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아시아 빈곤율 1위 오키나와, 팬데믹 앞에서도 스러졌다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비극은 단 하나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비극의 여파는 계속 이어지며 결국 또 다른 비극을 낳는다. ‘소소한 아시아’ 연재 첫 번째 글에서 오키나와 이야기를 전하며 오키나와는 더 이상 장수 지역이 아니라 단명 지역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썼다. 그 원인을 오키나와의 빈곤이라고 지목했다. 오키나와의 빈곤율은 일본 전국 1위다.오키나와의 경제는 ‘3K’라고 불리는 세 개의 축이 전부다. 3K는 ‘간코(관광)’ ‘고쿄지교(공공사업)’, 그리고 ‘기치(미군기지)’를 뜻한다. 미군기지에서 고용한 오키나와 노동자 경제생활의 축이라고 말하기도 머 국물 라면은 힘 못 쓰는 인도의 ‘라면 대전’, 누가 이길까?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요즘 인도는 매년 방문해도 매번 새로운 게 보일 정도로 변화가 가파르다. 특히 최근에는 인스턴트라면 삼국지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로 라면 시장이 확장되고 있다. 이제 버스 정류장에서 라면 끓여 파는 가판대 한두 개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인도에 인스턴트라면이 처음 선보인 건 1983년이다. 당시만 해도 조리를 시작하고 2분 만에 먹을 수 있다는 신속성은 슬로푸드의 나라 인도에서는 전혀 어필 대상이 되지 못했다. 여성해방의 관점으로 라면의 보급을 바라보는 시선은 있었다. 그들에게 라면은 가사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했다.인도 인도 영어 ‘힝글리시’ 미국 영어 대체할까?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Which Country?”라고 라주가 물었다. 잠시 내가 멈칫하자 라주의 친구 카말은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Which Country belong to you?”라고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는 말인 것 같아서 한국이라고 했더니 대화가 통한다고 생각한 그들이 환히 웃어줬다. ‘휘치 컨츄리’는 인도식 영어다. 모든 인도인이 이렇게 말하는 건 아니지만, 거리에서 만난 인도인들에게는 이게 인도 표준영어였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를 배우긴 했지만 말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 영어 회화는 인도에서 시작됐다 티베트 가로지르는 중국 철도, 사라진 야생늑대가 떠올랐다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중국 본토와 티베트를 연결하는 칭짱 열차가 막 공사 중이던 2005년. 티베트에서 가장 가까운 역이 있는 도시인 칭하이성 거얼무에 있었다. 당시엔 외국인이 티베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여행 허가증을 받아야 했다. 중국 비자 외에 티베트로 가는 비자를 따로 받아야 했던 셈인데, 이게 가격이 비쌌다. 1750위안, 당시 돈으로 21만원이나 했다.돈도 없었거니와 외국인에게만 징수하는 부당 요금에 굴복해선 안 된다는, 정의감으로 위장한 객기가 가득했던 시절, 결과적으로 나는 불법을 저질렀다. 다짜고짜 티베트행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헤 일본 극우단체가 티베트 독립을 응원하는 이유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작은 마을 맥그로드 간즈에는 한 일본 식당이 있다. 이 식당은 일본계 NGO가 운영하는 곳으로 식당의 수익은 전부 구추섬(Gu-Chu-Sum)이라는 티베트 정치범 운동단체에 기부한다.배낭여행자의 인적 구성이 주로 20대이다 보니 이 식당의 한쪽에는 일본의 라멘집을 연상케 하는 엄청난 숫자의 일본 코믹스와 문고판 서적이 가득하다. 소설까지는 몰라도 만화나 설명문 위주의 책은 읽을 수 있기 때문에 한때 나는 문지방이 닳도록 이 집을 들락거렸다.15년쯤 된 일이다. 그날도 이 식당의 서가를 둘러보며 무슨 책 ‘해장용 요리’가 없는 인도에서 찾은 한 줄기 빛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국수는 히말라야를 넘지 못했다. 중국 신장 지방에서 탄생해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서쪽으로는 비록 중동 지역을 건너뛰긴 했으나 이탈리아까지 전파됐다. 그러나 남행열차를 타는 데는 실패했다. 폭 200~400㎞에 길이 2500㎞의 거대한 얼음 장벽인 히말라야는 인도아대륙(인도반도)을 북쪽의 침입자로부터도 지켜냈지만, 후루룩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요리의 전파도 막아낸 셈이다.인도 요리는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 취약점이 있다. 국수가 없거니와 국물 요리도 없다. 고향 음식에 대한 희구는 사람마다 다른 편인데 나에겐 김치의 부재보 [소소한 아시아]돈 준대도 백신 안 맞겠다는 홍콩 시민들, 왜일까?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홍콩의 코로나19 백신접종 완료율은 5월30일 현재 13.4%다. 얼핏 양호해 보이지만 1차 접종자 18.1%, 2차 접종자 13.4% 수준으로 맞는 사람만 맞는 상황이다. 4월만 해도 하루 4만6000명대를 유지하던 일일 접종 횟수가 이제는 2만5000회 정도로 떨어졌다.중국산 백신인 시노백에 대한 광범위한 불신 탓만은 아니다. 현재 홍콩은 시노백과 화이자 중 시민들이 맞고 싶은 백신을 골라서 접종할 수 있다. 게다가 홍콩 인구 750만명 전원이 2차 접종까지 받을 수 있는 백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화이자의 경우 326만 회 [소소한아시아]낙원의 섬 발리에서 56년 전 생긴 일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2차 세계대전의 결과로 독립하게 된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도미노처럼 군사 쿠데타의 망령에 시달렸다.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도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군부 세력에 의한 봉기였고 우익 장군 수하르토에 의해 진압됐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이자, 제3세계 운동의 지도자였던 수카르노는 이 일로 인해 축출되고 수하르토 소장이 집권했다.수하르토 소장은 쿠데타의 배후로 당시 세계적으로도 강력한 공산당 조직 중 하나였던 인도네시아 공산당을 지목했고 이어서 대대적인 공산주의자 ‘코로나 생지옥’에도, 모디의 통치력은 ‘약진’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코로나 2차 대유행을 몰고 온 원인 중 하나인 2021년 인도 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는 28개 주 가운데 5개 주에서 열린 입법부 선출 선거다. 동부의 끄트머리인 웨스트벵갈주와 아삼주, 남서부 끄트머리에 있는 케랄라주와 남동부의 타밀나두주, 그리고 한때 프랑스령이었던 아주 작은 정부 직할 구역 푸두체리가 포함되어 있었다.인도는 북부와 남부의 전통이 확연히 다른 나라다. 인종적으로 아리안계와 드라비디언계로 나뉜다. 정치적으로도 인도의 주요 정당들은 웨스트벵갈, 케랄라, 타밀나두 세 지역에서 기를 펴지 못한다. 중앙정치에 대한 반감 인도의 ‘방역 자화자찬’이 남긴 교훈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지난 2월만 해도 인도의 코로나 방역은 ‘신비로운 인도 시즌 2’의 느낌이었다. 2020년 3월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인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9월에 하루 9만7000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하향 추세를 보였고, 2021년 들어 하루 1만명대로 안정화한 듯했다.하루 1만명이 뭐가 적으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인도는 한국보다 인구가 26배나 많은 나라다. 즉 한국의 인구수로 셈해보면 하루 400명가량의 확진자가 나왔다는 이야기다. 외신들까지 앞다퉈 ‘인도의 신비로운 코로나 극복’을 보도하기 시작했다.인도는 알다시피 코로나 “불이익은 주지 않겠다, 다만 정치는 할 수 없다”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마법사 닥터 스트레인지는 강력한 적 타노스와 맞서기 위해 1400만 개의 미래를 살펴 ‘단 하나의 이기는 수’를 발견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We’re in the endgame now.’엔드게임. 2019년 홍콩 시위대는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우리가 지금은 중국에 형편없이 밀리고 있지만,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처럼 최종적으로 중국을 이기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겠다는 믿음을 버린 적이 없다.홍콩 시위대가 발견한 단 하나의 이기는 수는 앞으로 다가올 홍콩 총 미얀마 시위에서 승려들이 잘 안 보이는 이유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3월17일 미얀마 불교를 관장하는 국가기관인 ‘마하나’가 군부를 향해 시위대에 대한 폭력을 중단하라고 촉구할 예정이라는 현지 보도가 있었다. 지난 2월1일 미얀마 쿠데타 발생 이후 무려 45일 만에 나온 이 성명은 여러모로 늦은 감이 있다. 승려들이 주도했던 2007년 미얀마 사프란 혁명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어딘가 꺼림칙하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불교는 미얀마 인구의 90%가 믿는, 말 그대로 국가 종교다. 한국처럼 호국불교 성격도 짙다. 2007년 사프란 혁명 당시 군사정부가 타협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미얀마 사회 1959년의 티베트, 2019년의 홍콩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1950년 7월 중화인민공화국은 티베트를 해방시킨다며 인민해방군의 티베트 진격을 명령했다. 독립국을 자처하던 티베트는 오랜 전투 경험이 있는 중국을 막아낼 여력이 없었다. 티베트는 유엔에 기댔다. 하지만 유엔은 중국과 인도가 낀 이 거대한 분쟁지역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타이완섬으로 쫓겨난 신세였지만 유엔안전보장 이사회 이사국이었던 중화민국 정부도 중화인민공화국의 티베트 진격을 굳이 막지 않았다. 결국 티베트도 ‘중화’의 땅이라 여겼기 때문이다.여러모로 각자의 오판이 뒤섞인 채 이리저리 차이기만 하던 티베트는 중국과 ‘세븐틴 포인 최대 규모 농민 투쟁 선봉에 선 시크교도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내가 어릴 적에는 ‘한일 자동펌프’ CF가 유명했다. 코미디언 서수남과 하청일이 부른 ‘물 걱정을 마세요~’라는 CM송이 국민적 인기였다. 도시에 사는 나는 펌프가 왜 필요한지 잘 몰랐지만 흥겹게 따라 불렀다. 당시 한국에서 농업의 위상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모내기 철이 되면 대통령이 직접 농기계에 올라타거나, 바지를 걷어올리고 논에 들어갔다. 농업이 천대받는 오늘날, 이런 풍경은 볼 수 없다.IT 산업이 주목받고 있지만, 인도는 노동 인력의 절반 정도가 농업에 종사하는 농업국가다. 그런 인도에서 3개월째 농민들이 상경 투쟁을 벌 군중을 동지로 만드는 홍콩의 최루탄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어쩌다 보니 여섯 개 나라의 최루탄을 맞고, 세 개 나라의 물대포를 경험해봤다. 홍콩에서만은 최루탄 맡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지난 1년간 과거의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격렬하게 최루탄 냄새를 맡은 곳이 홍콩이었다.영어권에서 CS라고 부르는 이 물질의 원래 이름은 클로로벤질리덴 말로노니트릴(Chlorobenzylidene malononitrile)이다. 영국이 1차 세계대전 당시 지루했던 참호전을 끝내려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최루탄은 화학무기이기 때문에 1925년 생물학무기와 화학무기의 사용을 금지한 제네바 의정서에 따라 지도자에 의존 않는 홍콩의 민주주의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1년 전 홍콩 폴리텍 대학 점거 시위 현장에 있었다. 그 취재가 마지막 홍콩 취재가 될 것이란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이었다. 그날 폴리텍 대학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즈음 홍콩 친구들로부터 텔레그램이 도착했다. “오늘부터 등록된 외신기자가 아니면 모두 체포한대.” “어서 외곽으로 나와. 폴리텍 대학은 봉쇄될 모양이야.”대학 주변은 이미 고무총과 최루탄을 든 경찰이 곳곳을 막고 있었다. 출구 구실을 하는 두 곳의 길도 막혀 있었다. 겨우겨우 홍콩 역사박물관 뒷길을 통해 가방 수색을 받은 끝에 타이완의 영웅 된 ‘인도의 문제아 정치인’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2005년 중국 여행 안내서를 처음 낼 때의 일이다. 당시 의욕에 넘치던 나는 티베트 섹션에 티베트 문자 현지 표기를 병기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한국에 유학 중인 티베트 승려를 접촉해 감수까지 받던 어느 날 어떤 전화를 받았다. 신원을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짐작할 수 있었다. 대체 여행 안내서 편집 상황이 어떻게 귀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티베트는 중국의 일부이며 티베트를 독립적인 지역으로 보이게 하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끄럽지만 책에 병기하려 했던 티베트 문자 표기는 바로 사라졌다.지난 6월 중국과 인도 언제나 호들갑이었던 ‘그 시대의 뉴노멀’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이번 추석 때 혼자 본가에 다녀왔다. 정부 당국에서는 고향에 가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수도권에 홀로 사는 어머니가 쓸쓸하게 명절을 보낼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막상 집에 가서는 크게 하는 일도 없이 예전 내 방의 책장과 서랍을 뒤적거렸다. 그러다 1980년대에 발행한 ‘소년 잡지’ 한 권을 발견했다. 이 잡지의 특집 글은 21세기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었다.지금의 소년들도 이런 궁금증 속에 사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소년이던 시절에는 21세기가 되면 천지가 개벽하는 줄 알았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토마토와 감자가 한꺼번에 열리는 채 네 개 나라가 들어간 수프카레 한 그릇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스물네 살 이후로, 이렇게 한국에 오래 머물러보긴 처음이다. 가장 괴로운 점 중 하나는 자려고 누우면 불현듯 취재지의 몇몇 ‘최애’ 음식이 떠오른다는 점이다. 늘 군침을 삼켜야 한다.오키나와 중부 아와세라는 조그만 항구에 아지토야(あじとや)라는 식당이 있다. 2014년이었나? 여느 날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오키나와를 누비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오키나와 날씨는 변화무쌍해서 어떤 날씨 앱도 무용지물이다. 여행작가는 이런 날 취재 예정인 식당 여러 곳을 방문해 진탕 먹기라도 해야 하루 공치지 않는다. 이날 내가 있던 지점에서 가장 삼합회 조폭까지 나선 베이징의 ‘노랑새 작전’ 환타 (여행작가·<환타지 없는 여행> 저자) 1989년 6월4일 톈안먼(천안문) 광장이 중국인민해방군에 의해 점령됐다. 인민을 해방시키겠다는 목적으로 인민의 자제들로 구성된 군대가 인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사건은 중국 인민은 물론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1997년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으로서는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악몽이 펼쳐졌다. 항쟁 초기인 1989년 5월1일 베이징 지역 대학생 연합체인 ‘고자련(高自聯·가오쯔롄)’은 ‘홍콩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가오쯔롄은 이 시위로 중국의 민주화를 앞당기겠다며 홍콩 시민들의 지지와 성원을 당부했다. 홍콩 시민들은 톈안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