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 ‘접근금지’ 따위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한참을 차로 달려도 경계가 이어졌다. 아이가 놀고 있는 리조트 내 물놀이장 위로는 스텔스기가 보였다. 그런다고 한들 관광객 눈에 ‘기지 섬’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몇 년 전 휴가 때 괌에 다녀왔다. 법적으로는 미국 자치령, 연방 비편입 지역이다. 본토 대통령이나 상·하원 의원 투표권이 없다. 제한된 자치를 누린다.
제국의 오랜 식민지를 거친 괌의 비극은 미군의 탈환작전 때도 계속되었다. 1944년 미군은 육해공 합동작전으로 괌을 점령했던 일본군을 제압했다. 탈환 과정에서 원주민인 차모로족 1170명이 사망했다.
탈환작전 뒤 괌은 미군 기지로 거듭났다. 괌 북부에는 앤더슨 공군기지가, 남서쪽 해안 아프라 항에는 해군기지가 있다. 지난해 북한은 미사일로 괌을 포위 공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본토의 미국인, 심지어 공무원들조차 이 섬을 잘 알지 못한다. 괌 출신 정치인이 워싱턴을 방문하면, ‘외국인 여권’ 제시를 강요당하기 일쑤다. 온라인 상점은 해외 배송이라며 괌 배송을 거부한다. 괌에서는 오디션 프로그램 〈유 캔 댄스〉 전화 투표를 못한다. 차모로인들은 미국 본토에서 괌으로 돌아갈 때 날짜변경선을 넘으면 ‘권리’가 사라진다는 농담을 한다(데이비드 바인, 〈기지 국가〉).
그 괌이 북·미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언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괌에서 한국까지 와서 폭격 연습을 하고 가는 데 큰 비용이 든다”라고 말했다. 비즈니스맨답게 돈 문제를 거론하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주한 미군이 철수하는 것도 아니고 연합훈련을 일정 기간 중단할 뿐인데도 보수 언론은 안보에 큰 구멍이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폭탄 발언’ ‘트럼프 쇼크’ ‘한·미 동맹 균열’ 따위 제목을 단 기사들이 쏟아졌다.
길게 보면 강력한 안보는 재래식 무기나 핵이 보장하지 않는다. 가장 강력하고 값싼 무기는 평화체제다. 그 평화가 열렸다. 어느 날 뚝딱 열린 건 아니다.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2007년 10·4 선언에 닿아 있다. 그 의미를 이번 호에 담았다. 남문희 기자를 비롯한 전문가 필자까지 이번 기회를 살려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평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간절한 목소리가 기사에 담겨 있다. 평화로의 여정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가야 하고 또 갈 길이다.
이번 호는 북·미 정상회담과 6·13 지방선거까지 풍성하게 담았다. 천관율·김연희·이상원 기자와 이숙이 선임기자 등이 여당 압승의 맥락을 데이터로 분석하고 향후 정국을 내다보았다. 2018년 6월 한반도와 지방 권력까지, 남과 북을 아우르는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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