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입사 53일밖에 안 된 수습기자가 원(原) 〈시사저널〉 커버스토리를 썼다. 퇴고를 하는데, 김상익 편집장도 못 미더웠는지 초고를 보여달라고 했다. 회의실로 불렀다. 김 편집장은 프린트된 초고를 들고 흔들었다. “형용사·부사를 다 빼. 주어·목적어·서술어로만 써라. 이 세상에 일어난 모든 일은 3형식 문장에 담을 수 있다.” 탈고를 하며 털고 또 털어냈다. 문정우 취재부장에게 퇴고한 원고를 넘겼다. “잘 썼다.” 수습기자 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들었던 칭찬으로 기억된다.

한 번은 ‘사수’였던 이문재 데스크가 회의실로 불렀다. “너는 문장과 문단의 차이를 아느냐?” 제대로 답을 못하자, 이문재 데스크가 말했다. “문단이 바뀌면 우주가 바뀐다. 회사를 나가라.” 나가란다고 나갈 처지가 아니었다. 그때부터 초고와, 데스크·교열기자를 거친 원고를 찾아 매번 비교했다. 지면 기사는 매주 따로 스크랩을 했다. 내가 원 〈시사저널〉에 있을 때도 김훈·김상익·서명숙·이문재·문정우 등 글 잘 쓰는 선배들이 수두룩했다. 그 선배들한테 귀가 따갑게 들은 말은 “팩트”였다. 선배들은 ‘팩트 신봉주의자’였다. 조사 하나까지 팩트에 어긋나지 않는지 따졌다. 지금의 〈시사IN〉이 시사 주간지 유가 부수 1위를 유지하는 비결은 바로 그 선배들이 만든 전통이다.

지난여름 이문재 선배가 아이디어를 냈다. 창간 10주년을 맞아, 은퇴한 ‘올드 보이’들이 기사를 쓰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이번 창간 10주년 기념 특별호는 ‘듀얼 커버스토리’이다. 앞쪽은 현직 기자들이 지면을 꾸렸고, 돌려보면 뒤쪽에 올드 보이들이 만든 또 하나의 표지가 나온다. 여러 선배들이 힘을 보탰다. 김상익 편집국장, 이문재 취재부장, 백승기 사진부장, 김성원 미술부장, 장영희·송준·안철흥 팀장으로 올드 보이 편집국이 꾸려졌다. 지면 레이아웃은 옛 방식을 따랐다. 원 〈시사저널〉 파업 당시 거리편집국의 상징이었던 ‘날펜(날아라 펜)’을 만들어준 이철수 판화가도 참여해주었다. 안병찬 전 〈시사저널〉 주간의 표현처럼 ‘몽골 기병’들이 오랜만에 지면에 복귀했다.

일간지 기자들은 40대만 되어도 ‘현장’을 떠난다. 나이 든 선배들이 뒷방으로 밀려나는 풍토도 생겼다. 선배들로부터 이어온 저널리즘 전통이 단절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저널리즘의 미래를 묻다’라는 창간 기념 특별기획은 멀리 내다보며 저널리즘의 길을 찾아보자는 취지다. 이번 특별호는 되돌아보며 저널리즘의 길을 모색하자는 취지이다. 디지털 햇볕이 어떤 식물은 튼튼하게 하지만 또 어떤 식물은 고사시킨다. 그렇다고 피할 수 없다. 뿌리를 튼튼히 해야 한다. 뿌리가 튼튼하면 가지도 풍성해지는 법. 이번 기획은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선배들의 뿌리에 기댄 우리는 기필코 열매를 맺을 것이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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