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선박 수주 기준으로 세계 1위는 현대중공업, 2위는 대우조선해양이다. 글로벌 1, 2위 두 조선소가 합칠 전망이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조선업종 세계시장의 20% 이상을 점유하는 초대형 조선소가 탄생하게 된다.

대우조선의 주인은 국책 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이다. 산업은행은 1999년 파산 직전까지 몰린 대우조선에 자금을 수혈해서 살려냈다. 빌려준 것이 아니다. 당시 대우조선이 발행한 주식을 대량 매입했다. 그 덕분에 대우조선은 빚을 갚아야 하는 부담 없이 거액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대신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지배주주(2019년 6월 현재 지분율 56%)로 등극했다. 대우조선은 국유기업이었다.

앞으로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인수하려면, 산업은행이 보유한 대우조선 지분 56%(2조1000억원 정도로 평가)를 매입해야 한다. 산업은행에 현금 2조1000억원을 주고 대우조선 주식을 받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좀 색다르고 복잡한 방식을 선택했다.
 

ⓒ연합뉴스5월16일 전국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개최한 ‘법인분할 저지 결의대회’에서 노조원들이 법인분할에 반대하며 박을 깨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대강 다음과 같다. 우선 ‘물적분할’로 지금의 현대중공업을 ‘지주회사(자회사의 주식을 보유·관리하는 회사)’와 ‘사업 자회사(선박·엔진·해양플랜트 등을 생산하는 업체)’로 쪼갠다. 지주회사 이름은 조선해양, 사업 자회사는 현대중공업(이하 ‘신설 현중’)으로 부르기로 했다. 다음 단계에서는 조선해양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우조선 주식을 받는다. 이로써 조선해양은 신설 현중 이외에 대우조선까지 사업 자회사(이외의 자회사로는 삼호중공업과 미포조선)로 편입하게 된다. 이제 산업은행에 대가를 줄 차례다. 현금 대신 ‘다른 것’을 제공하기로 했다. 조선해양이 발행할 2조1000억원 상당의 자사(조선해양) 주식이다. 이로써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의 주인(지배 주주) 지위를 잃는 대신 조선해양의 대주주(7%)가 된다.

사실 산업은행은 조선해양에 훨씬 지배력 높은 주주로 입성할 수 있었다. 2조1000억원 상당의 주식이라면, 조선해양 기업가치의 17% 정도에 달한다. 실제 지분은 7%에 그쳤다. 2조1000억원 가운데 8400억원 상당에 대해서만 ‘의결권 있는 보통주’로 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1조2500억원은 ‘의결권 없는 우선주(대신 배당금 등에서 보통주보다 유리한 처우를 받음)’다. 이는 조선해양의 1대 주주(28%)가 될 ‘현대중공업지주’를 배려한 조치로 보인다. 현대중공업지주(이하 ‘현중 지주’)는 지금의 현대중공업을 31%의 지분으로 지배하는 최상위 지주회사다(그러므로 조선해양은 ‘중간 지주’다). 현중 지주의 최대 주주는 정몽준 전 의원(25.8%)과 그 아들인 정기선 부사장(5.1%).

결과적으로 현중 측은 현금을 거의 내지 않고 대우조선을 일단 인수하게 되는 셈이다. 더욱이 산업은행 측에 현금 대신 제공할 조선해양 주식 역시 절반 이상(1조2500억원)이 우선주라서 현중 지주(나아가 정몽준 일가)의 그룹 지배력을 위협당할 위험까지 줄였다. 일거양득이다.

 

 

 

 


산업은행, 나아가 정부 측 입장에서 본다면, 현중 측과 정몽준 일가에게 대우조선을 기꺼이 인수할 만한 ‘사탕’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산업정책 측면에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을 합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인 듯하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등 한국의 ‘조선 3사’는 기술력으로나 규모로나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거인들이 국내외 시장에서 치열하게 격돌한다. 선박 수주를 받기 위해 가격을 지나치게 내려주기도 한다. 이 같은 ‘제 살 깎아먹기’를 피하려면 차라리 ‘2개 조선사 체제로 가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대우조선 민영화는 역대 정부의 ‘숙원’

조선산업은 글로벌 경기에 유달리 민감하다. 선박 수요가 경련하듯 위아래로 요동친다. 조선업체가 치솟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제조 설비와 인력을 한창 늘리고 있는데 갑자기 수주 물량이 사라지기도 한다. 조선사들이 다시 설비와 인력을 줄이는 과정에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과 혼란이 초래된다. 2015년 전후의 상황이 이랬다. 최근 글로벌 조선업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지만 미래를 완전히 낙관하긴 어렵다. 그래서 국가 차원의 선박 생산능력(설비와 인력) 규모를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와 함께 1999년 사실상 국유화된 대우조선을 다시 민영화할 필요도 있었다. 그동안 대우조선은 사실상의 국유기업이었지만 ‘세계 최대’ ‘세계 최초’의 선박과 기술을 무수히 선보인 글로벌 조선업계의 총아였다. 그러나 정치인(과 그 주변인)들이 대우조선의 수익 흐름에 끼어들어 약탈하는 양상이 숱하게 벌어졌다. 글로벌 조선 경기가 나빠지거나 경영 실패로 대우조선의 재무 상태가 악화되면 국가의 돈을 투입해야 했다. 여기 사용된 공적자금이 10조원을 훨씬 웃돈다. 이럴 때마다 ‘(민간경제 부문의)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질타가 나왔다. 대우조선의 민영화는 역대 정부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산업은행이 어떻게든 현대중공업으로 하여금 대우조선을 인수하게 하려고 몸부림치는 듯한 양상이 보이는 것은 이런 사정 때문이다.

 

 

 

 

 


울산의 지역사회와 현중 및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물적분할’이라는 낯선 용어가 현중 측에 대한 의심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현중 노조 측은 물적분할에 따라 “울산 현대중공업은 빈껍데기이자 하청 공장에 불과하게 된다”라고 주장한다. 지주회사인 조선해양은 서울로 가게 되어 있다.

물적분할은 ‘기업분할’의 한 종류다. 기업분할은 하나의 회사를 두 개 이상의 회사로 쪼개는 작업이다. 기업은 부동산·설비·돈·지적재산 등 다양한 자산을 보유한다. 외부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리기 마련이기 때문에 부채 상환 의무도 지닌다. 또한 여러 주주들이 해당 기업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다. 이처럼 기업은 권리와 의무의 덩어리다. 이 덩어리를 여러 개로 분할하면 권리·의무 역시 적절히 분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해당 기업 소유자들의 권리관계가 분할 과정에서 변동되어서는 안 된다. 단지 기업을 쪼개는 것만으로 자신의 몫이 작아진다면 어떤 소유자도 분할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소유자들의 지분을 보전하면서 기업을 쪼개는 방법으로는 크게 인적분할과 물적분할이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한 사례를 들어보자(위 그림 참조). A씨와 B씨가 1억원씩을 각각 출자해서 식료품과 공산품을 파는 2억원 상당의 소매점을 창업했다. 소매점에 대한 두 사람의 지분(소유권)은 각각 50%다. 어떤 이유로 인해, 두 사람은 기존 소매점에 식료품 판매 부문(가치는 1억원으로 가정)을 남긴 채 공산품 판매 부문(1억원)만 떼어내 새로운 업체를 만들기로 했다. 두 사람이 각각 50%의 지분을 가졌던 소매점이 식료품 판매업체와 공산품 판매업체로 분할된 것이다. 양 업체에 대한 두 사람의 권리는 어떻게 될까?

우선, 두 사람이 당초 소매점에 대한 자신의 지분을 쪼개진 양 업체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유지하는 방법이 있다. 즉, A씨는 식료품 판매업체의 지분 50%, 공산품 판매업체의 지분 50%를 가진다. B씨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의 권리관계는 분할 이전과 동일하다. A씨는 분할 이전에 ‘2억원 가치 업체’의 50%를 소유했다. 분할 이후엔 ‘1억원 상당 가치 업체’ 두 개의 소유권을 50%씩 갖게 된다. B씨도 그렇다. 또한 떨어져나간 회사(공산품 판매업체)의 소유권이 A와 B라는 ‘사람’에게 돌아갔다. 그래서 ‘인적(人的)’분할이라고 부른다.

A, B씨가 식료품 판매업체에 대한 각 50%씩의 지분을 그대로 유지할 수도 있다. 다만 그 식료품 판매업체가 공산품 판매업체의 소유권을 100% 갖게 한다. 두 사람의 권리관계는 분할 이전과 동일하다. ‘1억원 상당 업체(공산품)’를 가진 ‘1억원 상당 업체(식료품)’의 소유권을 50%씩 보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엔 떨어져나간 회사(공산품 판매업체)의 소유권이 사람이 아니라 식료품 판매업체, 즉 사물(事物)에 귀속되었다. 그래서 ‘물적(物的)’분할이다.

 

 

 

 

ⓒ연합뉴스6월3일 대우조선해양 노조의 회사 정문 봉쇄로 ‘현장 실사’에 실패한 현대중공업 실사단이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지금의 현대중공업은 조선해양과 신설 현중으로 분할된다. 조선해양이 신설 현중의 지분을 100% 소유한다. 그래서 물적분할이다. 다만 A, B씨의 소매점과 현대중공업의 물적분할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A, B씨의 두 업체는 모두 판매 ‘사업’을 한다. 현중의 경우는 다르다. 신설 현중은 선박, 엔진 등을 만드는 ‘사업’을 영위한다. 그러나 지주회사인 조선해양의 핵심 업무는 ‘자회사 주식 보유’와 ‘지배’ 그 자체다. 지주회사는 그룹 차원의 경영방침 아래 자회사들 간의 관계를 조율한다. 자회사에 투자하고 이에 대한 배당금도 받는다.

기업분할에서 또 하나 중요한 문제는, 분할 이전 업체의 자산과 부채를 나누는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분할 이후 업체의 사업에 따라 그에 속하는 자산과 부채를 가져가게 되어 있다. A씨와 B씨의 소매점이라면, 분할 이후의 식료품 판매업체는 빵·라면·음료수·냉장고 등을 자산으로 배분받는다. 아직 공급업체에 결제하지 않은 상태라면 외상금은 부채로 식료품 판매업체를 따라갈 것이다. 공산품 판매업체는 면도기·건전지·볼펜 등 공산품을 자산으로, 아직 대금을 치르지 못한 칫솔과 라이터 외상금은 부채로 가져간다. 만약, 공산품 판매업체의 부채에 라면 외상금까지 포함되어 있다면 이는 부당한 조치일 수 있다.

‘신설 현중 부실화 꼼수’는 사실일까

현대중공업의 경우, 분할 업체 간 자산과 부채의 배분이 지주회사인 조선해양에 지나치게 유리하다는 여론이 거세다. 외견상으로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현중 측이 6월3일 낸 ‘합병 등 종료보고서’에 따르면, 분할 전 현대중공업의 부채총계(2018년 9월30일 기준)는 7조2200억원이다. 이 부채가 신설 현중에는 7조600억원이나 배정된 반면 조선해양의 부채는 1600억원에 불과하다. 합병 전후의 부채비율(부채총계/자본총계)을 보면, 기존 현대중공업은 62%였는데, 분할 이후에는 조선해양 1.5%, 신설 현중 114.2%로 계산된다. ‘울산 현대중공업엔 부채만 남겼다’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노조는, 신설 현중의 부채비율을 높여 부실기업으로 보이게 한 다음 인력 구조조정을 강행하려는 사용자 측의 ‘꼼수’라고 주장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나친 우려다.

신설 현중에 배정된 부채 가운데 상당 부분은, 예전에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빌렸고 일정한 기간 내에 이자를 붙여 상환해야 하는 ‘외부 차입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계상 부채’이지만 일반적 의미의 ‘빚’은 아니다. 먼저, 신설 현중의 부채 7조600억원 가운데 1조7600억원은 재무제표에 ‘계약부채’로 잡혀 있다. 선박은 스마트폰이나 선풍기처럼 짧은 기간 내에 만들 수 있는 품목이 아니다.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이 걸린다. 그래서 고객으로부터 먼저 대금(선수금)을 받는다. 이 선수금을 장부에 ‘계약부채’로 기입한다. 부채로 잡는 이유는 현금을 상환할 필요는 없지만 선박을 인도할 의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회계에서 부채는 의무와 비슷한 의미다. 선박 건조 및 인도가 완료되면 계약부채를 ‘매출’로 바꿔 장부에 기입한다. 신설 현중에 배정된 유동 충당부채(6600억원)와 비유동 충당부채(6900억원) 역시 외부에서 빌렸거나 갚아야 할 돈이 아니다. 이후 발생 가능한 ‘사고’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부채로 잡아놓았을 뿐이다. 예컨대 현대중공업의 선박을 매입한 고객들이 해당 상품의 하자 보수나 부품 수리를 요구할 수 있다. 혹은 선박 건조 중 불거진 환경오염을 복원하는 데 회사의 돈이 들어갈 수도 있다. 그 시기와 금액을 추정해서 충당부채로 기입한다. 1년 내에 사고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면 유동 충당부채, 그 이후라면 비유동 충당부채다. 사고가 나지 않는다면, 충당부채로 잡은 항목을 지우게 된다. 신설 현중의 ‘매입채무 및 기타채무’로 기입된 1조5100억원 역시 원자재·중간재 등을 구입한 대가로 지급해야 할 외상 대금이지 외부 차입금은 아니다.

현중 그룹이 어떤 ‘음모’를 꾸민다고 가정하더라도 신설 현중에 부채를 몰아넣는 방법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우선 지주회사인 조선해양은 자회사인 신설 현중의 부채에 책임을 져야 한다. 상법에 따르면, 분할된 회사들은 ‘분할 이전의 채무’에 대해 ‘연대해서 변제’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또한 금융시장은 물적분할로 나눠진 기업들을 ‘지주회사는 우량기업인데 자회사만 불량기업’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시장에서 그룹 소속 기업들의 재무 상태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는 ‘연결재무제표’다. 모기업(지주회사)과 자회사의 자산과 부채를 합산한 다음 양 회사 간의 내부거래를 차감해서 작성한다. 내부거래를 빼는 이유는, 모기업과 자회사 간 돈의 흐름을 ‘같은 금고 내의 움직임’으로 보기 때문이다. 즉 조선해양이 자회사인 신설 현중의 부채를 부풀리면, 조선해양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 조선해양은 연구개발 및 엔지니어링 기능을 갖게 되므로 신설 현중에 특허권이나 설계 명목으로 높은 수준의 수수료를 요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설 현중으로부터 아무리 많은 수수료를 받아도 조선해양의 재무 상태가 개선되지는 않는다. 연결재무제표상 ‘같은 금고 내의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왼쪽 두 번째)과 권오갑 현대중공업지주 부회장(왼쪽 세 번째)이
3월8일 대우조선해양 민영화 본계약을 체결했다.

 


지금 현대중공업의 자산은 어떻게 배분되었을까? ‘합병 등 종료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의 자산총계(건물·기계 같은 유형자산과 현금·주식 등 금융자산)는 18조8600억원이다. 분할 이후 조선해양의 자산은 11조3700억원, 신설 현중은 13조2300억원이다. 자회사 관리 및 연구·개발 업무만 수행하는 조선해양의 자산이 지나치게 크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선해양은 자회사(신설 현중, 대우조선, 미포조선, 삼호중공업 등) 주식을 보유하는 지주회사다. 그 주식의 가치가 크면 자산 역시 크게 잡힌다. 조선해양 자산(11조3700억원) 가운데 8조6100억원이 ‘종속기업, 관계기업 및 공동기업투자’로 분류되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물적분할 자체에 어떤 엄청난 꼼수가 숨어 있다거나 자산·부채를 부당하게 배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중과 대우조선 노동자 처지에서는 각별한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적분할과 별도로 인수합병 그 자체에 따라 조선업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이 격화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사업 영역은 해양플랜트로부터 LNG선에 이르기까지 겹치는 부분이 많다. 합병 이후 중복되는 업무 인력을 구조조정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동남권 지역의 중간재 납품업체들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현대중공업은 선박 엔진 등 중간재를 계열사로부터 납품받지만, 대우조선은 외부 업체에 수주해왔기 때문이다. 이후 조선해양의 자회사가 된 대우조선이 현중 계열사로부터 중간재를 납품받으면 외부 부품업체들이 줄도산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지주회사인 조선해양이 서울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서는 노조뿐 아니라 지역사회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당장 질 좋은 일자리(경영·연구개발 등)와 세수가 지역사회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연구개발 기능까지 수도권으로 이전되어 울산의 현장과 분리될 때 혁신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송철호 울산시장과 황세영 울산시의회 의장은 지난 5월29일 조선해양 본사를 울산에 존치하라며 삭발했다. 회사 측은 조선해양을 서울에 두는 것에 대해 ‘연구개발 인력 유치가 쉽고 수도권에 흩어져 있는 연구개발센터와 협력을 위해서’라는 원론적 입장이다.

국내외 당국, 합병 승인은 미지수

현대중공업 측은 5월31일 오전 10시 울산시 한마음회관에서 물적분할 관련 주주총회를 열기로 했다. 현중 노조가 주총을 무산시키기 위해 한마음회관을 점거한 상태였다. 현중 측은 당일 오전 10시30분에 주총 장소와 시간을 바꿔 통지했다. 오전 11시10분에 울산대 체육관에서 주총을 열기로 한 것이다. 이날의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주총으로 물적분할 안건은 일단 통과되었다. 후폭풍이 거세다. 현중 노조는 이날 주총을 불법적 날치기 처리라며 무효 소송(상법에 따르면 주주들에게 주총 시간과 장소를 2주 전에 알리게 되어 있다)을 예고했다. 6월11일 현재 하루 4시간 부분파업을 시행 중이기도 하다. 현중 측이 대우조선의 가격을 산업은행과 최종 조율하기 위한 절차인 ‘현장 실사’ 또한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회사 출입구 봉쇄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현장 실사를 완료하지 못한다고 해도 인수합병 절차는 진행될 수 있다. 현중과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을 조선해양의 자회사로 편입시키기까지는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의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결합심사란, 기업들이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워 관련 시장을 독점하는 경우를 차단하기 위한 절차다. 특정 기업이 시장에서 절대적 힘을 갖게 된다면, 중간재 가격과 선박 가격을 멋대로 책정하지 않을까? 지난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의 수주 실적은 각각 세계시장의 13.9%와 7.3%에 이른다. 합치면 무려 21.2%로 세계 1위다. 당연히 기업결합심사 대상이다. 우선 국내 공정거래위원회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만약 대우조선이 지금도 적자를 내고 있다면, 현중이 시장에 대한 독점적 지배력을 누릴 가능성보다 ‘부실기업 인수로 인한 사회적 효익 증대’ 쪽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우조선은 2017~2018년 연속 흑자를 냈다. 지난 1분기에도 2000억원 상당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공정위가 현중의 대우조선 인수에 따른 과점이 납품업체의 가격 책정에 압도적 영향을 미쳐 시장 질서를 해친다고 판단한다면, 합병은 불허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해외 당국의 승인 여부다. 일본, 유럽연합(EU), 중국 등 10여 개 국가로부터 각각 승인을 받아야 한다. 조선업종은 글로벌 산업이기 때문에 해외 정부도 한국 기업들 간의 인수합병에까지 개입할 수 있다. 일본·중국 등 조선업 강국은 물론 세계적 해운사들을 보유한 EU 국가들도 초대형 조선사의 탄생에 심각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해운업체는 조선사로부터 선박을 구입해서 물류사업에 사용하므로, 현중의 대우조선 인수가 선박 가격에 미칠 영향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조선 3사 체제’가 ‘2개 조선사’로 재편되면 국내 경쟁이 줄어들면서 선박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 즉, 해외 당국들이 현중의 대우조선 인수를 승인할지도 아직 미지수다. 이 같은 국내외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해야 비로소 조선해양과 산업은행의 주고받기가 가능해진다. 항로가 길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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