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파괴 ‘매뉴얼’대로? 노동권 존중 ‘헌법’대로!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우리 문제는 죽어야만 이슈가 되는 겁니까.” ‘손잡고’라는 단체의 활동가로서 처음 한 일은, 파업한 노동자가 거액의 손해배상·가압류에 직면하는 현실을 해결하자며 2014년 시작된 시민모금 ‘노란봉투 캠페인’ 기금을 배분하는 일이었다. 그때 손배 가압류 당사자들을 처음 만났고, 이 문제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끝까지 기금 수령을 거부했던 한 노동자의 절규가 지금도 생생히 가슴에 남았다. 이 노동자는 2005년 노동조합을 만들어 처음으로 노동권을 행사했는데, 권리행사로 한 첫 요구가 ‘안전’과 ‘근로기준법 준수’였 일진다이아몬드 본사에서 일어난 일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지난 1월이었다. 집회 도중 인근 음식점 사장이 사회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왜 우리 집 앞에서 난리예요!” 사회자는 “이 아파트에 사는 ○○○ 회장이 직원 임금을 떼먹었어요. 양해 부탁드려요”라고 답했다. 그러고도 그 사장은 한참을 임금 떼인 노동자들을 향해 화를 내고서야 돌아섰다. 원인을 제공한 사용자보다는 눈앞에 농성하는 노동자가 먼저 보이는 탓이었을까. 그때만 해도, 말로 따지는 걸 넘어 ‘소장’으로 응수하는 제3자를 보게 될 줄 미처 알지 못했다.금속노조 일진다이아몬드지회와 간부 2명 앞으로 ‘146명에게 1인당 84만원씩 손해배상 위협 달라진 게 없구나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사내하청 노조)에 올해 손해배상 소장이 날아들었다. 이 일은 현대차 사내하청 여성 노동자 2명이 일하던 공정에 현대차가 ‘정규직 촉탁직’을 배치하도록 일방적으로 결정하면서 시작됐다. ‘정규직 촉탁직’은 정년이 된 정규직을 1년 촉탁 계약한 경우를 말한다. 원청이 직접 고용한 계약직에 해당한다. 지회가 일을 빼앗긴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2명의 처우에 대해 항의하자, 현대차는 정규직 노동자 3명이 배치되어 일하던 ‘다른’ 공정에 기존에 일하던 사내하청 여성 노동자 2명을 배치하겠다고 사내하청 업체를 통해 41년을 일하고 수십억 빚이 쌓인 사람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거북선은 우리가 만들었다.’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 2007)에서 김진숙은 한진중공업에서 일어난 최초의 노동자 단결과 승리가 이 통찰에서 나왔다고 적었다. 경영진이 경영을 제대로 못하고 무책임하게 떨어져 나간 자리, 이 일터를 단단히 지킨 건 배 만드는 노동자들이었다.한진중공업에서 정년을 맞이한 노동자 차해도씨를 만난 적이 있다. 18세에 배를 만들기 시작한 차해도는 이후 41년10개월을 일했다. 그를 만난 이유가 온전히 정년을 축하하기 위함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안타깝게도 축하는 잠깐이었다. 정년이 되어도 그에게 착 붙어 죽은 뒤에야 받은 판결문 ‘회사의 책임이 있음’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매년 5월 둘째 주면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을 찾는다. ‘노동자 배재형의 묘’에 꽃을 올리고, 이제는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진 ㅎ노동조합 조합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올해는 좀 특별했다. 동료를 잃은 노동자를 ‘죄인’으로 만들었던 사건이 5년 만에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었다는 소식을 당사자로부터 들었다. 축하를 전했지만, 씁쓸했다. 소송에서 이기고도 당사자는 해당 사건에 대해 말 한마디 공개적으로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2018년 법원의 조정 결정이 있었다. 노동조합이 해고의 부당함을 알리며 저항하는 과정에서 민형사 및 “유성기업 〇 〇 〇 팀장입니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유성기업 ○○○ 팀장입니다. ‘광주와 용산에 대한 응답’ 제하 기사에 대해 반론보도를 요청드립니다.” 2019년 6월6일, 박래군 손잡고 운영위원에게 이메일 한 통이 왔다. 처음에는 황당했다. ‘기고’에 반론보도를 해달라니? 그것도 광주와 용산을 주제로 한 글을 왜 유성기업에서 반론을 해달라는 걸까.구체적인 내용을 보고는 화가 났다. 경찰이 개입한 국가폭력 사례로 쌍용자동차 노동자와 함께 유성기업을 언급한 내용에, 유성기업이 반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대응하지 않았다. 2011년 유성기업 사태에 경찰이 투입되었고, 해당 사건은 불 노동자 두 번 죽이는 ‘공정하지 않은 법’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공정해야 할 재판부가 절차를 거쳐 쟁의행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불법이라니, 가진 자의 법이 아닌가.” 2003년 1월9일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가 남긴 유서 일부이다. 죽음 앞에 선 노동자가 보기에 법은 가진 자에게만 공정했다. 같은 유서에서 고인은 ‘잔액 0원 통장’을 통해 손배·가압류의 실체를 세상에 고발하기도 했다. 그가 삶의 마지막을 보낸 두산중공업이 위치한 창원 성산에서 또 다른 노동자들이 기약 없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한국GM은 2002년 수조원대 가치를 지닌 대우자동차를 4000억원에 인수했다. 201 쌍용자동차 손배 소송은 끝나지 않았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쌍용자동차 2009년 정리해고 사태에 대한 경찰청 인권침해조사 결과가 나온 지 1년이 되었다. 지난 7월 민갑룡 경찰청장은 쌍용자동차 강제진압을 비롯해 자체 인권침해조사가 마무리되었다며, 국가폭력에 대해 머리 숙여 사과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국가폭력 피해’를 인정받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지연된 사과는 희생과 상처만 남겼다. 이 기간에 쌍용차 노동자들은 서른 명의 희생자를 떠나보냈다. 지연된 사과조차 온전한 사과는 아니었다.국가폭력 피해자인 쌍용차 노동자들이 강제진압에 저항한 일은 여전히 대법원 판결을 받아야 할 족쇄로 남았다. 일본 기업 대표는 슬며시 웃지 않았을까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당사는 한국 법령과 한국 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지만 해당 사안은 고등법원에 계류 중이며 본건이 원만히 해결되길 바란다.” 10월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환노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아사히글라스 파인테크코리아(이하 아사히글라스) 홋타 나오히로 대표가 불법파견과 관련해 내놓은 답변이다. 아사히글라스 측은 지난 8월 불법파견 1심 선고에서 패소했다. 아사히글라스 측이 1심 판결을 존중해 항소하지 않았다면 ‘해당 사안이 고등법원에 계류 중’일 이유가 없는 셈이다.국정감사 보도를 보며 1심 선고를 참관했던 날이 떠올랐다. ‘아사히글라스에 고용 둘째 임신하자 직장은 지옥이 되었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야 해.” 이 한마디가 두 노동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2015년 한 종교단체 관련 사회복지관에서 일하던 ㄱ씨는 당시 상사에게 둘째 임신 소식을 알린 터였다. ㄱ씨의 면접관이기도 했던 상사는 “면접 때는 둘째 안 낳는다고 했었다”라며 ㄱ씨를 뻔뻔한 사람이라고 했다. 해당 발언을 전해들은 ㄱ씨는 고민 끝에 상사와 복지관 관장에게 시정을 요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문제 제기가 직장 내 왕따, 해고, 손해배상 소송 등 민형사 소송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 동료들은 ㄱ씨와 상사의 갈등이 “왕뚜껑이 나온 날, 뚜껑이 열렸다”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손해배상·가압류(손배) 피해 노동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한 장을 보았다. 식판에 컵라면과 김치, 단무지가 올라간 사진이었다. 중식이라고 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식판 사진은 계속 올라왔다. 어떤 날은 멀건 국수에 김치, 어떤 날은 유통기한이 하루 남은 우유, 어떤 날은 동그랑땡 하나와 김치. 한 노동자는 “왕뚜껑이 나온 날, 말 그대로 뚜껑이 열렸다”라고 말했다.문제가 된 식판 사진은 경북 구미에 위치한 반도체 공장 KEC 직원들의 중식을 찍은 것이다. 평균 식대 단가가 1700원이라는 게 알려지자, 분노 여론이 형성됐다 부당한 해고이기에 41년째 투쟁 중 윤지선 (‘손잡고’ 활동가) “41년 복직 투쟁이라니, 쌍용차 해고 10년은 명함도 못 내밀겠어요.” “400억원 손해배상 청구라니, 우리 1650만 엔(약 1억8000만원)은 너무 작게 느껴지네요.” 한국 해고 노동자와 일본 해고 노동자의 대화를 들으며 새삼 기업과 법 제도의 잔인함을 느꼈다. 두 나라 모두 헌법에 노동권이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 법 테두리 안에서 어떤 국민은 41년을 해고자로 보내고, 어떤 국민은 회사뿐 아니라 국가로부터도 막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지난 5월, 일본 쟁의연락회의에서 시민단체 ‘손잡고’와 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자동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