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서울대 종합 시사 월간지 〈서울대저널〉 기자 이진혁씨(23)가 학습지 교사의 노동환경에 관한 취재를 진행하던 중이었다. 5월3일 업무방해와 불법집회 혐의로 수배를 받던 화물연대 광주지부 박종태 1지회장이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됐다. 박씨는 배달 수수료를 건당 30원 올려달라고 요구했다가 해고당한 대한통운 택배기사 70명을 돕고 있었다. 박씨의 죽음은 이 기자가 애초 취재하던 사안과도 연결돼 있었다. 택배기사와 학습지 교사는 모두 노동자이면서 노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이었다. 
 

이씨는 취재 범위를 ‘학습지 교사’에서 ‘특수고용직’ 전반으로 넓히기로 했다. 후배 기자 김진용(22)·양정숙(21)·이현정(21)씨가 취재팀에 합류했다. 김씨는 특수고용직 관련 법안을 발의한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 인터뷰를 맡고, 양씨와 이현정씨는 특수고용직을 둘러싼 정책적 쟁점들을 기사로 풀기로 했다. 이진혁씨는 대전에서 농성 중인 화물연대 노동자들과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학습지 교사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박종태씨의 자살 이후 많은 언론이 특수고용직 문제에 관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었다.

다른 보도와의 차별성이 절실했다. 취재팀은 취재원과 ‘밀착’하기로 했다. “사람 냄새가 나게 기사를 쓰자”라는 다짐으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달하려 노력했다. 수업을 빠져가며 완성한 기획 기사 ‘노동을 뺏긴 노동자’(〈서울대저널〉 2990년 6월호)는 제1회 〈시사IN〉 대학기자상 대상을 수상했다.

이들이 속한 〈서울대저널〉은 명실상부한 ‘자치언론’이다. 이들의 뿌리는 1992년 창간된 〈자주관악〉.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에서 당선된 ‘21세기진보학생연합’이 발행하는 정치신문이었다. 1995년 〈우리세대〉로 제호를 변경하고 1997년 총학생회로부터 독립하면서 구성원들은 ‘대학 본부’는 물론이고 ‘학생 조직’의 입김에서도 자유로운 환경을 얻어냈다. 2001년 〈서울대저널〉로 제호를 변경하기 전부터 이 매체의 편집권과 재정권은 모두 학생 기자의 손에 있었다.

“대학 언론의 위기? 겉만 보지 말라”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책을 만들어내려면 돈이 필요하다. 서울대 총학생회에서 〈관악〉과 〈교육저널〉 같은 단체에 지원하는 ‘자치언론기금’을 〈서울대저널〉도 받고 있지만, 한 학기에 80만원을 주는 이 기금으론 발행비를 충당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기업 광고를 책에 싣다보니 웃지 못할 일도 많이 생긴다. 빈민가를 취재해 표지에 판자촌 사진이 나갔는데 잡지 뒷면에 푸르지오 아파트 광고가 실리기도 하고, 채식 기사가 들어간 호에 정육 브랜드 광고가 나가기도 했다.
 

〈서울대저널〉 편집국 안에서 환하게 웃는 수상자들과 수상작 기사의 첫 페이지(위).

대학 본부 산하기관인 학보사도 줄줄이 무너져가는 요즘, 대학 자치언론이 어렵게나마 꾸준히 책을 내고 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서울대저널〉은 지난해 100호를 냈다. 아직 대학기자를 하겠다는 지원자도 많고 학교에 책을 배포하면 금세 동이 난다. 밖에서 보는 이들보다, 안에서 지탱하는 학생 기자들의 눈에 대학 언론의 앞날은 훨씬 희망적으로 비친다. “대학 매체가 많이 사라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동아리 신문이나 무크지 같은 작은 언론이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어요.(이진혁)”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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