재를 찾아 비슷한 방식으로 촬영한다. 예술 ‘독창성’이 부족하다. ‘사진 스폿’에 떼로 몰려다니면서 촬영한 사진이 난무한다. 공모전 상금만 노리는 공모전꾼들도 등장했다. 여러 곳의 공모전을 똑같은 이름의 ‘작가’가 휩쓴다. 그래서 오늘날의 사진계를 ‘사진가의 우울한 전성시대’라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얼마 전 서울의 한 유명 아트센터 전시 작가 공모 작품을 심사하면서 사진의 저변 확대가 꼭 질 낮은 ‘작가’를 양산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예술사진으로 이미 인정받은 기성 작가와 아마추어가 모두 공모하는 방식 자체가 새로웠다. 한마디로 ‘계급장’ 떼고 작품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신선했다. 선정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사진 인구 팽창의 부정적 면보다는 긍정적 면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번번한 전시도, 예술대학의 정규과정도 거치지 않은 작가가 선정됐다. 경력만 보면 넘쳐나는 ‘아마추어’ 사진가 중 하나쯤으로 넘겨짚을 수도 있지만, 작품 수준과 그 안에 깃들인 열정과 깊이는 기성 사진가를 넘어선다. 놀라웠다.

순수사진 분야에 선정된 정윤순 사진가는 정규 예술대학 출신이 아닌, 대학에서 운영하는 사진 아카데미에서 사진을 배웠고,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작업을 했다. 그런 그가 대외적으로 제대로 된 ‘사진가’라는 명패를 달기는 쉽지 않다. 심사위원 모두가 그의 작품에서 기성 작가 못지않은 완성도와 가능성을 발견했다. ‘대형 사고’에 버금가는 큰일을 벌인 그에게 사진가라는 이름을 당당히 붙여주고 싶다.

예술대학 출신 아닌데도 뛰어난 성취

그의 사진은 셀피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그런 종류의 셀피가 아니다. 셀피는 주로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와 자기만족을 위해 촬영된다. 그 안에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나 물음이 들어가 있지 않다. 사진의 역사에서 셀프 포트레이트는 중요한 장르 가운데 하나이다. 사진가는 셀프 포트레이트를 통해서 자신을,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와 문화를 드러낼 수 있다. 대중적으로도 가장 인기를 끌었던 신디 셔먼처럼 대중문화 속 여성 이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고, 쳉퀑치처럼 서양에 사는 동양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서양 문화에 대한 비판을 담기도 한다.

정윤순 사진가는 개인이 겪은 교통사고의 트라우마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여러 상황에 비유해 작업했다. 그의 작업은 표면상으로 개인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사진 안에서 우리 사회 남성성에 대한 문제 또한 읽힌다. 정윤순이라는 한 개인과 사회의 모습을 작품에서 동시에 보는 것은 무척 의미심장하다. 박기복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는 전사가 아니다〉처럼 이 작품 안에서 무한 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하루살이같이 살고 있는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가 작가 자신의 그것과 서로 교차한다.

오랜 시간 사진예술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았던 작가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기자명 김성민 (경주대학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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