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1월12일 만난 이자스민 전 의원은 말이 빠르고 막힘이 없었다. 농담을 섞으며 호탕하게 웃는 모습은 다소 굳어 있던 전날 정의당 입당식 때와 달랐다. “국회의원 중 나만큼 욕을 먹은 사람이 더 있을지 궁금하긴 했다”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19대 국회의원 때부터 이 전 의원은 “왜 나를 욕하는지 알려고 일부러 인터넷 뉴스 댓글을 다 읽는다”라고 말해왔다. 이제 답을 찾았는지 물었다. 기자가 질문을 끝맺기도 전에 답을 이어가던 이자스민 전 의원이 이때는 잠깐 머뭇거렸다. “사실 결론 내지 못했다.” 기사 내용과 상관없이 제목만 보고 비방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어서 답을 알기가 어려웠다.

왜 사람들은 ‘제목만 보고’ 그를 비방했을까? 11월11일 입당식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다만 여러분과 그렇게 되는 과정이 달랐을 뿐입니다. 대한민국이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여러분과 같습니다.” 이 전 의원은 사람들의 비방 아래 깊은 곳에서 이런 생각을 읽는다. ‘이자스민은 대한민국 사람이 아니다. 이자스민은 우리와 다르다. 이자스민은 대한민국이 나아지길 우리만큼 바라지 않는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자신이 비난받은 이유를 개별 행동에서 찾지 않는다. 그가 ‘대한민국 사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문제가 생겼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가 만난 문제는 ‘한국인의 경계선’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문제로 확장된다. 이 전 의원은 가장 걱정되는 게 있다고 말했다. “이주여성의 아이들이 ‘사람들이 자스민 이모를 엄청 욕하는데, 엄마도 이모처럼 이주여성인데 그럼 엄마도 나쁜 거야?’라고 얘기하는 게 가장 걱정이다.” 이 전 의원은 한국인의 경계에 있는 사람의 표상이며, 그들에게 부여된 권리가 어디까지인지 묻는 존재다.

‘국회의원 이자스민’은 동료와 똑같은 일을 해도 유독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 전 의원은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권리를 말하려 노력했는데,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 나라서 왜곡되는 경우가 많았다”라고 했다. 2013년 필리핀 태풍 피해 지원 결의안과 2014년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 발의가 그랬다.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을 2010년에 김동성 의원(당시 한나라당)이 발의했을 때는 아무 말도 안 하면서 내가 냈을 때는 왜 욕먹어요?” “태풍 결의안도 나는 정말 조심스럽고 사실 이런 (비난하는) 얘기 나올까 봐 안 하고 싶었는데 동료 의원들은 ‘그렇게 네 모국이 됐는데 결의안 안 내느냐’고 했다. (…) 욕먹을까 봐 되게 지원 범위를 축소해서 냈고, 심지어 통과도 안 됐다. 양당이 합의해서 새로 내놓은 결의안에는 반응도 없고 내가 낸 건 왜 그러냐고, 내가 뭘 잘못했어(웃음)?”

이자스민 전 의원 등 121명은 ‘필리핀 공화국 태풍 피해 희생자 추모 및 복구 지원 촉구 결의안’ 제안 이유에서 “인류애의 정신”에 바탕을 둔다고 적었다. 이 전 의원이 발의한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은 그보다 2년 전 김동성 전 의원 발의안과 내용이 거의 같다.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옹호하는 일반적인 의정 활동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온라인 공간에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스파이” 따위 비방을 들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의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 페이지에는 주로 비방을 담은 댓글 1만4000개가 달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이 전 의원은 2007년 KBS 〈러브 인 아시아〉에서 ‘대가족의 외국인 며느리’로 처음 얼굴을 알렸다. 이후 인기를 얻어 고정 패널이 되었고, EBS에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도 맡았다. 2010년 〈MBC 스페셜〉에 나왔고, 2011년에는 영화 〈완득이〉에도 출연해 ‘완득이 엄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방송 활동을 하던 때와 의원이 된 후 사람들의 평가가 완전히 달랐다고 말한다. “나는 방송에서, 영화에서는 굉장히 박수받고 칭찬 듣던 사람이다. ‘잘 적응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옛날에는 관심받는 이유가 ‘대한민국에서 잘해서, 적응해서’였는데 국회의원이 되자 이제는 ‘너 왜 와 있니?’ 하는 분위기였다.”

ⓒKBS 〈러브인아시아〉 화면 갈무리이자스민 전 의원(가운데)은 2007년 〈러브 인 아시아〉에 외국인 며느리로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사람이 정치인이 된 뒤 비판받는 사례가 드물지는 않다. 정치 입문 전 그가 주목받고 칭찬받은 이유는 다름 아닌 이주여성이라는 정체성이었다. 정치판에 들어와서는 바로 그 정체성이 인종차별적 비난의 빌미가 되었다. 주로 ‘필리핀 출신 이자스민은 한국인이 낸 세금으로 외국인과 국내 불법체류자를 이롭게 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자스민 전 의원이 낸 법안들은 대부분 보편적 권리를 옹호한다는 명분이 있었고, 다른 의원들이 같은 안건을 했을 때 그처럼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혈통주의 때문만은 아닐 것”

한국 사회에 모범적으로 적응했다고 평가받던 이자스민 전 의원은 입법자가 되자 돌연 ‘한국인’ 여부를 의심받게 되었다. ‘혈통’으로 이어진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지 않는 이민자 출신이어서일까? 그는 갸우뚱했다. “혈통주의에서 비롯된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중국 동포, 북한 이탈 주민은 생각해보면 한국인 혈통인데도 차별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는 한국만의 ‘정서적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여러 차례 말했다. “인종주의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 ‘잘사는 나라 (출신)인지 아닌지’라는 기준일 수도 있다. (…) (서양인은) ‘우리보다 잘났고 잘사니까 얘기는 듣자’, (동남아인은) ‘야 너네도 못사는데 뭔 얘기를 하겠냐’는 느낌도 있다.”

‘이자스민 현상’은 매우 상징적이어서 그를 다룬 논문까지 나왔다.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는 2015년에 〈이자스민과 사회적 공연:사회통합 장르로서의 멜로드라마〉라는 논문을 썼다. 논문은 이 전 의원의 등장으로 한국 사회가 느낀 혼란을 다뤘다. 최 교수는 이주자가 시민사회로 편입하는 과정이야말로 사회통합의 핵심 주제라고 썼다. 한 사회가 이주자의 편입이라는 까다로운 과제를 다루는 방식은 크게 셋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동화, 하이프네이션(hyphenation), 다문화주의다. 이 개념은 미국 사회학자 제프리 알렉산더가 제안한 것이다.

세 유형은 한 사회가 중심집단과 외부집단의 속성을 얼마나 동등하게 평가하는지에 따라 나뉜다. 동화는 외부집단 성원들이 ‘오염된 원형적 정체성’을 가진다고 본다. 이 ‘열등한’ 속성을 벗어난 이들만 시민적 삶을 살 수 있다. ‘하이프네이션’은 상대적으로 유연한 사회에서 나타난다. 외부집단은 여전히 오점이 있다고 평가받지만, 대화와 이해를 통해 시민사회에 편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문화주의는 이주자가 지닌 원형적 속성을 분리하지 않고, 그 가치를 인정하려 한다.

최 교수의 논문은 이 삼단 분류를 분석틀로 ‘이자스민 현상’을 해석한다. 한국 사회는 이주여성에 대해 동화정책을 표방하는데, ‘국회의원 이자스민’의 존재가 이와 부딪친다는 진단이다. 이는 이자스민 전 의원이 언급한 ‘한국만의 정서’와 일맥상통한다. “전통적 이민국가들, 이를테면 캐나다는 인구의 6%가 이민자다. 우리는 4~5%다. 비율상으론 비슷하지만 거기는 이민국가고 우리는 아니다(웃음). ‘이민자 비율이 5% 넘어가면 다문화사회’라고 하는데, 아니다. 우리만 갖고 있는 문제가 있다.” 외부인의 수가 아니라 그들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연합뉴스이자스민 전 의원(왼쪽 네 번째)이 2013년 4월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후보와 함께 유세에 나섰다.

이자스민 전 의원이 인터뷰에서 소개한 일화는 ‘이주여성은 동화를 거쳐야 완전한 한국인으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강연할 때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게 있다. 지방에 가면 시어머님들이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돼야 너처럼 되니?’ 자기 며느리가 외국인인데 얼마나 걸리느냐고. 깜짝 놀라서 ‘무슨 의미죠 어머니?’ 했더니 ‘너처럼 한국말도 잘하고, 잘나서 외부 활동을 하고, 어른들도 이렇게 (잘 모시고). 이게 얼마나 걸리는 거니?’” 이 전 의원은 “시어머니나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서 자신감 있게, 씩씩하게 할 수 있었어요”라고 답했다고 했다. 이 문답은 완전히 호응하지 않는다. ‘얼마나 걸리는지’는 일방의 적응이 전제인 어법인데, 이 전 의원은 여기에 대해 ‘서로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답변했다.

모범적 한국인으로 평가받은 ‘며느리 이자스민’이 국회의원이 되자 잠재되어 있던 문제가 불거진다. 최종렬 교수는 필리핀 지원 결의안·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 발의 등 “보편적 인류애”를 추구한 이 전 의원의 행위가 한국 사회에서 “국민국가를 넘어선 상상”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썼다. 최 교수는 이 전 의원이 논란을 사게 된 의정 활동들이 “한국의 국가 이미지와 국제적 위신을 드높이”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적었다. 문제는 제안자의 ‘혈통’이었다. 외국에서 태어난 것뿐만 아니라 이주여성이라는 지위도 문제였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여성은 ‘동화’의 대상이며 이를 통해서만 보편적 시민이 된다. 이자스민 전 의원에 대한 불만을 최 교수는 이렇게 묘사했다. “국회의원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 감히 인류애라는 보편성을 추구하다니! 인류애를 주창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의 정치공동체 성원이면서 같은 혈통인 반기문과 같은 지구적 엘리트여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낼까”

이자스민의 존재는 나아가 한국인이 소속감의 경계선을 구성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최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이자스민은 국민적 어휘를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다가도 어떨 때는 보편적 어휘를 사용한다. 그럴 때마다 한국인은 탈영토화 체험을 한다.” ‘민족’이나 ‘국민’ ‘국가’ 등이 국민적 어휘이다. 일상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를 공유할 때는 갈등이 없다. 이를테면 ‘우리 국민들의 세금을 다른 나라에 지원하지 말자’거나 ‘다른 국가에서 온 불법체류자에게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편안하게 받아들여진다. “정의의 내용이 무엇인지 논의가 분분할 수는 있지만, 정의의 당사자가 국민이라는 점은 한 치의 의심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자스민이란 낯선 국회의원의 등장은 바로 이 ‘편안함’을 깨트린다. 그의 존재는 “혈통이 다른 이자스민이 국회의원의 탈을 쓰고 정의의 당사자를 바꾸려” 하는 시도로 받아들여진다. 이 맥락에서 그는 존재 자체로 공격이 된다.

기자가 소통이 덜 되었다고 여겨 비슷한 질문을 여러 차례 하는 장면이 몇 번 있었다. ‘우리 몫을 빼앗아서 외부인(이주여성, 난민)에게 주지 말라’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이 전 의원은 “부정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찾아서 설득할 수밖에 없다. 차별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보는 분들이 목소리를 내줘야 한다”라고 답했다. ‘예멘 난민이 들어오면서 범죄 우려가 나왔다’는 말에는 “난민법이 있으면서도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창피할 만큼 난민을 적게 받는다”라고 말했다. ‘여성이 난민의 범죄 공포를 말하는 현실에서 사회적 합의 방안’을 묻자 “공포 확산은 반대자들의 쉬운 수법이다. 혐오 표현 규제를 고려해야 한다”라고 했다. 묘한 공통점이 있다. 이 전 의원의 답변에는 인류애가 깔려 있었다. 일종의 정언명령인 인류애는 한국인의 권리 앞에서 멈출 수 없다는 것이 전제였다. 이런 경합 상황에서 이주여성 의원의 선택은 ‘보통 한국인’과 구분된다. “다른 의원에게 부탁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안 받아준다. 내가 안 하면 아무것도 없다. 이 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공론화를 할 수가 없다.”

ⓒ시사IN 신선영2018년 6월 예멘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집회 모습.

그렇다면 이 ‘경계선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상징인 그를 우리 사회는 왜 다시 보아야 하는가? ‘공고한 경계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계속 편안하게 살 수는 없나? 이자스민 전 의원의 지향은 이상에 가깝지만, 그가 이 질문에 답하는 논거는 현실에 발 딛고 있다. “어차피 우리가 문 닫지 않는 한, 못 나가고 못 들어오지 않는 한 계속 섞인다. 나갈 사람은 나가고 들어올 사람은 들어온다. 대비를 하자는 것이다.” 이민정책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주자를 모두 받아들이자는 의미가 아니라고 했다. “‘외국인을 받아들여서 파리에서처럼 폭동이 일어나면…’ 이게 아니라, 그게 안 일어나게끔 우리가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민국가가 아니다. 다문화사회로 갈지 안 갈지 결정 안 했다’ 이런 반복적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그가 거론한 논의 과제는 이민을 어떻게 볼 것인지, 이민자의 정의를 어떻게 규정할지, 어디서 어디까지 이민자를 받을지 따위였다. “열어서 이민국가가 되자는 게 아니라 다수가 결정하는 부분을 수용해서 ‘어떻게 잘사는 사회를 만들어낼까?’라는 고민을 갖고 있다.”

ⓒ시사IN 조남진11월11일 정의당 입당식에서 심상정 대표가 이자스민 전 의원과 포옹하고 있다.

‘공고한 경계선’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이자스민 전 의원이 그걸 끝낸 게 아니다. 이미 끝났기 때문에 이자스민 전 의원이 등장한 것이다. 이제 그는, 자신의 등장이 한국 사회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묻고 있다.

이자스민 전 의원의 복귀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입당식에서 그는 고 노회찬 전 의원의 ‘6411번 버스 연설’을 인용했다. 새벽 5시 버스를 타고 일터에 가는 미화원들이 “존재하되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이라고 한 연설이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6411번 버스가 지나는 구로, 대림, 영등포는 서울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은 곳이다”라고 말했다.

인구 20명 중 1명은 이주자이고, 각자 방식으로 사회에 기여하며 살고 있고, 앞으로 그 수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언제까지 토착민의 모든 것을 공유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사람들을 한국인의 경계 밖에 방치해둘 수 있을까? 그들이 한국인의 경계 밖에 있는 사람이라면, 기본권을 어디까지 보장하는 게 옳은가? 이자스민 전 의원이 다시 악성 댓글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은 탓에, 많은 한국인들이 떠올리게 될 질문이 돌아왔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