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 기억나지? 툭하면 “목을 쳐라” 소리 지르는 앙칼진 여왕과 트럼프 카드 병정이 설치던 나라에서 좌충우돌하던 앨리스의 이야기. 그런데 이상한 나라는 앨리스가 간 나라 말고도 많았단다. 그런 이상한 나라 중의 하나 얘기를 들려줄게.

이 나라는 명색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공화국을 표방하고 있었어. 국가원수 선출 선거를 하긴 하는데 대개 한 후보에 대한 찬반 투표로 결정됐고, 찬성률은 99.9%로 경이적인 스코어를 기록했지. 체육대회 같은 행사가 열리면 최고 지도자의 초상화가 화려한 카드섹션으로 피어나 관중석을 수놓고 학교 교무실(충성심이 유난한 곳에서는 교실에도) 가장 높은 벽에는 지도자의 초상화가 근엄하게 좌중을 내려다보고 있었단다. TV 뉴스에서는 그분의 근황과 업적이 떠날 날이 없고, 주요 행사 때 그분이 입장하시면 수백명이 부르는 ‘찬가’가 웅장하게 울려 퍼졌고 말이야. “가난과 시련의 멍에를 벗고 풍성한 결실과 힘찬 건설의 민주와 부강의 푸른 터전을 이루려는 그 정성을 축복하소서.”

교과서에는 그분의 자상한 얼굴 사진과 함께 이런 내용이 실리기도 했단다. “홍수가 났을 때 헬리콥터로 수해 지구를 돌아보시고 가물이 들었을 때 양수기로 물을 뿜어 올리는 농민들을 격려해주시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 어떻게 하면 농민이 더 잘살 수 있게 될까 하고 여러 가지로 힘쓰고 계십니다.” 이분 말씀은 곧 법이었고 그분 보시기에 불손하거나 불온할 경우는 언제 누구 손에 봉변을 당할지 몰랐어. 법원은 증거도 없이 사형을 서슴없이 선고했고 집행은 즉시 이뤄졌어. 술 한잔 먹다가 이분에 대해 욕설이라도 했다가는 어느 귀신에게 잡혀갈지 몰라서 사람들은 입조심, 행동 조심하면서 살얼음판을 걸었단다.

ⓒ연합뉴스1979년 10월6일 생가를 찾은 박정희 대통령(오른쪽)이 주민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생전 마지막 생가 방문이었다.

자. 이 이상한 나라는 어디일까? 아까부터 “북한!”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입술 씰룩거리는 거 다 봤다. 그렇겠지. 헤어스타일 이상한 30대 청년을 두고 수만 관중이 ‘김정은’ 카드섹션을 하면서 열광하는 개인숭배의 나라, 자신의 고모부도 무슨 죄목인지 정확히 밝히지도 않은 채 사형시켜버린 나라, 북한이 당연히 떠올랐겠지. 그러나 저 위에 장황하게 소개한 나라는 슬프게도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야. 아빠는 앨리스처럼 어린 나이에 저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었단다.

아빠의 이상한 나라에 요란하게 금이 갔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해. 1979년 10월27일 아침이었어. 동네 앞산에 올라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동네 구멍가게 형이 뭔가를 열심히 찾더구나. 뭐 찾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지금도 또렷하게 귓전에 인쇄돼 있단다. “대통령이 죽었단다. 조기 달아야 된다.”

잠시 후 아빠 가족은 라디오 앞에 모여 긴장된 표정으로 방송을 들었지. 그때 흘러나오던 아나운서의 음울한 목소리는 대통령 사망 소식이 ‘실제 상황’임을 입증해주었어.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다투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사된 총에 박정희 대통령 각하가 서거….” 아빠는 이 방송을 들은 후 여러 개의 한국어 ‘보캐뷸러리’를 습득했단다. ‘우발적’이란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서거’(逝去)란 무슨 말인지. 결국 “대통령 앞에서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사람과 경호실장이라는 사람이 싸우다가 총을 빼들었고 쏜다 안 쏜다 승강이하다가 우연히 발사된 총알에 대통령이 죽었다”는 거였어.

1979년 10월26일 ‘서거’한 분의 삶의 궤적을 여기서 줄줄이 읊고 싶지는 않아. 워낙 복잡다단한 삶을 사신 분이고, 한국을 넘어 세계 현대사에서 이분만큼 극단적인 숭배와 저주를 동시에 받는 이도 흔치 않을 테니까. 오늘은 그분의 마지막 순간만 보기로 하자.

아빠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는 김재규(당시 중앙정보부장)가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 자신이라고 생각해. 그는 당시 한국을 지배하던 ‘유신체제’라는 이상한 나라의 왕이었단다. 툭하면 내려지던 ‘긴급조치’에 따르면 유신체제를 “반대·왜곡 또는 비방하거나 그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하거나 청원”하기만 해도 무조건 잡아 가둘 수 있었고, 심하게 비위에 거슬릴 경우 사형까지도 서슴없이 선고했으니까. 술 먹다가 “에이 더러운 세상!” 하다가는 콩밥을 먹을 수 있었고 객기 부리며 “김일성이가 차라리 낫다”고 한마디 했다가는 영영 해를 못 볼 수도 있던 시절이었어.

‘이상한 나라’ 왕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권력이란 건 술과도 같단다. 아빠도 술 취하면 취하지 않았다고 우기잖니. 권력에 취한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망각하기 마련이야. 말년의 박정희 대통령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맘대로 할 테니 나중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하는 독선에 빠져 있었고, 직언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자신에게 반항하는 사람들을 국가에 대한 반역자라고 여겼단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사형선고 받고 법정을 나서는 김재규 전 중정부장.

술에 취한 사람에게 술 권하는 친구가 있는 것처럼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그의 권력 주정에 맞장구치는 사람들이 있었지. 대통령과 함께 죽은 경호실장 같은 사람이었단다. 그는 당시 유신체제를 참다 못해 일어선 부산 시민을 두고 이런 말을 서슴지 않았다고 해. “캄보디아에서 300만명을 죽였는데 우리가 100만~200만명 못 죽이겠느냐.” 결국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이면서도 그 무리수에 반발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고 말아. 그게 아빠의 어린 시절 기억을 그 이전과 이후로 휴전선처럼 나누는 10·26 사건이었구나.

아빠는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해악만 끼친 독재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지금까지 얘기한 ‘이상한 나라’를 만들었을망정 그가 대통령으로 있었던 18년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엄청나게 바뀌고 또 변화의 계기를 만든 시간이기도 하다고 여기니까.

그래도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을 발휘하며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항의하는 시민들 앞에 공수부대를 들이민 그의 마지막 모습은 용서할 수 없고, 그를 죽인 탄환을 ‘흉탄’이라 부를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해둬야겠다. 만약 그가 죽지 않았다면 1980년 봄 광주의 참극은 1979년 초겨울 아빠가 살던 항도 부산에서 일어날 수 있었으니까.

아주 먼 옛날 그리스의 현자(賢者) 솔론은 자신의 부유함과 위대함을 자랑하는 리디아의 왕 크로이소스에게 “한 사람의 죽음이 어떤지를 보기 전까지는 그를 행복한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단다. 아빠는 이 말이 죽음을 행복하게 맞는 사람만이 복된 삶을 살았다거나 불행하게 죽는 사람의 삶이 의미가 없었다는 뜻으로 들리지는 않아. 오히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고 한 미국 프로야구의 전설 요기 베라의 말처럼 생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겠지.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은 행복하지 못했어. 그에게나 나라에나 불행이었다. 하지만 더 큰 불행은, 불행으로부터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는 거야. 우리가 살았던 ‘이상한 나라’를 굳이 정상적인 나라로 억지로 치장하려 하고 ‘이상한 나라’ 왕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귀를 막고 눈을 감고 돌진하는 일일 거야. 동작동에 누워 계신 그분은 그 모습에 기뻐하시기보다는 왜 나를 닮아가느냐고 한숨을 내쉬지 않을까 해. 아마 지금은 그분도 무척 후회하고 계실 테니까.

기자명 김형민(SBS Biz P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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