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화도는 늦봄에 가장 걷기 좋다. ‘아래꽃섬’이라,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을 붙인 이는 누구일까. ‘아래’ ‘꽃’ ‘섬’. 뜯어놔도 모두 겸손하고 곱다. 여수의 ‘365개 생일섬(생일과 지역 섬을 짝지은 것)’ 가운데 해마다 동백과 섬모초, 진달래가 몸을 뒤덮어 많은 이들을 황홀하게 하는 하화도를 걸었다. 배를 대기 좋은 항구가 있고, 섬만이 지닌 고즈넉함에 폭 안기고 싶은 꽃섬이다. 꽃길만 걷다 보면, 시끄러운 세상살이쯤 한나절 잊히겠지.

여수신항이 있는 돌산도 방향이 남해를 오목하게 끌어안고 있는 왼팔이라면, 하화도는 그 오른팔인 여수 백야선착장에서도 40분쯤 가야 하는 섬이다. 다도해 사이에 살짝 숨어 있어 여수 거문도나 돌산도, 금오도 등 인기 섬에 비해 아직은 아는 이가 많지 않다. 하지만 비교적 여객선이 자주 드나드는 섬인 데다, 꽃섬길 트레킹과 출렁다리가 놓이고 산책하기에 잘 관리된 산책로가 생기면서 선착장 앞이 많이 분주해졌다.

ⓒ김민수하화도 유채꽃

백야도나 여수항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배를 타고 하화도 트레킹을 거쳐 낭도에서 짐을 푸는 캠핑객도 많아졌다. 불러주는 이가 많아서 꽃섬이 된 걸까? 하화도는 이름이 참 많다. 긴 꼬치처럼 생긴 모양 덕에 ‘꼬치섬’으로 불리다가 ‘꽃섬’이 되었다고도 하고, 항해를 하던 이순신 장군이 동백꽃과 섬모초, 진달래꽃이 섬 전체에 많은 것을 보곤 꽃섬이라 지었다고도 전해진다. 그런가 하면 지형이 소의 머리 같다고 하여 한때는 ‘소섬’으로도 불렸다.

ⓒ김민수하화도 부속섬 장구도
봄철에만 맛보는 ‘꽃섬 백반’

하화마을 앞 서북쪽 1㎞ 지점의 꽃섬을 ‘웃꽃섬(上花島)’, 하화도는 ‘아래꽃섬(下花島)’이라 부른다. 하화도 건너편, 산봉우리 2개가 불쑥 솟아오른 섬이 바로 상화도다. 동생 하화도가 남풍을 막아주고, 형 상화도는 북풍을 막아주는 사이좋은 섬이다. 진달래·찔레꽃·유채·구절초·부추꽃·원추리 등 철마다 바뀌는 꽃들이 섬에 내리는 순간부터 안구를 정화해주는데 그 꽃길을 걷다 보면 화장실과 마을회관 곳곳에 돼지저금통이 놓여 있다.

자세히 보니 저금통 안은 지폐로 가득한데 바닥이 접착제로 붙어 있지도, 경고 문구도 없다. “아니, 이렇게 돈이 든 돼지저금통을 한가롭게 밖에 둬도 되느냐”라고 우문(愚問)을 하니 “열 가구도 안 되는데 죄 짓고 어딜 도망간대?(웃음)”라는 주민 아주머니의 현답이 돌아온다. 사람들이 제법 사는 상화도와 달리 하화도의 인구는 고작 몇 가구. 하화마을이 ‘범죄 없는 마을’로 불리는 이유다.

섬의 공식 야영장에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소박한 캠핑 음식으로 점심상을 차려먹는다. 바다를 바라보고 가지런히 늘어선 야영장이니, 서로 오션뷰를 차지하겠다고 싸울 일도 없다.

이제 소화시킬 차례. 소수의 사람에게만 보여주겠다는 듯 하화도의 절경은 도보 트레킹에 최적화되어 있다. 차로 질주하다 보면 망가지는 풍광이다. 푸근한 엄마 품처럼, 완만하고 낮은 구릉으로 이뤄진 하화도는 만만하게 걸을 수 있는 자그마한 섬이다.

목재 데크로 만든 큰산전망대와 깻넘전망대는 개도·백야도·금오도 등 다도해의 섬이 한눈에 들어오는 포인트인데, 전망대에선 고흥 외나로도의 나로우주센터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편하게 산책해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어서일까. 제반 시설이 부족해 상대적으로 찾는 이가 적은 상화도에 비해 많은 트레커들이 온다. 꽃이 피듯 갯것이 많이 피어나는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쌀밥 위에 얹어 먹으니, 입안에 바다의 맛이 돈다.

가게 하나 없는 상화도와 달리 하화도는 더 작지만 식당도, 민박도 있다. 전라도의 섬답게 해물쌈밥정식, 생선구이, 서대회무침, 갑오징어무침, 병어회 등이 입맛을 돋운다. 특히 봄철에만 즐길 수 있는 꽃섬 백반은 꼭 맛봐야 할 메뉴. 캠핑을 할 경우 선착장 슈퍼에서 우럭이나 갓김치, 막걸리를 사와도 좋다.

ⓒ김민수하화도 출렁다리

전망대에 적힌 시 한 편

섬사람들의 권주 한 잔에 까무룩 잠이 들거나, 갑작스러운 파도에 발이 묶이기도 하는 것이 섬 여행이 아니던가. 게다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섬에 간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화도는 사람들이 잠시 산책만 하고 빠져나간 섬에서 선택적 고립을 하기 좋은 섬이다. 완벽한 ‘멍때림’이나 고립을 생각하고 이 섬을 찾았다면 다소 소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마냥 낭만적인 공상에만 젖어 있다가 선착장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많은 기사들과 식당 아주머니를 보면 ‘그래 이게 시장경제지’ 하며 문득 현실로 소환되는 재미도 있다.

자전거 캠핑을 즐기는 라이더도 많이 찾는데, 섬의 공식 야영장인 애림민 야생화공원에는 식수대와 화장실이 생겨서 쾌적한 캠핑이 가능하다. 숙영지가 서해를 향해 있으므로 타임랩스 촬영으로 해놓고 일몰을 감상해보자. 객들은 섬에 왔다 가는 것뿐인데, 주민들은 마치 꽃을 돌보는 것처럼 먹을 것, 잘 곳이 부족하지나 않을까 이방인을 보러 와준다. 전망대에 적힌 시 ‘화도’에 시선이 꽂힌다. ‘한 번도 꺼내지 못한 속내를 슬쩍 내려놓아도 좋을 섬/ 남실남실 꽃마실 가는 섬/ 육지에서 굴러온 나를 꽃이라 불러주는 섬.’ 쉬이 속내를 꺼내지 않아도, 이 섬은 육지에서 굴러온 내게 꽃이라 불러줄까.

섬에 들어가는 방법

하화도 들어가는 배는 여수시 백야선착장과 여수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탈 수 있다. 백야선착장에서는 약 50분, 연안여객터미널에서는 1시간30분~2시간이 걸린다(문의:여수 연안여객선터미널/ 061-662-5454, 백야선착장/ 061-686-6655).

섬에서 할 수 있는 일

하화도 ‘꽃섬길’ 둘레 코스로 한 바퀴 돌다 보면 꽃과 바다, 한려수도 비경을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다. 섬 모양을 하이힐로 봤을 때, 발목 쪽에 해당하는 선착장에서 시작해 야생화공원에서 앞코 부분에 해당하는 막산전망대까지 내려가 꽃섬다리를 건너면 발바닥 부분의 큰산전망대와 순넘밭넘전망대를 건너 굽 부분의 낭끝전망대에 닿게 된다. 특히 낭끝전망대의 온통 평평한 암릉은 당신을 조용히 명상하도록 만들 것이다. 꽃섬길은 총 5.7㎞로, 험한 코스는 나무계단으로 오르내리므로 초등학생부터 노인까지 충분히 완주할 수 있다.

하화도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큰산전망대에서는 촬영용으로 ‘love’ ‘dream’ 같은 단어가 들어간 나무 타일을 준비해두었으니 꼭 사진을 찍고 내려갈 것. 인생 사진을 얻는 포인트다. 지난해 봄 섬의 끄트머리 절벽 위에 세워진 ‘하화도 꽃섬다리’는 봉우리 두 개를 이은 그 아찔함으로 하화도의 랜드마크가 됐다. 특히 다리 아래 천 길 바다, 섬이 숨을 쉬는 구멍 같은 큰굴(용굴)은 깻넘전망대와 막산전망대 사이에 있는데, 벼랑을 따라 조성된 데크길에서 바라보는 천 길 낭떠러지가 백미다. 예전에 바다를 통해 오가던 밀수꾼들이 물건을 숨겨두는 장소였다는데, 장구도와 이어진 140m의 다리에 올라서니 야음을 틈타 큰 굴을 드나들었을 밀수꾼들의 움직임이 보이는 듯도 하다. 총길이 100m, 폭 1.5m로 욕지도나 사량도 등 다른 섬의 출렁다리치고는 긴 편이다.

기자명 박찬은 (〈매경 시티라이프〉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