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과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원칙이라지만 예외도 있다. 3년 가까이 취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신선영 사진기자와 KTX 여승무원들 이야기다. 2015년 2월26일 대법원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판결 직후부터다. 신 기자는 KTX 여승무원들이 있는 곳이라면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취재 지시가 없어도, 주말이어도, 부산까지 내려가야 할 때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3월 어느 날, 신 기자는 여승무원들과 문자를 주고받다가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카메라를 챙겼다. 지방의 한 추모공원에 묻힌 박 아무개씨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박씨는 동료들과 함께 마지막 심정으로 법원 문을 두드렸다. 1심과 2심에서 ‘코레일 직원이 맞다’며 잇달아 승소했다. 코레일을 상대로 한 임금지급 가처분 소송도 이겼다. 복직 때까지 임금을 받을 것으로 보았다. 이 모든 바람이 대법원 판결로 무너졌다. 1인당 지급받은 임금 8640만원은 고스란히 빚이 되어 돌아왔다. 박씨는 대법원 판결 뒤 가족과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세 살 난 딸과 남편이 잠든 새벽이었다. 세 살배기는 이제 여섯 살이 되었다. 전혜원 기자를 통해 아이의 근황을 전해 들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는 3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를 찾는다.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 원본 일부가 공개되었다. 특별조사단 조사 보고서에 이어 원본 문건도 정독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잘나가는 엘리트 판사가 작성했다고 믿기 어려운 문구가 많았다. 전국 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은 ‘합리적인 근거 없는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 제기에 대하여 깊이 우려’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5년 대법원 KTX 판결은 그때도 지금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판결문을 적지 않게 읽었지만, 그 판결문은 대법관들의 판단이라고 하기엔 논리가 너무 헐거웠다. 왜 이런 판결을 내렸을까? 그 궁금증이 이번 원본 문건을 보고 조금 풀렸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이 남긴 것들을 이번 커버스토리에 담았다. 고심 끝에 박씨를 추모하기 위해 모인 승무원들의 사진을 표지에 올렸다. 신선영 기자가 기록한 장면이다. ‘재판 거래’는 아직까지 의혹일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게 있다. 그 판결 이후 해고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 대법원 판결 9개월 뒤 양승태 대법원이 작성한 문건에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협력 사례’로 이 판결이 등장했다.
숨진 박씨의 여섯 살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는 왜 죽었느냐고 물었을 때, 우리 사회는 무어라 답할 것인가. 의혹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의혹은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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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40만원 빚 안긴 4000일 [취재 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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