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12월11일 주 52시간 상한제 안착을 위한 보완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주 52시간 상한제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이다. 관련 법률이 집권 2년 차인 2018년 2월에 국회를 통과했다. 야권은 물론 정부·여당 내에서까지 논란에 휘말렸다. 심지어 지난 11월에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자신 역시 주 52시간 상한제 법률에 찬성투표를 했는데 “반성한다”라고 말했다.

법 시행일인 2020년 1월1일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12월11일, 고용노동부는 직원이 50~299명인 기업에 대해 ‘계도기간’ 1년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이 기간에는 기업의 법률 준수 여부에 대해 근로감독을 하지 않고, 직원의 진정이 들어와도 충분한 시정기간을 부여하며, 사업주가 고소·고발될 경우 개선 노력과 ‘고의성 여부’를 감안해 처리하도록 검찰과 협의하겠다는 것이다. “기업이 주 52시간 넘게 일을 시키면 형사적으로 처벌받도록 법률로 규정되어 있다(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노동부는 자신의 가장 큰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법의 실효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노동법)가 말했다.

주 52시간 상한제 때문에 중소기업들이 어려움에 처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더라도 “‘법을 적극 집행하지 않겠다’는 건 정부 기관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부적절할 뿐 아니라, 근로시간 관련 법의 신뢰성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정책 수단”이라고 권 교수는 비판했다. “사업주의 애로사항은 중소기업 예산 지원 등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정석이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지난해 7월부터 주 52시간 상한제가 시행된 300인 이상 기업에 대해서도 계도기간 9개월을 부여한 바 있다.

사실 한국에서 노동시간의 기준으로 ‘주 52시간’이 도입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4년 7월, 이른바 ‘주 5일제’ 법이 시행되었을 때부터다. 근로기준법이 정하는 기준 노동시간을 ‘법정근로시간’이라고 한다. 2004년 7월 전에는 주 44시간이던 법정근로시간이 그 이후엔 주 40시간(8시간×5일)으로 단축되었다. 다만 노사가 합의하면 12시간을 추가로 일할 수 있도록 허용해서 ‘주 52시간(40시간+12시간) 상한제’가 등장했다.

그때 도입된 주 52시간 상한제가 15년 뒤인 최근에야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그동안 시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 관련 조항들을, 어떻게 보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해석해온 것과 관련이 있다. 즉,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52시간까지만 일할 수 있다. 단, 일주일은 주말(토·일)을 제외한 5일(월·화·수·목·금)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토·일요일에는 하루 8시간씩 최장 16시간(8시간×2일) 더 일해도 된다.’ 이 해석에 따르면 일주일 동안 일할 수 있는 최장 근로시간은 68시간(52시간+16시간)이다.

‘일주일은 5일’이라는 행정해석 아래서 노동자들은 더 긴 시간을 일하게 되었다.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인 현대차에서도 아예 68시간을 넘겨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동부의 근로시간 감독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노사 모두 심각한 불만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노동자들은 오래 일해 더 많은 소득을 얻고자 했다. 기업도 최소한의 인력을 뽑아 장시간 노동을 시키는 쪽이 편했다. 현대차 노동시간 단축에 관여한 박태주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이 쓴 책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한번은 현대차의 노동시간 단축 문제를 논의하다 노조 간부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노동시간을 골치 아프게 줄이려 들지 말고 회사를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발하면 어떨까요?’ ‘조합원한테 맞아 죽습니다. 저더러 노동운동에서 보따리를 싸란 말입니까?’”

ⓒ연합뉴스민주노총 조합원들이 7월18일 국회 앞에서 열린 총파업 대회에 참가해 ‘탄력근로 개악 중단’이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에 나서지 않는 노동운동계

노동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어들면 노조원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노동시간을 들여다본 일련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장시간 노동은 ‘노사 담합’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연구자들은 또한 노동운동 측이 노동시간 단축에 적극 나서지 않은 것은 세계적으로 특이한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시스템에 균열을 낸 것은 한 소송이었다. 성남시의 퇴직 환경미화원들이 ‘지난 시기 동안 잘못된 방법으로 지급한 휴일수당을 제대로 지급하라’는 소송을 냈다. 미화원들은 보통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5일 동안 하루 10시간씩 일했다. 휴일인 토·일요일에도 4시간씩 추가로 근무했다. 휴일 노동에 대해서는 ‘휴일근로수당(평일 시급의 0.5배를 더 지급)’을 받았다. 당시에도 법정근로시간은 40시간이었다. 이를 넘긴 노동시간에는 ‘연장근로수당(평일 시급의 0.5배를 추가 지급)’도 지급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 가능하다. 즉, 주 40시간을 넘겨 휴일에도 일하면, 연장근로인 동시에 휴일근로이므로, 성남시가 미화원들에게 연장근로수당과 휴일근로수당을 모두(평일 시급의 2배) 지급했어야 했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못 받은 연장근로수당을 달라’는 이야기다.

2011년 서울고등법원은 미화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노동부의 행정해석이 법원에서 깨졌다. 이 사건 외에도 여러 하급심 판결은 ‘일주일이 5일’이라는 노동부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휴일근로이자 연장근로를 한 모든 노동자들은 과거에 받지 못한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라고 소송할 수 있게 될 전망이었다. 또한 일주일이 5일이 아니라 휴일까지 포함한 7일로 다시 규정되면, 그동안 합법화되어 있었던 토·일요일의 16시간(하루 8시간씩 이틀 동안 16시간)이 날아간다. 즉, 법률적인 ‘주 최장 노동시간’이 이전의 68시간에서 휴일의 16시간을 뺀 52시간으로 인정될 것이었다.

고등법원에서 이긴 성남시 환경미화원들의 청구소송은 같은 해(2011년)에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는 이 문제를 법 개정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만큼 민감하고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이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연장수당과 휴일수당을 동시에 줘야 한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면 일시에 최소 7조6000억원, 매년 1조9000억원의 임금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탄원서를 대법원에 내기도 했다. 이 사건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문건에도 등장한다.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법원 판결을 의도적으로 늦췄다는 내용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주 52시간 상한제 전면 이행 공약은, 이처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 ‘폭탄’을 해결한다는 의미였다.

ⓒ연합뉴스주 52시간 상한제는 2004년 주 5일 근무제 법이 시행되면서 도입됐다.

대법원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으로부터 8개월 뒤인 지난해 1월18일에야 성남시 환경미화원 사건의 첫 공개 변론을 열었다. 변론 개시는 대법원 판결이 임박했다는 신호였다. 국회가 바빠졌다. 그 결과, 2018년 2월28일 국회를 통과한 법안이 바로 주 52시간 상한제다.

이 개정 근로기준법에서는 주 최장 노동시간을 기존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정상화’했다. 근로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특례업종을 26개에서 5개로 대폭 축소했고, 공무원과 공공기관에만 적용되던 법정 공휴일 유급휴무를 민간으로 확대했다. 다만 휴일에 연장근로를 하는 경우, ‘당일의 노동시간이 8시간을 넘길 때만 휴일수당과 연장수당을 모두 지급받을 수 있다’는 노동부 행정해석은 그대로 입법화했다. 토요일에 10시간 연장근로를 하면, 8시간은 휴일수당만 받고, 나머지 2시간에 대해서만 휴일·연장수당을 모두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주 52시간 상한제 법제화의 계기였던 성남시 환경미화원들은 토·일요일에 각각 4시간씩만 일했으므로 연장수당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지난해 6월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환경미화원들이 패소했다.

한 주의 최장 노동시간이 52시간으로 법제화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성과다. 그러나 중소기업 대상 법 시행을 한 달도 채 남기지 않은 지금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임금 보전 위한 방법 노사가 고민해야”

일각에서는 노동시간 정상화와 동시에 ‘노동시간 유연화’를 보강하는 보완 입법으로 연착륙 수단을 확보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탄력근로제다. 탄력근로제는 특정 기간(이를테면 6개월)의 평균 노동시간만 주 52시간 이내로 유지한다면, 그 기간 내의 특정 주에는 52시간을 넘겨 일을 시킬 수 있는 제도다(다른 주의 노동시간은 52시간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연장수당은 해당 주의 노동시간 가운데 52시간을 초과한 부분에 대해서만 지급하면 된다. 일이 몰리는 정도에 따라 노동시간을 조정하고 인건비도 아낄 수 있어 기업에 유리하다. 그동안 탄력근로제를 적용할 수 있는 단위 기간이 최장 3개월이고 하루 노동시간을 미리 정해야 하는 등 요건이 까다로워 도입한 기업이 3%대에 그쳤다. 기업은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을 늘리고 요건도 완화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자유한국당도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동시간 단축이 아니라 정상화인데 명분이 없지 않나(환노위 여당 관계자).”

정부·여당의 기류가 정작 52시간 상한제 법이 통과된 2018년 2월 이후부터 묘하게 바뀌어왔다. 조금씩 탄력근로제의 확대를 수용하는 방향이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이 각종 경제지표 악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정부가 노동계와 선을 그어나가는 시기와 일치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전문가는 “최저임금 때문에 수세에 몰린 정부·여당은 기업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할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 면에서 탄력근로제는 정치적 의제였다”라고 말했다. 한정애 민주당 의원은 지난 3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정부·여당이 일단 노동시간은 단축해놓은 상황에서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려 하자 노동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마치 박근혜 정부 때 국회가 정년 60세 연장을 입법한 뒤 임금체계 개편은 나중으로 미룬 상황과 비슷하다. 정년 연장이 ‘기득권’이 된 상황에서 노동계는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에 사후적으로 동의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여론이 주 52시간 상한제를 전면적으로 반기는 것 같지는 않다. 월급에서 기본급 비중이 낮고 연장·휴일수당 비중이 높은 노동자들은 임금 하락을 우려한다. 기업은 사람을 더 뽑고 관리해야 하므로 추가 비용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전의 주 68시간 노동으로 돌아가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은 말한다.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치면서 중소기업들이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다. 그렇더라도 노동시간 단축(정상화) 문제가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의제라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우리 사회가 노동시간을 어떻게 규정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할지 개념을 갖지 못했다. 줄어드는 임금의 보전을 위해서는 일을 좀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노사가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